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하코다테시 (문단 편집) == 역사 == 원래 이 곳은 [[아이누]]인들이 고기를 잡고 살던 한적한 어촌으로 [[아이누어]] 지명은 "만의 끝"을 뜻하는 'Uskes([ruby(宇,ruby=ウ)][ruby(須,ruby=ス)][ruby(岸,ruby=ケシ)]; 우스케시로 음차)'였다. 그러던 중 [[무로마치 시대]]인 1454년, 츠가루의 호족 고노 마사미치(河野政通)가 다이묘 책봉 경쟁에서 밀린 뒤 측근들과 함께 에조치(蝦夷地)로 도주한 후 우스케시에 장원을 건설했다. 이 장원이 마치 상자처럼 보였기에 하코다테(箱館)란 이름으로 불렸다. 그 후 1869년 에조치가 홋카이도로 개명되면서 하코다테의 이름도 발음은 같지만 다른 한자인 '函館'로 바뀌면서 지금까지 이어진다. 그 후 하코다테 일대는 [[마츠마에 번]]에 소속되어 마츠마에 가문이 지배하는데 하코다테는 마츠마에 3항(松前三港) 중 하나로 에조치 인근 해역에서 잡히는 수산물의 집산지와 아이누와의 교역품을 처리하는 곳으로서 에조치의 일본의 거점 역할을 수행했다. 18세기 말, 러시아의 남하가 가속화되면서 위기감을 느낀 에도 막부는 에조치 일대의 마츠마에 번 영지를 막부 직할령으로 두게 되는데 이 때 하코다테에는 막부 직속의 봉행소가 설치되어 아이누와의 교역을 담당하였다. 그 후 1854년 미일화친조약으로 일본이 개항하면서 하코다테는 일본이 처음으로 개방한 두 항구 중 하나로 지정되었다. 이 때 하코다테에 외국인거류지가 생겼고 보방식 요새인 고료카쿠(五陵郭)가 만들어졌다. [[무진전쟁]] 이후 에도 막부가 멸망하자 막부의 잔당 일부가 하코다테로 도망쳐 [[에조 공화국]]을 세운 적도 잠깐 있다. 물론 에조 공화국은 [[삼일천하]]로 끝났지만, 사실상 막부 세력이 메이지 신정부군을 상대하는 최후의 전투가 이 곳의 고료카쿠에서 벌어졌다. 메이지 유신 이후 본격적으로 홋카이도가 개발되면서, 상대적으로 혼슈에 가까운 섬 남부 지역이 섬 북부 지역보다 더 빨리 개발될 수 밖에 없었다. [[세이칸 연락선]]의 홋카이도 쪽 기종점으로서 [[세이칸 터널]] 개통 전까지 80년간 홋카이도의 관문 역할을 했다. 게다가 이전부터 일본이 홋카이도에 세운 주요 거점이자 최초로 개항한 [[항구]] 도시 버프를 받았기 때문에 홋카이도에서 가장 큰 도시로 번영하게 된다. 1933년 당시 인구 22만 명으로 일본에서 9번째로 큰 도시였다. 하지만 1934년에 대화재로 2천 명이 넘는 사람이 사망하고, 구 시가지의 1/3 가량이 쑥대밭이 되면서 1940년부터 급부상한 삿포로에 인구를 추월당해 홋카이도의 중심 도시 자리를 내주게 된다. 이어 1965년 아사히카와에도 인구 수를 따라잡히며 홋카이도 제 3의 도시로 전락했으며 1980년도까지 증가하던 도시 인구도 출생자수 감소와 전출자수 대비 전입자수 감소로 말미암아 하락세로 돌아선 것으로도 모자라 이후로도 도시의 인구가 증가하는 토대가 사라져버려 정체의 길을 걷게 되었다. 애초에 홋카이도 기준으로 보자면 위치가 너무 남쪽에 치우쳐져 있으며 위성도시인 [[호쿠토시(홋카이도)|호쿠토시]]에 비해 산악 지역이 많이 있기도 했다. 이후 삿포로 근교 위주의 발전과[* 이 과정에서 홋카이도 내에서의 철도 운영 역시 기존의 [[세이칸 연락선]] - [[하코다테역]] 축에서 [[삿포로역]] 축으로 변하게 되었다.] 고령화로 인하여 최대 35만명에 달하던 인구가 계속 감소하고 있어 [[중핵시]] 중에서 최초로 과소지역으로 판정되었고 2018년 기준 인구 26만선이 깨졌다. 매력적인 도시 1위라는 타이틀이 무색하게 [[도심 공동화]]로 인하여 하코다테의 명물인 야경도 예전같지 않다고 한다. 2015년 통계 기준으로 2021년까지 전체 인구의 6.2%가 감소했으며 '''[[http://www.ipss.go.jp/pp-shicyoson/j/shicyoson18/t-page.asp|2045년에는 예상 인구 감소율이 무려 38.8%]]로 이는 2045년에 인구수 10만 명 이상일 것으로 예상되는 시들 중 단독 1위다.''' 츠가루 해협을 사이에 두고 있으며 같은 생활권인 [[아오모리시]]도 해당 자료에서 36.2%나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둘을 합쳐보면 인구 50만 중반대에서 30만 중반대까지 감소하며, 여기에 미포함된 주변 지역들도 크게 다를 것 없는 상황이다. ~~그래도 2030년대에 인구수 10만 명 아래로 떨어질 오타루보다는 낫다~~ 게다가 감소 인구 중 대부분이 유년~청년층이기 때문에 시급히 대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일본 내 4대 섬을 잇는 지역, 또는 [[난카이 해곡]]이 터질 시 직격타가 예정된 지역의 항구 도시들도 이와 비슷한 수준의 인구감소세가 예상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칸몬 해협을 사이에 둔 [[키타큐슈시]]~[[시모노세키시]]는 20% 중반대, [[요코스카시]], [[누마즈시]], [[후지시]] 등도 최대 30%에 육박하는 인구 감소가 예상되는 상황. 이는 철도와 항공 운송의 발달, 항구 도시의 중요도 감소, [[도호쿠 대지진]] 이후 지진에 대한 경각심 증가, 잦은 자연재해, 도시 자체의 동력 상실 및 쇠퇴 등 여러 가지 요인들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항구도시라서 일찍이 외국인들의 왕래가 잦았고, 덕분에 근세 서양 분위기의 건물과 기독교 계열 종교 시설이 많이 남았다는 점에서 일본에서 정반대쪽에 위치한 [[큐슈]]의 [[나가사키시]]와 비슷한 점이 있다. 다만 외국인과의 교역 시기 자체는 당연히 나가사키가 더 길다. 대신 [[러시아]]의 영향을 받아 [[정교회|일본 정교회]] 성당도 있다. 또한 러시아와 가까운 지역인 만큼 [[프리모리예 지방|연해주]]에 소재한 [[국립대학]]인 [[극동연방대학교]]의 일본 분교도 여기에 존재해서 일본 국내에서 러시아 학위를 딸 수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