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한국프로야구/1994년 (문단 편집) == 개요 == 1994년에 열린 프로야구 시즌. 팀당 126경기씩 총 504경기가 열렸다. 1993년 [[김승연|오너]] [[김호연(기업인)|형제]]의 재산 분할로 [[빙그레(기업)|빙그레]]가 [[한화그룹]]에서 분리되면서, 한화그룹 내에 남게 된 야구단은[* 애초에 창단할 때부터 이글스 야구단의 지분은 김승연 회장 측에게만 있었다. 한국화약이라는 당시 상호명을 쓰기에는 인지도가 너무 낮아서 그룹의 소비재 산업 계열사인 빙그레의 이름을 빌려썼을 뿐이다. [[OB 베어스|두산이라는 그룹명 대신 맥주 계열사 이름을 집어넣은 팀]]도 똑같은 사례다.] 1994년 그룹명을 따라 [[한화 이글스]]로 이름이 바뀌었다. 이 해는 [[LG 트윈스]]의 신바람 야구와 매번 꼴찌 언저리에서 맴돌던 인천 연고팀 [[태평양 돌핀스]]의 돌풍, 그리고 직전해에 패권을 다투었던 해태와 삼성의 몰락으로 요약 할 수 있다. 선동열이 그동안 신계에서 내려와 인간계의 평범한 성적을 기록하면서, [[이종범]]과 [[조계현]]이 하드캐리하지 않았다면 해태는 아예 준플레이오프 안에도 못 들었을 수도 있던 시절. 삼성도 김성래, 강기웅, 이종두가 집단 노쇠화가 걸리면서 직전해 만큼의 파괴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시즌 전 팬들을 충격에 빠뜨린 [[김상훈(1960)|김상훈]]-[[한대화]] 트레이드로 포스트시즌 진출조차 힘들것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LG 트윈스]]는 [[이광환]] 감독이 추구하던 자율야구를 100% 활용하여 신바람 야구를 선보였다. 타선에서는 [[류지현(야구)|유지현]], [[김재현(1975)|김재현]], [[서용빈]]의 신인 3인방이 맹활약했고 [[해태 타이거즈]] 출신의 [[한대화]]도 힘을 보탰다.~~허나 그 해만 반짝했다는 것은 함정~~ 투수진에서는 [[이상훈(좌완투수)|이상훈]]-[[김태원(야구선수)|김태원]]-[[정삼흠]]의 선발진과 [[차동철]]-[[차명석]][* 다만 이 해 차명석은 한국시리즈 엔트리에 들지 못했다. 그리고 차명석이 제대로 활약한 시즌은 1997년 시즌이었다.]-[[김용수]]의 계투진이 버티고 있어 예상치 못한 돌풍을 일으켜 압도적인 1위를 차지했다. 여기에 고졸신인 [[인현배]]가 전반기에만 9승을 기록하며 10승을 기록, 선발진의 한 축을 맡아줬다. 최다연승은 5연승에 불과했지만 단 한 번도 3연전 피스윕이 없었고 최다연패는 3연패 3번이 전부였다. 그리고 전 구단 상대전적 최소 우세이다. 2위 태평양에 특히 강했는데 전적이 13승5패이다.[* LG가 상대한 팀 중 가장 약했던 팀은 의외로 6위팀 롯데였는데 8승8패 동률 상태에서 마지막 2경기 승리로 간신히 10승8패로 우위를 점했다. 그리고 다음해 롯데는 LG전 후반기 8승1패 등 12승6패로 한국시리즈 2연패에 도전했던 LG의 발목을 제대로 붙잡았다.] 극악의 투타 불균형 때문에 매번 동네북 신세를 면치 못하던 태평양 돌핀스는 두 자릿수 승수를 올린 [[김홍집(야구)|김홍집]]-[[최상덕]]-[[최창호(야구선수)|최창호]]-[[안병원(야구선수)|안병원]]과[* 두 자릿수 승수 적립에는 실패했으나 훗날 유니콘스 왕조의 에이스가 되는 [[정민태]]도 8승을 올리며 투수왕국의 일원으로 힘을 거들었다.] 마무리 [[정명원]] 등 투수진의 활약에 주포 [[김경기]]가 홈런 순위 2위에 랭크되는 맹활약 덕분에 시즌 2위에 올랐다. 덧붙여 '''해태를 상대로 전년에 비해 11승을 더 기록하면서 천적관계를 완전히 바꾸었다.''' 근데 다음해에 또 해태에게 6승 12패를 기록했지만.. 개인 기록으로는 [[이종범]]이 0.393의 타율과 196개의 안타 84개의 도루를 기록하며 전년도 신인왕에 오르지 못한 것을 한풀이하듯 뛰어난 성적을 기록했다. 20년후 안타는 [[서건창]]이 깼지만 도루와 타율은 아직도 파천황. --이때 힘을 다 썼는지 이종범은 이후 파워타자 30-30형 타자로 변신한다-- 전 시즌 5위로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던 [[빙그레 이글스]]는 이 해부터 팀명이 [[한화 이글스]]로 바뀌고 전 수석코치이자 롯데 감독이던 [[강병철]]이 [[김영덕]]의 후임 감독이 되었다. 초반 마무리투수 송진우의 난조와 장종훈의 부상으로 하위권으로 처지는 부침이 있었지만 여름을 기점으로 구대성 마무리가 자리잡고 한용덕-정민철의 원투펀치를 내세우며 치고 올라가 태평양-해태와 2위 경쟁 끝에 해태와 공동 3위를 차지했다. 이민호와 신인 박지상이 기대 이상의 모습을 보여줬다. 그러나 482득점으로 최소득점에 득실은 -28로 피타고리안 승률상으론 5위였다. 반대로 삼성은 프타고리안 5할 이상임에도 실제 5할을 못채웠다. 하지만 [[OB 베어스]]에게는 '''흑역사 of 흑역사'''였는데 초반 강력한 우승후보라는 평가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7위로 추락하더니 급기야 [[OB 베어스 항명파동|선수들이 집단 이탈하는 사건]]까지 일어났다. [[쌍방울 레이더스]]와의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김정환 응원단장은 "'''여기 오신 여러분들이 진짜 OB 팬들이십니다. 내년은 기필코 우승입니다'''!"라고 외쳤는데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1년 후]] [[1995년 한국시리즈|OB가 진짜로 우승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