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이동문서 삭제토론 한문 (문단 편집) == 문체의 다양성 == 한문은 시대에 따른 언어 변화가 반영되어있기 때문에, 각 시대의 한문 문장을 보면 어느 정도의 시대성을 느낄 수도 있다. 예를 들면, 'A는 B이다' 라는 문장은 전국시대 이전의 고문헌에선 'A惟B', 'A唯B', 'A維B', 'A隹B'(드묾) 등으로 표현되지만 고전 한문기에 접어들면 점차 'AB也', 'A者B也', 'A爲B' 등의 표현으로 대체되고, 한대 이후의 문헌에선 현대 중국어에서도 쓰이는 표현인 'A是B'마저 나타나기 시작한다. 한문의 문체는 이렇게 텍스트 내용에 따라 차이가 날 뿐만 아니라, 시대마다, 지역(중국, 한국, 일본, 베트남 등)마다 어휘나 문체가 약간씩 다르다. 한국식 한문은 措備(조비: 조처하여 마련하다), 分給(분급: 나누어 주다), [[발명|發明]](발명하다) 등 한국식 복합동사가 두드러졌다. 또한 아무리 한문에 익숙한 사대부라도 처음에는 [[이두]]를 사용해서 초고를 썼다가, 글을 다듬으면서 고전 한문 표현으로 수정하는 경우가 많이 있었다.[* 예: 分叱不喩(뿐 아니라) → 且] 일본식 한문은 일부 고정된 표현을 제외하면 전체적으로 일본어 어순을 그대로 따른 변칙적인 서면어(소로분, 候文)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아래 [[태정관 지령]]의 품의서를 살펴보자. > 伺之趣御聞置,左之通御指令相成可然哉,此段相伺候也[* 相(あい)은 어투를 공손하게 하는 역할을 한다. 伺候는 본래 한문에서 '시중들다'라는 뜻이나 여기서는 '품의하나이다'라는 뜻으로 쓰였다.][*음독 사지취어문치, 좌지통어지령상성가연재, 차단상사후야] > "품의 취지(趣旨)를 들은 바, 왼쪽대로(다음과 같이) 지령을 내려도 되는지, 이를 품의하나이다." 즉, 한문 문체를 정밀히 분석하면 저자의 시대나 국적까지 파악할 수 있다. 가장 대표적인 방법은 [[피휘]]를 살펴보는 것으로, 피휘당한 문자만 추적해도 문체와 상관없이 어느 정도 저술시기의 윤곽이 잡힐 정도이다. 예를 들면 어떤 기록에는 백성을 뜻하는 글자를 민(民) 대신 인(人)으로, 당나라 때의 [[사기(역사책)|사기]] 필사본에서는 [[세가(동음이의어)|세가]]를 세(世) 대신 계(係)로 쓴 경우가 있다. 이는 [[태종(당)|당 태종]]의 이름이 이세민(李世民)이기 때문에 民 자를 휘하여 人으로, 世 자를 휘하여 係 자로 쓴 것이다. 그러므로 적어도 당나라 시기에 쓰인 기록임을 확인할 수 있다. 청대 고증학이 밝혀낸 많은 위서들(대표적으로 [[육도삼략]])은 바로 이런 한문의 시대적 특징을 이용한 것이다. 또한 유가 경전 계통의 한문과 불경 계통의 한문 사이에 언어적으로 다른 점들이 있기 때문에 전형적인 유가 경전이나 [[불경]]만 보던 사람들은 다른 계통의 한문 문체를 처음 접하면 해석에 꽤 어려움을 겪는다. [[반야심경]]만 봐도 감이 좋은 사람은 평범한 한문과 어딘가 다름을 느낄 수 있다. 불교 한문은 제자백가 계통의 한문과 달리 '''암송'''에 편하도록 글자 수를 일정한 틀에 맞추고 2절 이상으로 구성된 긴 노래의 가사처럼 비슷한 표현을 계속 반복한다. 그래서 운문 성격이 강하지만 문자로 기록할 경우에는 유가 경전에 비해 문장의 압축성은 덜하다. 여기에 위진남북조 시대의 입말 표현들이 섞였기 때문에, 전형적인 '''문자 기록용''' 문체인 유가 경전으로만 한문을 익혔다면 문체와 어휘의 차이 때문에 해석에 많은 어려움을 겪는다. 한문으로 글을 쓸 때는 미리 온갖 고전의 용례를 읽어둔 뒤 이를 바탕으로 문체를 가다듬었기 때문에, 통사 구조와 어휘 선택만 보고도 상대방이 읽어온 책의 종류[* 예: 선진시대의 고전을 자주 읽는지, 당송시대의 문학과 역사서를 자주 읽는지, 저잣거리의 패관문학을 자주 읽는지 등.]나 교양 수준을 짐작할 수 있었다. 유교를 국시로 삼은 지배층은 춘추전국시대~당송 시대까지의 문체는 그럭저럭 용인해 주었지만, 가급적 사서삼경에 기반한 문체를 사용하기를 원했다. 그러나 글을 쓰는 주체는 언제나 저마다 자기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이었다. 따라서 아무리 [[상고한어]] 시절의 문법을 준수하여 쓰는 정격한문이라고 하더라도, 글쓴이가 사람인 이상 시대와 지역의 영향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한문을 배우는 식자층도 자기 살던 시대와 사회의 영향을 어느 정도는 받음은 필연이었다. 이는 훗날 조선에서 [[문체반정]]의 배경이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