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한독관계 (문단 편집) === 독일인이 보는 한국 === 19세기 말에는 서로 외교적인 접촉은 있었지만, 양국 간의 국민적 인식은 거의 전무한 수준이었다. 그럴 만도 한 것이, 당시 독일(프로이센)은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 [[프로이센-프랑스 전쟁]] 등을 거치며 이제야 [[독일 제국|통일 국가]]가 들어선 상황이었고, 조선은 각종 내우외환에 시달리느라 한반도에 별로 간섭할 의지도 능력도 없는 머나먼 유럽 국가에 관심을 둘 겨를이 없었다. 특이사항으로는 1899년 [[하인리히 폰 프로이센]][* [[빌헬름 2세]]의 동생]이 대한제국을 방문하기도 했고, 독일 제국의 [[빌헬름 2세]]가 [[대한제국]]의 [[고종(대한제국)|고종]]을 Kaiser von Korea라 칭해 주었던 기록이 있지만, 그래봐야 외교적 수사에도 미치지 못하는, 그냥 그랬다더라 하는 수준의 이야기일 뿐, 구한말의 정세에 독일이 실질적으로 관여하지는 않았다. 정치인들을 제외한다면 독일에서 대중적으로 알려진 첫 한국인은 아마도 [[1936 베를린 올림픽]] 당시 [[한국인]] [[금메달]]리스트였던 [[손기정]]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당시 한반도는 [[일제강점기]]를 겪고 있었기 때문에, [[손기정]]의 소속은 [[일본 제국]](정확히는 정식 일본인이 아닌 일본령(領) 조선)이었으며 세계인들도 당연히 [[한국인]]이 아닌 [[일본인]]으로 인식했을 것이다. 광복 후 한 공무원(혹은 의원)이 독일의 손기정 기념비에 기록된 국적을 바꾸려 시도하기도 했으나, 그런다고 공식 기록이 바뀌진 않았고 훼손죄로 처벌을 받았다. 현재 [[국제올림픽위원회|IOC]] 기록에선 일단 일본 선수로 기록하고, 손기정 선수에 대한 당시 조선의 상황 설명을 첨부하는 수준이다. 이것은 메달리스트들의 나라가 독립한 경우가 많고 독립한 국가에서도 옮겨다니는 경우가 적지 않아서 국적을 바꿔달라고 요청하는 것을 다 들어주기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원칙 때문에 [[토리노]]에서 딴 [[빅토르 안]]의 메달은 [[러시아]]로 넘어가지 않는 것. 다른 경우론 수재 지원금을 주기도 했다. 또한 2차 대전 패전 이후 서독에서는 1946년에 출판된 작가 [[이미륵]]의 소설 'Der Yalu fließt([[압록강은 흐른다]])'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교과서에도 수록될 정도로 독일인들에게 호평을 받았다. 이후 [[축구]]선수 [[차범근]]이 [[분데스리가]]에 진출, 맹활약하며 독일 내에서 한국에 대한 인지도를 상당히 상승시켰다. 차붐의 등장으로 인해 한국이란 나라를 처음 알게 되었다는 반응이 대다수. '''갈색 폭격기 차붐'''이라는 별칭으로 불렸던 차범근은 이후 분데스리가 전설의 반열에 오른다. 이런 차범근의 업적은 이후 한국 선수들의 독일 진출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게 된다. 실제로 그의 독일 내 위상은 말하면 입 아픈 수준이다. 자세한 것은 [[차범근/선수 경력 #s-5|여기로]]. 이 영향력으로 가장 큰 수혜를 입은 선수가 바로 [[손흥민]]. 많은 한국, 아시아 선수들이 독일을 거쳐갔지만 손흥민의 활약상은 차범근 이후의 아시아 출신 공격수 중 가장 좋은 평가를 받았다. 오늘날 손흥민이 세계적인 선수로 성장한 뒤로는 오히려 분데스리가 측에서 먼저 "Made in Bundesliga"라고 강조하며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독일인]]들 가운데는 남북간의 분쟁이나 북한이 국제사회에 끼치는 악영향을 쌍방과실로 인지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독일 내에서 진보 인사로 분류되었던 [[루이제 린저]]가 진성 친북 인사라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는 동서독이 실제로 남북한과는 달리 [[냉전]]기에도 제법 상당히 활발하게 교류하였으며 서방권 국적자가 [[동독]]에 여행차 방문하고, 심지어는 동독 주민을 숨긴 차량으로 국경을 통과해 나오거나, 동독 정부에서 자국의 이산가족 노인들이 서독에서 여생을 마치는 것을 허락하는 등 여러모로 현대의 남북한과는 달랐다. 물론 적대관계인 만큼 당연히 각종 스파이 행위들은 빈번했으며, 여행이나 국경 통과 자체가 원천 금지되지는 않더라도 엄청난 검문수색을 받아야 했다. 또한 동독인의 불법 월경이 적발되면 감옥행은 기본에 북한처럼 즉결처형당하는 경우도 있었고, 이산가족 노인들을 보내준 것도 경제활동을 못하는 부양인구를 줄이겠다는 실리적인 이유 때문이었다. [[동방 정책]]으로 대표되는 관계개선 시도를 여러 차례 했던 전적이 있기 때문에, 남북한이 (정치적 이유가 아니라 국민감정조차도) 서로를 죽일 듯이 노려보는 상황이나 북한의 극한도발→남한의 강경반응→더 강한 도발로 이어지는 구조를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이쯤 보면 알겠지만 [[동독]] 입장에서 [[북한]]은 통계상으로 나타나는 경제력부터 지도층의 정신상태에 이르기까지 비교되는 것조차 실례인 국가이므로, 남북관계의 문제를 쌍방과실로 인지하는 건 양국의 서로 다른 역사적 경험에 기인한 [[오해]]에 가깝다고 봐야 한다. 무엇보다 '''동서독은 남북한처럼 [[6.25 전쟁|전쟁]]을 치른 적이 없었으니.''' 최근 들어 삼성, LG 같은 한국 기업들의 성공적인 국외 마케팅과 함께 두각을 나타내는 예술계 인사 등으로 “한국을 세계에 알리는 기회의 폭이 아주 넓어졌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2005년에는 프랑크푸르트 국제 도서전에서 한국이 주빈국으로 행사를 성공리에 치렀고, 2004년 베를린 영화제에선 김기덕 감독이 <사마리아>로 감독상을 수상했으며, 2007년엔 박찬욱 감독의 <싸이보그지만 괜찮아>는 알프레드 바우어상을 수상하면서 독일뿐 아니라 유럽 전역에 한국영화를 알렸다. [[2012년]]에는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전세계적으로 히트를 하면서 독일에서도 관심을 보였으며, 싸이는 MTV 유럽 뮤직 어워드인 EMA에서 공연을 가진 뒤 최고의 권위를 가진 상인 EMA 베스트 비디오 상을 타기도 했다. 다만 이 당시인 2012년만 해도 [[한류]] 자체가 [[서브컬처|일부 계층의 문화]]를 벗어나지 못한다는 한계점이 명확했으나, 2021년 기준으로 [[방탄소년단]]과 [[오징어 게임]]을 위시한 다양한 한류 콘텐츠의 유입과 확장성으로 독일인의 한국에 대한 이미지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https://www.ytn.co.kr/replay/view.php?idx=48&key=202201011930563882|#]] 한편 한국은 [[1990년대]] 후반부터 독일 [[비자]] 발급이 용이해지기 시작했으며, [[2000년대]]가 돼서는 비노동 비자일 경우 독일 비자를 찍어주는 기간이 최소 소지 금액에 비해서 길어졌다. 쉽게 말해 한국인이 독일에서 불법 체류할 가능성이 적다고 판단했다는 의미로, 한국의 경제적 성장을 어느 정도 반영했음을 알 수 있다. 이미 1972년부터 한독간 사증면제협정에 따라 독일로의 무비자 입국 및 90일간의 체류가 가능했으며 장기체류 허가 또한 현지에서 직접 받을 수 있다. 이는 독일인들의 한국 입국시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참고로 독일에 무비자 입국이 가능한 비 [[유럽 연합]] 국가들은 [[대한민국]], [[미국]], [[캐나다]], [[일본]], [[호주]], [[뉴질랜드]], [[이스라엘]] 뿐이라 한국이 독일 정부로부터 불법체류 가능성이 낮은 국가로 대우를 받는다고 할 수 있다. 단 코로나19 사태 이후 양국의 비자 면제 협정에 묘한 기류가 흐르고 있는데, 유럽 지역의 코로나 대확산에 따라 2020년 3월 이후 모든 비EU 국가발 입국과 비자 발급을 독일을 비롯한 EU 국가들이 금지하였다. 이후 한국도 상호주의에 입각해 독일을 비롯한 쉥겐 협약국의 한국 무비자 입국을 중지하였다. 그리고 EU는 다시 2020년 7월부터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 통제를 잘하고 있는 나라들 위주로 기존 정책에 기반한 무비자 입국 혹은 비자 소지 입국 허용을 회원국에 권장했다. 다만 독일은 자국에서 이 조치를 구체화 하면서 한국, 일본, 중국은 여기에 조건을 달아 일단 보류하였다. 이 3개국에서 독일인에 대한 무비자(대한민국, 일본) 혹은 비자 발급 및 비자 소지 입국(중국)을 허용할 경우라는 조건을 달아 2021년 6월 현재도 이전처럼 독일인은 한국에 무비자 입국을 할 수 없는데,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같은 시점에도 독일인의 무비자 입국을 허용하지 않고 있던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우루과이 등에는 독일로의 무비자 입국을 조건 없이 허용 했다는 점이며, 또한 다른 EU 국가인 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 등은 한국인에 대한 무비자 입국을 허용했다는 것. 이러한 한국과 독일의 해당 쟁점은 [[강경화]] 장관이 8월 독일을 순방하면서 표면화 되었으며, 하이코 마스 독일 외교부 장관이 한국 측에게 상호주의를 지켜 독일 및 EU에 무비자 입국을 다시 허용할 것을 압박했다고 한다. 또한 EU 전체에 대해 무비자 입국을 허용하지 않고 있는 한국에 대해 아예 EU 차원의 입국 허용국 리스트에서 한국을 빼자는 입장이라는 보도까지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여기서 독일이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우루과이 등에는 조건도 없이 먼저 무비자 입국을 허용했음을 상기한다면 굳이 한국에만 먼저 독일인에 대한 무비자 입국 개방을 요구하는건 여간 불평등하고 고압적인 입장이 아닐 수 없다. 2020년 7월 24일에 베를린에서 열린 훔볼트포럼(Humboldt Forum) 한국관 전시 방안에 대한 워크숍에서 홈볼트포럼 측 전시담당자는 "조선은 16세기에서 19세기까지 청나라의 속국이었고, 1905년부터 일본의 식민지였기 때문에 독일의 수집가들이 한국문화에 관심이 없었다"고 잘못된 인식을 밝혔던 것을 볼때, 확실히 한국 역사를 잘 모르는 것이 여실히 드러났다.[* 애초에 16세기에 청나라는 있지도 않았다. 명나라면 몰라도.][[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2D&mid=shm&sid1=104&sid2=233&oid=001&aid=0011773479|#]] [[2021년]] 9월 27일에 [[일본 외무성]]에서 프란츠 요제프 융 전 독일 국방장관이 [[동해/명칭 문제|동해 표기를 반대하고 일본해 명칭을 지지]]하는 내용의 동영상을 유튜브에 올렸다.[[https://news.naver.com/main/read.naver?mode=LSD&mid=sec&sid1=104&oid=025&aid=0003140974|#]]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