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학도병 (문단 편집) === 남한의 학도병 === [[6.25 전쟁]] 당시 자발적으로 입대한 학도병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학도의용군]] 문서 참고 [[6.25 전쟁]] 당시 북한의 남침으로 [[대한민국]]이 붕괴 위기에 처하자 수많은 학도병들이 징집 혹은 자원입대해서 북한군과 싸웠고 이들을 [[학도의용군]]이라고 부른다. 서류상 자원입대자들도 많았으나 문제는 학교에서 나오라고 해서 나갔다가 그대로 학도병이 된 사례들도 자원으로 집계되어 사실상 개중에서도 강제가 더 많을 것으로 짐작된다. 강제로 입대당한 경우는 생각보다 꽤 많았는데, 이 경우도 자원입대라고 여겨졌다.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에서 초반에 주인공 형제가 군대에 강제로 끌려가는 모습을 보면 된다. [* 다만 이쪽은 18세 이상이라 법적으로 징집 대상이 맞는다.]또한 별도의 [[소년병]]들도 존재했는데 [[미성년자]]들이 징집됐다는 점에서 별 차이가 없지만 학도병은 군번을 부여받지 못했고, 소년병은 정식으로 [[군번]]을 부여받았다.[* 보통은 이등병으로 갓 입대할 정도의 나이에 [[하사|일등중사]] 계급으로 전역을 한 사람도 있을 정도.][[http://joongang.joins.com/article/aid/2014/06/07/14472998.html|*]] 하지만 이들은 현충원 등지에서 추모비도 보기 힘든데 왜냐하면 국방부의 [[흑역사]]이기 때문이다. 1986년에 월간 새소년 지에서 한국 역사 전쟁에서 한 전투를 여럿 소개한 적이 있는데 당시 생존하던 길안령이라는 학도병 출신 노병이 인터뷰로 회고한 글이 실린 바 있었다. 솔직히,길안령 씨도 나라 구하고자 참전한 것은 자랑스럽게 여기지만 학도병을 그야말로 방패막이로 썼다라고 당시 한국군 상부에 대해 원망을 쏟아부었다. 그도 그럴 것이 만 15살이던 길안령 씨가 가장 나이가 많았는데, 13살 학생까지 학도병 70명만으로 북한군을 막으라고 명령이 내려졌던 것. 돕고자 오던 국군 부대가 있어서 반가워했지만 골때리게도 군악부 60명으로 전투에 대해서 학도병 수준이었다. 게다가, 도우러 오는 길에 이 부대는 북한군 매복 기습을 당해 이조차도 반수가 전사 및 부상으로 겨우 몇명이 총알을 상자로 전해주고 자신들도 철군해야 했다. 할 수 없이 70명만으로 2배는 더 넘어보이던 북한군과 싸워 48명이 전사하고 부상 및 포로가 되어서 이후 전쟁 끝나고 살아서 만난 이들은 10명도 되지 않았다고 한다. 아무리 한국군이 어렵다고 해도 10대 초중반 아이들 70명만으로 알아서 싸우라고 보낸 것부터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바다 건너 [[재일교포]] 청소년들이 [[재일학도의용군]]을 편성하여 참전하는 경우도 있었다. 대부분의 학도병들은 [[대한민국 육군]]에 배치됐다. 재일교포 학도병들이 한국으로 출전했을 때는 연합군 최고사령부가 [[일본]]을 통치할 때였으나, 전쟁이 끝나서 일본으로 돌아가려고 할 때는 연합군 최고사령부의 통치가 끝나고 통치권이 [[일본 정부]]로 이양된 후였다. 그리고 당시 재일교포들은 자동으로 국적이 조선으로 바뀌었는데,[* [[일본]]으로 귀화하든지 [[주일한국대사관]]에 신청해서 [[대한민국]]으로 국적을 바꾸든지 하는 것은 먼 훗날의 일이었다.] 새 일본 정부에서는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이 조선 국적 외국인(자이니치)들의 귀국을 불허해버렸다. 중간에 부상을 당해 연합군 최고사령부 통치 때 일본으로 후송된 학도병들은 귀국이 가능했으나, 휴전 때까지 한국에서 참전하고 있었던 학도병들은 가족들과 다니던 대학교가 있는 일본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심지어 일본인 아내와 자식이 있던 일부 학도병들의 경우도 일본인 가족들이 백방으로 청원을 넣었지만 귀국이 불허되었다. 대부분 이민 1.5 세대 또는 일본에서 태어난 2세대들이었던 그들은 결국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친척들이 남아있는 한국의 본적지(아버지의 고향 마을)에 눌러앉게 되었다. 젊었던 일본인 아내들은 자식을 데리고 재혼한 경우가 많았고, 한국에 남은 학도병들도 결국 다시 결혼하거나 일본에 있는 일본인 아내와 자식들의 빚 바랜 사진을 품고 그리워하면서 술로 세월을 보내다가, 세상을 떠나거나 노년에서야 겨우 입국 허가가 나서 일본에 있는 가족들을 방문할 수 있었다. 소년병은 아니지만 20대 대학생들도 학도병으로 전쟁에 나가기도 했는데, 이 중에선 한국전쟁 때 학도병으로 참전한 [[김영삼]] 전 대통령이 있다. 다만 당시 대한민국 입장에서 소중한 자원인 대학생을 전쟁터로 내보내는 건 아주 최악의 행위이기에[* 당시에는 대학생이 드물었다. 현대의 박사학위자나 그 이상의 취급을 받았다고도 한다.] 대부분 다른 보직을 맡았다. 실제로도 당시에는 대학생 이상의 학력은 병역 대상이 아니었고 대학생 이상이 군복무를 하면 대부분 [[갑종장교]]였다. [[김영삼]] 역시 서울대학교 학생이었기에 육군 [[정훈장교]]로 배치되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장교로 임관되었다.] 한동안 김영삼 전 대통령의 본인 발언 외에는 한국전쟁 참전 기록이 남아있지 않아 병역을 기피하고는 거짓말을 한다는 의혹도 있었으나 90년대에 한국전쟁 참전중 육군 중위 계급장을 달고 찍은 사진이 발견되어 언론에 발표되어 의혹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당시 전황이 상당히 심각한 수준이였기 때문에 저렇게 배치되기만 해도 상당한 행운이었다. 일례로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출신이자 [[고려대학교 구로병원]] 초대 원장이었던 외과의사 민병철도 부산의 [[전시연합대학]]을 다니면서 간신히 졸업했는데, 그의 회고록에 따르면 "여전히 거리에서는 육군의 신병 징집이 있었고, 신분에 관계없이 일단 잡혀가면 얼마간의 기초 훈련만 받은 채 곧바로 전선에 투입되곤 했다. 나도 여러 번 아슬아슬한 적이 있었는데, 한번은 잡혀서 타고 가던 '''트럭에서 뛰어내려''' 도망친 적도 있었다"라고 한다. 다행히 본인은 졸업 후 [[대한민국 해군]] [[군의관]]에 지원해서, [[중위]]로 [[진해]] 해군병원에 배치받았다고 한다. 전쟁 초기에는 정부가 제대로 정신을 차리지 못해 이와 같은 무질서한 자원입대를 방관할 수밖에 없었다. "저렇게 어린 애들도 나라 지킨다고 스스로 총 잡고 싸우는데 다 큰 어른인 니들은 뭐하냐"는 식의 프로파간다에 이용해 먹기도 딱 좋기 때문이다.[* 애들을 전선에 투입하는 게 자랑인가 싶지만, 선동용으로는 쓸만 했다고 한다.] 심지어 이런 학도병들을 희생양으로 써먹은 [[장사 상륙작전|작전]]까지 존재한다. 자세한 것은 항목을 참조하면 되지만, 당시 이 작전을 구성, 운영한 것은 허술하기 짝이 없었다. 이후 어느 정도 정국이 안정되면서 1951년 3월 복교령을 내려 학도병으로 입대한 학생들에게 학교로 돌아가도록 지시했는데, 학도병들이 제대하지 않고 군에 계속 남은 사례는 크게 2가지로 나뉘었다. 하나는 학생 본인의 의지로 정식 군인이 되어 계속 군대에 남은 사례이고, 하나는 병력 손실을 꺼린 일선 부대장들이 고의적으로 학생들에게 복교령 발표 사실을 알리지 않아 그대로 군복무를 계속한 사례이다. 군대에 남은 학도병들은 나이보다 일찍 군대에 들어가서 실전을 겪고 술과 담배, 여자를 배웠기 때문에 학생으로서의 사회 복귀에 어려움을 겪은 경우가 많다. [[1950년대]] 중학교, 고등학교 졸업사진들을 보면 학생이라고 보기에 많이 삭은 아저씨들이 많은데, [[한국전쟁]] 때 징집되었다가 제대 후 다시 재학한 학생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전후 빈곤한 가정 형편 때문에 취업하다 재학한 경우도 있기 때문에 20대 후반의 중고생들도 꽤 많았다. 게다가 저 당시 20대 후반이면 현재의 40살 전후로 보이는 편이라 아저씨로 보인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 자발적으로 학도병에 참가한 청소년들의 애국심은 가상하지만, 그렇다고 상술되었듯이 학도병이라고 모두가 다 자신의 의지로 입대한 것도 아니었고, 무엇보다 학생들이 전쟁에 나간다는 사실 자체가 국가 전체로 보면 전혀 좋은 현상이 아니다. [[소년병]] 항목에서 알 수 있듯이 미성년자들을 함부로 군대에 보내는 것은 군사적으로도 비효율적이고, 국가의 미래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현재는 병역법으로 금지하지는 않지만, 선진국들을 중심으로 그런 행위들이 심각한 인권 침해로 인식되고 한국도 [[UN 아동권리협약]]에 비준함으로써 꽤 어려운 일이 되었다. 소년병 징집은 국제형사범죄법으로 금지되므로, [[UN]]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극한 상황이 아니고서야, 일단 대한민국에서 만 18세 미만의 청소년의 참전은 있을 수 없다. 어디 이름도 처음 듣는 전시 상황인 후진국에서도 쉽게 일어나지 않는 일인데, 현재의 대한민국에서 학도병이 생길 가능성은 제로다. 매우 극한 상황이라면 징집연령이 임박한 대학생들을 현역병으로 징집하거나 예비역, 보충역들을 동원하지 [[국민돌격대|고등학생, 중학생까지 징집해 전쟁터에 집어넣을 가능성은 없을 것이다.]] 어차피 현대전에서는 고도로 발전된 장비의 싸움이기 때문에 병력이 전멸하기 직전까지 교전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그래서 학도병 동원 논의가 나오기도 전에 전쟁이 끝날 공산이 크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