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한나라 (문단 편집) == 행정 제도 == [[파일:attachment/huhan.jpg]] [[후한 13주|한나라의 행정구역]] '''[[군현제]]의 기틀이 잡힌 것도 이 시대.''' 시작은 [[이사(전국시대)|이사]]의 건의에 따라 진나라가 먼저 시행했지만 순식간에 나라가 멸망했다. 이후 진나라를 멸망시킨 [[항우]]는 천하를 다시 제후들이 나누어 통치하는 [[봉건제]](封建制)로 [[항우의 18제후왕 분봉|부활시켰지만]], 실패하고 반대로 유방은 [[장량(전한)|장량]]의 건의에 따라 천하를 분열케하는 봉건제 대신 봉건제와 군현제를 혼합한 [[군국제]](郡國制)를 실시하였고[* [[역이기]]는 이때 봉건제를 주장하다가, 장량에게 논파당하고 유방에게 욕을 얻어 먹는다.] 이후 [[오초7국의 난]]과 무제 시기를 걸쳐 중국 전체에 군현제가 완전히 확립되었다. 이 군현제는 이후 장장 2000년간 중국 통치 시스템의 기본이 되었으며, 이로 인해 광대한 지역에 중앙 집권의 영향력을 완전히 확립할 수 있었다. [* 다만 타 지역보다 일찍 중앙 집권형 제국을 이루었다는 서술은 완전히 틀린 말이다. [[중동]]에서는 이미 [[아시리아]] 제국 시절에 막강한 중앙 집권 제도를 확립했고, 이후에도 [[아케메네스 왕조]], [[셀레우코스 제국]], [[우마이야 왕조]], [[아바스 왕조]], [[티무르 제국]] 같이 막강한 중앙 집권을 이룬 제국들이 그 뒤를 이었다. 이들의 국력은 동시대 중국과 동등하거나 강력했다. 오히려 [[기원전 2세기]]에 와서야 안정적인 중앙 집권을 이룬 중국은 빠른편이 아니나 이후 중국은 세계적으로 강력한 중앙 집권을 이룰 수 있었다. 한나라의 고도화된 중앙 집권의 예로 전국의 백성들을 상대로 실시한 인구 조사를 들수 있는데 이는 위에서 열거한 중동 제국이나 비슷한 시기의 로마에서도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다.] 또한 [[무제(전한)|한무제]] 대부터 지방관이 각지의 인재를 천거하여 중앙에 등용하는 [[향거리선제]]가 시작되었다. 지방의 인재들을 유교 정신에 따라 천거하면서 지방세력이 중앙의 유교 원리를 받아들이고 또한 지방의 [[호족]]들이 중앙에 진출할 기회를 활발히 얻게 되어, 지방 출신 중앙 관료들과 [[외척]]과 [[환관]] 중심의 황제 세력이 균형을 이루었다. 이 정책은 [[후한]] 말까지 계속되었는데, 한나라 말기에 가서는 [[환관]]과 [[외척]]간의 정쟁이 심해지고 호족들이 중앙의 정쟁에 말려드는 식으로 변했으며, 환관 세력이 지방 사대부를 집단으로 감금하는 [[당고의 금]]과 같은 사건으로 [[향거리선제]]는 무너지고 지방과 중앙 간의 결속이 사라지게 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