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한국여자프로농구 (문단 편집) === Inside WKBL === [[http://cafe.daum.net/insidewkbl?t__nil_cafemy=item/|링크]] 한때 WKBL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다 모여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던 곳. 위에 기술된 아이 러브 WKBL의 후계자로 오래된 카페원들은 사실상 아이 러브 WKBL의 구성원을 그대로 물려받았었다. 따라서 카페 운영진과 오래된 회원들은 대개 90년대 혹은 2000년대 초반부터 여농을 봐온 사람들이었고, 70년대 여농(실업 시절)을 본 사람까지 존재했다. 이 당시의 기조, 즉 2000년대식 인터넷 문화와 예의를 준수하는 분위기를 유지하며 오랫동안 유지되었다. 물론 사람 사는 세상이 다 그렇고, 이미 전신이었던 아이 러브 WKBL이 폭파된 사건에서 알 수 있듯 이곳 또한 심심치 않게 [[키보드 배틀|키배]]가 벌어지며 신고 게시판에는 신고자와 신고당한 자 간에 키배가 또 벌어지도 했고, 심한 경우 서로 간에 전번 까고 통화하여 마무리 짓는 일도 발생했다만... 심지어 12-13 시즌 60-70대 분들 중 [[틀딱충|일부]]가 경기 중 나눠주는 음료수, 상품 등을 갈취했다는 목격담이 Inside WKBL 카페에 올라오기도 했다. 그러나 2010년대 후반을 지나 2020년대에 이르자 '''회원들이 나이를 먹고''', '''이들이 응원하던 선수들도 상당수 은퇴하고''', 인터넷 환경이나 문화가 바뀌면서 자연스럽게 그 세력이 크게 줄어들었다. 사실 이건 인사이드WKBL만의 문제가 아니라 [[다음 카페]]에 기반한 팬사이트들 대부분이 겪고 있는 문제이긴 하지만.. 다만 마땅히 갈만한 다른 대안이 없은 --늙은-- 오래된 회원들이 어느 정도 남아 있어서 현황 유지를 하고 있긴 하다. 아래는 이곳이 가장 잘나가던 2010년대 중반 무렵 팀별 팬들의 성향 분석. 뭐 아래 언급된 선수들 대부분이 은퇴한 2010년대 후반 이후로는 그땐 그랬지 수준의 이야기긴 하다만... * [[인천 신한은행 에스버드|신한은행]] 팬들: 2000년대 초반 현대 하이페리온 시절부터 응원하던 사람들과 [[전주원(농구)|전주원]], [[최윤아]], [[김단비(1990)|김단비]] 선수의 팬들이 상당수를 차지했다. 충성도도 높으며 응집력 또한 뛰어나다. 신한의 리즈 시절에는 카페 내에서 신한까와 키배를 종종 벌이기도 했다. * [[용인 삼성생명 블루밍스|삼성생명]] 팬들: 90년대부터 [[박정은(농구)|박정은]], [[이미선(농구)|이미선]] 선수를 응원해온 팬들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여농팬계에 오랫동안 발을 담궜던 이들이 많아 오래 전 일들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키배력과 응집력은 신한 다음이었으며 구단에 대한 충성도는 신한보다 더 했다. 더불어 지나친 충성도와 애착을 엉뚱한 방향으로 분출한 이들도 많았다. 때문에 신한의 리즈시절, 신한까들의 선봉장 역할을 이들이 맡았다. 신한이 잘나가던 13년 6월 당시, 카페에서 강퇴 내지 경고를 받은 이들은 신한팬 아니면 삼성팬들이었을 정도... 참고로 삼성에서 선수생활을 했던 [[박정은(농구)|박정은]] 코치의 남편인 배우 [[한상진]]씨도 이 카페 회원이었다. * [[청주 KB 스타즈|KB]] 팬들: [[변연하]] 선수를 따라 삼성에서 넘어온 팬들이 중심을 이뤘었다. [[홍아란]]의 팬들도 많았다. 팀에 대한 애착이나 충성도는 삼성을 능가한다는 얘기도 있었다. 대표적인 예로 11-12, 12-13 시즌 올스타 팬투표율을 보면 국민은행 선수들은 기본 1만 표를 넘었을 정도. 당시 만년 3위였던 팀의 팬들답게 팬들의 세력도 3위 정도였다고 보면 된다. 한마디로 신한 팬들과 삼성 팬들이 싸움을 [[팝콘]]을 먹으며 구경하는 포지션. 다만 삼성에서 넘어온 충성심 높은 팬들이 많았기에 키배의 불똥이 이들에게까지 튀면 제대로 된 화력을 보이기도. * [[OK저축은행 읏샷|KDB생명]][* WKBL인사이드의 전성기 시절 대부분 KDB생명으로 존재했던 구단이기에 이를 존중해 KDB생명으로 적는다.] 팬들: 오랜 금호 팬들을 중심으로 신생 KDB에 유입된 팬들이 뒤섞여 있었다. 어차피 금호나 KDB나 연고지도 같으니 무슨 상관이냐고 하겠지만.. 사실은 예전부터 팀을 응원했던 팬들과 [[한채진]], [[신정자]], [[이경은]]이 영입됨에 따라 이 선수들을 따라 새롭게 이주해 온 팬들이 합쳐졌던 것으로 보면 된다. 따라서 팀에 대한 애착과 충성심은 아무래도 신한과 삼성, KB의 3 강호에 비해 다소 밀렸다. ~~이때는 몰랐다. FA로 들어온 한채진, 신정자, 이경은이 선수생활 대부분을 KDB에서 보낼 줄은~~, [[김보미(농구선수)|김보미]]를 따라 들어온 팬들도 있었지만, 김보미는 2013년에 곧바로 팀을 떠나버려 그 팬들도 오래 남지는 않았다. * [[부천 하나원큐|하나외환]] 팬들[*위의 KDB와 마찬가지로 WKBL인사이드의 전성기 시절 구단명으로 호칭.]: 과거 신세계 리즈 시절(90년대 후반~2000년대 초반) 팬들과 극소수의 새로 유입된 팬들로 구성되어 이들이 함께 여론을 이끌어 나갔다. 그런데 문제는, 2000년대 초중반 전성기 시절 [[이문규]] 감독 체제 이후 신세계의 성적이 바닥을 치자 팬들도 빠져나가고 남아 있는 팬들의 절망이 점점 심해지고 있던 상황. 참고로 이문규는 먼 훗날 국대에서 거하게 사고를 치는데, 하나외환의 옛 팬들은 '''그럴줄 알았다'''며 냉소했다고... 간단히 말해 비슷한 시기 크보의 [[한화 이글스|어떤 구단]]과 상황이 비슷했다. 팬들의 구단에 대한 애착과 충성심은 거의 KB 팬들 버금가는 수준이었지만 대개 온순한 성향이라 키배는 잘 안 벌어지고 벌어지더라도 강하게 스파크가 일어나지 않았다. 아니 사실은 성향이고 나발이고 간에 만년 하위권이다보니 팬의 수도 적었고 있는 팬들도 자기 구단 신경쓰기 바빠 남의 구단 사정에는 아예 끼어들지도 않았다. [[김정은(농구선수)|김정은]], [[강이슬]] 선수가 가장 인기 있었다. * [[아산 우리은행 위비|우리은행]] 팬들: 2000년대 중반 잘나갔을 때까지만 해도 많은 팬들을 보유했다. 문제는 그게 [[타미카 케칭]]빨이었다는 것. 2008년부터 12년까지 외국인 선수 제도를 폐지하자 곧장 암흑기를 걷게 되고 그 기간 동안 [[박명수(농구)|박명수]] 감독이 [[http://www.nocutnews.co.kr/show.asp?idx=540636/|성추행]]을 일으키거나 [[김광은]] 감독이 폭행을 저지르는 등 팀이 깊디깊은 수렁에 빠졌고 꿈도 희망도 없는 이 기간 동안 기존 팬들이 썰물 빠지듯 빠져나갔다. 즉, 카페가 생기고 전성기에 접어들 당시 팀의 암흑기였고 이전 전성기는 누가봐도 외국인 선수빨이었던 탓에 팬 수가 적었다. 내성적이고 점잖은 분위기라 그런지 키배에 거의 맞딱뜨리지 않고 좋게좋게 끝내는 편이고 타 팀 팬들도 우리은행에 시비를 거는 일이 거의 없었다......지만, 사실은 팬 자체가 적어서 그랬다. 그런데 이랬던 팀이 12~13 시즌 갑작스럽게 우승했다. 그게 너무나 갑작스러웠기 때문에 오히려 반응이 시원찮았고 이때 우승으로 유입된 신입 팬들 대부분도 다른 팀을 좋아하다가 팀을 갈아탔다거나, 세컨 팀으로 응원하게된 경우인지라 구단에 대한 애착이나 팬들끼리의 응집력도 거의 최하였다. 결국 우리은행의 팬들은 온라인 활동은 가장 뜸한 편이었고, 선수 개개인의 팬들이 오프라인 상에서 왕성한 활동을 벌이고 있었다는 정도로 정리할 수 있었다. '''그런데 사실은 이때 우리은행은 깜짝 우승이 아니라 한동안 최강자로 군림하였다. 문제는 이미 이 시점에 인사이드WKBL은 전성기를 지나 저물어가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은행의 성적이나 인기는 인사이드WKBL과 별다른 관련이 없게 되었다는 점.''' 인기 있었던 선수는 [[김은혜(농구)|김은혜]], [[양지희]], [[박혜진(농구선수)|박혜진]], [[임영희]], 이승아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