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한국독립당(1940년) (문단 편집) === 해방 이후 ===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한국 정부로 인정받지 못하자 1945년 11월 국내에 당으로 공식 등록하고 활동했다. 반탁 운동으로 [[미군정]]과 갈등을 겪으면서 활로를 찾기 위해 [[한국민주당]]을 비롯해 안재홍이 이끄는 국민당, [[이갑성]]이 이끄는 신한민족당 등에 통합을 제안했다. 그러나 당시 김구와 한국독립당이 내건 조건은 상대측 입장에선 선뜻 수용하기 어려운, 통합 정당의 강령은 임시정부의 [[삼균주의]]를 계승하고 총재와 당명 역시 한국독립당이 정하도록 하자는 것이었다. 특히 한국민주당의 경우는 이승만이 중간에서 갈등을 부추긴 탓에 큰 저항을 보였다. 결국 통합운동은 한국민주당이 불참한 상태에서 한국독립당과 국민당, 신한민족당이 통합되며 끝났다. 허나 한국민주당이 빠진 통합의 효과는 한국독립당이 당초 생각했던 것만큼 크지 않았다. 이후 김구가 남북 협상에 참여하면서 보수 쪽 지지자가 이탈하고, 총선에도 불참하면서 당은 몰락하고 만다. 단, 김선 등 일부 당원들은 무소속으로 5.10 단독선거에 출마했다. 그 후 [[지청천]], [[신익희]]는 대한국민당으로, [[이시영]]은 자유당을 거쳐 민주국민당으로, [[이범석]]은 자유당으로 가는 등 뿔뿔이 흩어졌다. 임시정부의 정통 계승자였던 한국독립당은 임시정부 주석 [[김구]]의 힘으로 당을 유지하고 있었는데, 김구의 지지 세력이 이런저런 이유로 다른 계열에게 흡수되면서 점점 어려운 상황에 처하고 만다. 그런 상황에서 김구까지 암살되자 사실상 정당으로서의 생명력을 잃게 된다. 1949년 6월 전향자들을 교화시키려는 목적으로 결성된 관제단체인 국민보도연맹이 결성 되었을 때, 한국독립당 계열 인사들도 반강제적으로 가입되곤 했었는데 대표적인 인사가 문학가 [[정지용]] 같은 케이스였다. 이후 1950년 조소앙이 한독당을 탈퇴하고 무소속으로 그 해 5월 30일에 열렸던 2대 국회의원 선거에 당선되었으나[* 당시 상대가 바로 유석 [[조병옥]]이었다.] 다음달 바로 [[6.25 전쟁]]이 발발하면서 남북협상 당시 함께 방북했던 [[김규식]]과 함께 납북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