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한국독립당 (문단 편집) == 1930년에 [[상하이]]에서 창당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여당 == ||<-5> '''[[한국독립운동 정당|{{{#000000,#fff 한국독립운동 정당}}}]]''' || || [[한국독립당|{{{#fff 한국독립당}}}]][br]{{{-2 {{{#fff (임시정부)}}}}}} || {{{+1 →}}} || {{{#000,#fff '''한국국민당'''}}} || {{{+1 →}}} ||<|3> [[한국독립당]][br]{{{-2 (재건임시정부)}}} || 1930년 1월 25일에 [[이동녕]], [[안창호]], [[김구]] 등 26인이 독립투쟁전선 통일과 지방파벌 청산이란 목적 하에 상해에서 결성한 당. 설립할 당시 [[조소앙]]의 [[삼균주의]]를 당의 정의 및 강령으로 채택하였고, 덕분에 한국독립당은 주의와 정강을 갖춘 정당으로서 반일적 민족운동과 무력적 파괴운동을 투쟁방식으로 하는 혁명적 정당의 성격을 띠게 되었다. 한국독립당 창당에 참여한 이들 중 대부분이 임시정부에서 요직을 맡고 있었는데, 당시의 임시정부는 성과가 미비하여 해체를 하냐 마냐 하는 의견이 대립하고 있었다. 이 당은 서로 대립하는 인사들을 민족주의 통일이라는 하나의 목표 아래 결집시키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다. 한국독립당은 설립 당시에는 조직, 선전, 훈련 등의 반일운동을 광범위하게 벌이기로 결정했으나, 실제로는 당세 확장을 위한 조직 활동과 기관지 발행을 통한 선전 활동에 치중했다. 1932년 [[윤봉길]] 의사의 훙커우공원 의거로 인해 일제의 검색이 강화됨에 따라 상해를 떠나 항주로 근거지를 옮겼고, 그 이후에는 당무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재무부, 내무부, 총무부 등의 부서를 설치했다. 또한 [[김철(1886)|김철]], 조소앙 등의 주도 하에 기관지 <진광>을 창간하고 각종 선언서와 유인물을 배포하는 등 선전 활동을 계속하였다. 한국독립당의 외곽 단체로는 상해한인청년당, 상해한인여자청년동맹, 상해한인소년동맹 등이 있었는데, 그 중에서 상해한인청년당이 기관지 발행 등의 선전 활동을 가장 활발하게 수행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