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한남대교 (문단 편집) == 기타 == 초기에는 4차선으로 계획되었으나, 비슷한 시기 북한에서 6차선 교량을 평양에 개통시키자 부랴부랴 6차선으로 다시 계획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당시 북한은 평양의 대동강을 가로지르는 옥류교를 왕복 4차선 교량으로 짓고 있었는데, 이를 의식해서 한남대교를 착공 3개월 만에 왕복 6차선으로 변경하였다고 한다. 물론 평양의 다리보다는 미묘하게 더 넓은 정도로 지금은 아예 폭 51m짜리 쌍둥이 다리로 커버렸으니 흘러간 역사의 한 페이지가 되었다. 한남대교는 처음 박정희 대통령이 [[경부고속도로]]의 개발을 밀어붙인 것도 있지만, 아직까지 안보가 불안했던 1966년 제2의 [[한강 인도교 폭파]]를 막기 위해 강북의 서울시민들이 유사시에 피난 갈 때 건널 다리를 크게 지어야 할 필요가 있었다. 오히려 당시 주관자였던 서울시장 김현옥이 한남대교의 건설 우선순위를 뒷순위로 미뤄뒀다가 경부고속도로 건설현황을 실시간으로 체크하던 박정희 대통령의 불호령 때문에 조속히 건설을 밀어붙인 것이다. 2004년 3월 11일 [[남상국]] 전 대우건설 사장이 투신자살했다. 방송인 [[송해]]의 외아들이 1986년에 이 곳에서 [[오토바이]] 사고를 당했다. 3일 동안 [[혼수]]상태로 있었지만 결국 요절했고, 이 사건 이후 [[송해]]는 2022년에 96세를 일기로 타계할 때까지 30년 넘게 한남대교로는 가지 않았다고 한다. 비슷한 경우로는 [[청량리역]] 크레인 전복사고로 여동생을 잃은 후, 여동생이 지망한 학교인 [[중앙대학교]] 근처로 가지 않는 인디가수 [[요조(가수)|요조]]가 있다. 2004년 상류 쪽 다리의 재개통 직전에 [[서태지]]의 [[Live Wire]] MV를 찍었다.[* [[http://youtu.be/0f1TcwZW-hw|#]]] 2분 40초경부터 아직 차선도색이 되지 않은 포장상태의 상판이 나온다. 2009년 즈음까지만 해도 다리 남북단에 [[호랑이]] 석상 2쌍이 있었다. 사람들이 흔히 [[사자]]상이라고 불렀지만, 몸통에 줄무늬를 묘사한 흔적이 있었으므로 [[호랑이]]가 분명했다. 1992년 보도된 기사에 따르면 한남대교에 있는 호랑이 석상의 이빨을 만지거나 끓인 물을 마시면 운수가 트인다고 밤중에 망치로 이빨을 떼어가는 사람들이 있었다.[* [[https://news.joins.com/article/2756219|기사]]] 그러나 2010년쯤에 [[해태]] 석상을 먼저 남단에 세우고 나중에는 북단에도 세웠다. 2015년 영화 [[강남1970]]에 1969년 즈음 한남대교가 나온다. 한남대교를 건너는 장면에서 [[경부고속도로]] 개통을 축하하는 구조물이 보인다. 2017년 영화 [[택시운전사]] 초반 1980년 5월 배경의 한남대교가 나오는데, 그 시절인데도 지금처럼 교량이 2개로 나오는 [[창작물의 반영 오류|재현 오류]]가 있다. 아무래도 그냥 촬영 당시([[2016년]])의 한남대교 모습 그대로에 다니는 차량들만 옛날 차들로 하고 일부 주변경관과 이정표의 글씨체를 그래픽으로 손 보는 정도로 끝낸 듯하다. 한남대교 남단에 한남새말카페가 있었으나 2018년 들어 폐업한 뒤 현재는 K-POP 체험관으로 바뀌었다. 이 근처에 과거 새말나루터가 있었던 곳이라 이를 표시하는 푯말이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