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한미관계 (문단 편집) === 가쓰라 태프트 밀약과 외교단절 === 그러나 [[1897년]] [[대한제국]]이 수립되고 [[20세기]]의 격동기에 접어들게 되면서 한미 관계에도 변화가 생긴다. 그 당시 미국은 [[1898년]] [[스페인]]과 [[식민지]] [[필리핀]] 문제로 전쟁을 하였던데다가 전쟁([[미서전쟁]])을 통해서 필리핀을 차지하게 되자 [[1905년]] 미국 육군장관이자 후에 미국 대통령으로 취임하게 되는 [[윌리엄 태프트]]와 일본의 총리이자 [[이토 히로부미]]의 오른팔로 불리우는 [[가쓰라 다로]] 사이에 '''일본은 대한제국의 지배에 대해 우월권을 인정하며 일본은 미국의 필리핀 지배를 인정한다'''는 명목으로 [[가쓰라 태프트 밀약]]을 맺으며 사실상 대한제국을 외면하고 일본 편에 들게 되었다. 당시 미국 대통령이었던 [[시어도어 루스벨트]]는 고종의 대한제국을 구원하여 동아시아의 완충지로 승인해 달라는 요청에도 이를 대놓고 무시하며 사실상 [[친일]] 성향을 드러냈고 미국은 일본을 지지하며 일본의 대한제국 지배를 승인하였다는 입장을 밝혀서 결국 대한제국의 [[을사조약]] 체결을 방조하게 되었다. 1905년 결국 루스벨트의 중재에 따라 [[포츠머스 조약]]으로 [[러일전쟁]]에서 일본이 승전하고 을사조약이 체결되면서 미국은 대한제국의 수교 국가 중 가장 먼저 [[한성부]]에 주재해있던 외교 공관을 철수하며 대한제국의 국가 승인도 취소한다는 입장을 밝히게 되었다. 이를 계기로 한미 관계는 잠시 [[단교]] 관계에 이르렀으며 경제적 통상면에서도 일본에 비해서 대거 축소되는 영향도 받았다. 후에 시어도어 루스벨트의 후임 대통령이자 가쓰라-태프트 밀약의 장본인이었던 윌리엄 태프트 역시 전임자 못지않게 일본을 두둔하고 지지하며 대한제국에 대해서는 관심조차 보이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1910년 [[한일병합]]이 체결되면서 대한제국은 멸망하고 일본의 [[속령]] 및 [[식민지]]가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