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한미자유무역협정 (문단 편집) == 역사 == 참여정부 당시 FTA 황무지였던 대한민국에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포함한 여러국가와의 동시다발적 자유무역협정(FTA)을 개방정책과 외교통상의 핵심 전략으로 세우고 추진한 [[김현종|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의 주도로 협상이 진행 되었고 2007년 4월 2일 서울 하얏트 호텔에서 최종 타결이 이루어졌다. 그 배경에는 당시 동양인 최초·최연소로 WTO 법률국에서 법률자문관으로 일하던 김현종 변호사에게 대통령 당선자 신분이었던 노무현 대통령이 FTA의 필요성과 세계 통상현안에 관해 브리핑을 받은 이후 노무현 대통령이 김현종 변호사를 외교통상부 통상교섭조정관에 파격 발탁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통상교섭본부장으로 승진한 김현종 본부장이 노무현 대통령에게 한미 FTA의 필요성을 보고 하였고 참여정부의 핵심 외교통상 정책으로 추진 되었다. 그 이후에 한미 FTA는 미국의 오바마 정부와 트럼프 정부의 요구로 2번의 재협상을 거쳤다. 흥미로운 점은 노무현 정부 당시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으로 한미 FTA를 주도하고 타결한 [[김현종|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이 문재인 정부때는 초대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으로 임명이 되면서 트럼프 정부와의 한미 FTA 재협상에서 다시 한 번 협상을 이끌었다는 점이다.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55/0000553821?sid=100|#]] 한미 FTA는 생각보다 오래되었으며, 2019년 공개된 외교문서에 따르면 미국과 캐나다가 FTA 협상에 나서고 협상을 체결한 1987~1988년에도 미·일 FTA 등 상황 변수를 고려하며 한·미 FTA를 유리하게 이끌기 위한 다양한 조합과 조건 등을 다각도에서 연구한 것으로 나타났다. 1987년 5월 8일 주미대사관이 외무부 본부와 재무부, 상공부, 청와대 경제수석 등에게 보고한 자료는 '미국 내 정책입안자들 대부분은 FTA 추진문제에 대해 매우 신중한 입장이며 다자간 협상을 통한 자유무역 확대를 가장 효율적으로 보고 있다'고 보고했다. 또 그해 말에는 스미스 미국무역대표부(USTR) 부대표가 '한·미 경제관계, 대립이냐·협력이냐' 세미나에서 "이스라엘과 체결한 FTA를 한국과도 논의할 용의가 있다"는 언론 보도, 대만, 싱가포르, 호주 등도 FTA를 원하고 있다는 것을 두고 관련부처 간 논의를 이어갔다. 이후 주미대사관이 탐문한 결과 당시 미국은 캐나다와의 FTA 진행에도 매진하고 있기 때문에 레이건 행정부, 한국, 일본 등 어느 국가와도 FTA 체결을 고려하고 있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는 보고했지만 지속적으로 한미 FTA 가능성을 예의주시했다. 이에 대해 무역마찰 해소책으로서 FTA의 효율성, 한미 FTA를 한미가 단독으로 할 것인지, 미국과 한국을 포함한 아세안 혹은 신흥공업국(NICS)과 함께할 지를 논의했고, 1988년 8월 4일 한미 FTA에 대해 공동연구하자는 미 상원 벤슨 재무위원장의 서한을 접수받기도 했다. 당시 주일한국대사관은 한미 FTA에 대해 "미국은 국익을 위해 가능한 모든 방법을 사용하는 데 주저함이 없고 국제적 틀에서의 교섭보다 상대국과 기존 형성된 관계에 입각해 최선의 교섭 방안을 선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즉 미국이 우월적 입지를 이용할 것이라는 분석이다.[[http://www.fnnews.com/news/201903311127375257|#]]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