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한나라 (문단 편집) == 영향 == 사실상 '''[[하나의 중국]]'''을 가능하게 한 나라다. 그 전까지의 중국은 지역에 따라 언어, 문자, 단위가 다 제각각이었으며, 따라서 수많은 여러 국가로 나뉘어져 있었다. 이러한 차이점은 사람들의 생각에도 강하게 뿌리내려 있었으므로, 서로 간에도 민족적 동질 의식보다는 서로 다른 나라 사람들일 뿐이라는 인식이 강했으나[* 그렇기 때문에 한나라 이전의 통일 왕조인 진나라가 그렇게 빨리 멸망했다.], 한나라가 중국을 통일한 후 전한과 후한에 이르며 장장 400여 년간 같은 나라 사람으로 지내다 보니, 자연스럽게 우리는 하나라는 인식을 가지게 되었다. 중국을 대표하는 민족인 [[한족]]이 사실상 하나의 민족이라고 보기 어려운 외관과 혈연 그리고 문화적으로 차이가 나는 많은 지역의 수많은 민족을 통합하여 이룩한 민족임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것을 중국이라는 하나의 테두리 안에 있을 수 있게 한 점은 한나라가 있었기 때문이다. 어찌하여 중국의 민족을 한나라의 한(漢)자를 따서 한(漢)족이라 부르는지 가만히 생각해보자. 그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중화(중국)|중화]]'''(中華)가 시작된 뿌리라 봐도 무방하다. 중국에서 탄생한 문자인 한(漢)자의 이름만 봐도 한나라의 위상을 짐작할 수 있다. 오늘날 [[중화사상|중화주의]]는 중국인에게나, 세계인에게나, 단순히 '중국의 [[민족주의]]'로 해석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근대 이전 동양의 국가 질서를 고찰해보면 여기서 내세우는 중화의 의미는 현대 중국이 내세우는 근대적 민족주의적 사고 방식과 다르다. 이는 [[서양]]의 [[로마 제국]]과 비슷한 의미의 '동양의 보편적인 질서'라고 할 수 있다. 주변국에게 책봉과 조공이라는 자신들의 질서를 강요하고 이에 따르지 아니하면 징벌하며 주변국들이 칭신하고 조공을 바치면 막대한 하사품을 내려 이들을 복종시켰다. 그리고 이를 따를 경우, 제국은 조공국들에게 안정과 번영을 제공할 것임을 약속한다. 제국은 이 질서를 유지하는 것 자체에서 이득을 거두며, 질서가 도전받는 경우를 제외하면 별도의 무력 행위나 제재를 통해 이익을 추구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 기틀의 기반 사상을 형성한 유교를 선택한 것이 바로 한나라이며 이 중화 의식이 동양 각국의 세계 인식에 영향을 주었으며 후대엔 이런 보편적인 질서를 내제적으로 적용시킨 [[소중화]] 사상이 나오는 등 동양사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크다고 할 수 있다. 그 때문에 길고 긴 역사를 자랑하는 [[중국사 관련 정보|중국사]], 그리고 더 나아가 [[동아시아사]]에서도 대단히 중요하게 취급받으며 상당한 입지를 가지고 있다. 단순히 하나의 중국이 시작되었다는 것뿐만 아니라, 일단 동아시아 문화권의 핵심인 [[유교]]가 국학의 지위를 가지게 되었고[* 다만 전한은 도가적 사상과 도교가 강세여서, 한무제가 유교를 국교화하면서도 할머니인 [[효문황후 두씨]]의 눈치를 보느라 고생을 했고, 국학이 된 다음에도 도가적 사상과 도교는 여전히 강력했다. 후한은 다르다. [[광무제]] 유수는 '''[[태학]](太學)에서 공부'''했던 사람으로, 유교의 세는 후한 때 훨씬 강해진다. 그런데 여담으로 광무제는 참위와 도참에 꽤 집중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또 다른 핵심인 [[율령]](律令) 역시 기원전 130년 장탕(張湯)과 조우(趙禹) 등에 의하여 만들어졌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