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하노이시 (문단 편집) == 상세 == 지금의 하노이는 베트남의 수도로서 정치, 문화, 교육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다. [[2008년]]에 주변지역인 하떠이 성, 빈푹 성 등 하노이의 [[메트로폴리스]]에 해당하는 지역들이 3,344.7㎢의 면적과 780만 명의 [[인구]]가 거주하는 매머드급 도시가 되었다. 그래도 구 남베트남의 중심도시 [[호찌민 시]]의 약 820만 명에 밀려서 제2의 도시다. 더욱이 하노이는 현(Huyện 縣, 한국으로 치면 군 정도) 지역을 빼고 도시 지역만 보면 인구가 320만 정도에 불과하다. 반면 호찌민 시는 시가지 지역 인구만 해도 600만이 넘고 이웃한 빈즈엉 성과 동나이 성의 위성도시까지 합치면 실질적인 인구는 1000만 명을 넘어간다. 경제력으로 보면 더더욱 [[콩라인]]이라서 소득수준이 호찌민의 절반 수준이다. 수도권까지 포함하면 23,000km^^2^^에 2100만 명 정도가 살고있다. 하지만 시내 관광을 한다면 역사가 짧은 호찌민 시보다는 좀 더 볼거리가 많고, 아기자기한 것이 사실인 듯. 오히려 [[서울]]과도 유사점이 보인다. 역사적으로 수도였던 적이 있는 만큼 하노이에도 고궁 유적이 있다. 다만 서울의 경복궁과 같이 어느정도 복원된 모습을 보기는 어렵고 일부 건축물과 터만 남아있다. 사실 베트남에서 황제가 살던 궁전은 전왕조의 수도였던 [[후에]]에 가야 많이 보존돼있고 하노이는 중세 때 수도였던 곳이기 때문에 문화유산 측면에선 한국으로 치면 [[경주시]]나 [[공주시]]와 비슷한 셈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베트남/역사|역사적으로]] 베트남의 수도 역할을 해 왔던 중심도시는 하노이이지만 베트남의 마지막 왕조인 [[응우옌 왕조]](1802 ~ 1945)의 수도가 후에였다. 이는 응우옌 왕조(대남국)의 모태였던 [[응우옌씨 정권]](광남국) 자체가 [[후 레 왕조]](대월국) 시기에 북부를 떠나 남하하여 푸쑤언(지금의 후에)을 중심으로 남부에 세력을 구축했던 지방정권이었고, 응우옌 왕조의 개창자인 [[자롱 황제]]의 경우 [[떠이선 왕조]]의 흥기로 응우옌씨 정권이 거의 망한 상황에서 프랑스등 서구세력과 [[태국]], [[캄보디아]]등의 지원을 받아 역습에 성공함으로써 왕조를 개창한 것이었기에 의도적으로 이전 시기까지 베트남(대월)의 정치적 중심이던 하노이가 아닌 후에를 새 수도로 삼았던 것이다. 따라서 베트남에서 하노이와 후에의 관계를 한국에서 서울과 경주/공주의 관계와 일대일로 비교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일단 하노이를 '중세 때 수도였던 곳'이라고 하기에는 1800년은 중세가 끝나고 근세도 다 지내 슬슬 근대가 가까워오는 시기이고, 이후 후에가 수도였던 기간도 비교적 짦기에 정치, 전략적으로 천도된 것 만으로 이전까지 중심도시였던 하노이와 동등한 사회, 문화적 위상을 가질 정도까지 성장할수도 없었던 것이다. 다만 직전 왕조의 수도였기에 '잘 보존된 고궁 유적'은 하노이가 아닌 후에에 가야 볼 수 있는 것.]. 으레 [[개발도상국]]의 대도시들이 그렇듯 하노이 역시 [[도시화]]에 따라 지속적으로 인구가 증가하면서 [[사회간접자본]]의 극심한 부족을 빚고 있다. 애초에 경제 중심지는 [[호찌민 시|호찌민]]이라서 북부 베트남은 상대적으로 해외자본유치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하지만 베트남 정부가 국가 전체적으로 균등한 경제성장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중. 그리고 [[삼성전자]]가 하노이 근교에 휴대폰 공장을 세우면서 하노이를 비롯한 베트남 북부에도 해외자본 유치가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어쨌든 현재는 하노이와 [[호찌민 시|호찌민]](구 사이공)을 중심으로 [[베트남]]의 경제성장이 이루어지면서 [[화폐|돈]]을 벌기 위해 베트남 인구가 이 주변으로 몰려들고 있기 때문이다. [[1996년]] [[서울특별시]]와 자매결연을 맺었다. 과거 [[프랑스]]가 식민지로 삼았던 곳이라 "리틀 파리"라 불릴 정도로 하노이 시내는 북부 베트남 특유의 건물과 함께 프랑스식 건물을 많이 볼 수 있다. 그리고 [[2011년]], [[경남기업|경남]]아파트인데, 타워형식인 Keangnam Palace Landmark가 지어졌다. [[런닝맨]] 아시아레이스에서 이름표 뜯기 대결이 벌어진 그 장소이다. 48층 건물 2개(아파트), 72층 건물 1개(사무실/호텔/레지던스) [[2012년]] [[11월 8일]] [[마카오]]에서 열린 [[아시아올림픽평의회]]([[OCA]])의 [[2019년]] [[아시안 게임]] 개최지 결정 [[투표]]에서 [[인도네시아]]의 [[수라바야]]를 누르고 개최지로 선정되었다. 이에 따라 '''2019 하노이 아시안 게임'''이 개최될 예정이었지만 자국의 재정적 문제가 커 결국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 [[2018 자카르타 아시안 게임|개최권을 넘겨주고 만다.]] [[2013년]] [[3월 25일]] [[NH농협은행]]이 해외영업점을 개설했다. 농협은행 출범 이후 1년만에 아시아에 생긴 첫 영업점이라고 한다. [[2014년]] [[9월]] [[롯데건설]]이 만든 65층 짜리 Lotte Center Hanoi(백화점/레지던스/호텔)가 완공 되었다 [[2014년]] [[12월]] [[일본]] ODA합작으로 건설한 [[하노이 노이바이 국제공항]] 국제선 청사가 완공되었다. 국제선 신청사가 완공됨과 동시에 베트남의 '''첫 고속도로로''' 수도 하노이 - 녓떤대교 - 노이바이 국제 공항 - 라오까이성 [[사파(베트남)|사파]]인근을 잇는 '''[[노이바이 라오까이 고속도로]]'''가 개통 되었는데 이 고속도로는 한국의 [[GS건설]], [[포스코건설]], 두산중공업, 경남기업 및 베트남, 중국 업체와 합작하여 완공하였다.[* 근데 그 고속도로도 첫번째 휴게소(공항 기점 100km 부근)지나면 중앙선 없는 왕복 2차선이다. 버스들이 역주행으로 추월하는데 그나마 이길로 가서 라오까이까지 4시간 걸리는거지 일반국도로 가면 10시간 소요된다.] [[2019년 북미정상회담]]의 회담장소가 [[다낭]] 대신 하노이로 확정되었다. [[미세먼지]]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있다. [[K리그1]] [[인천 유나이티드]]에서 잠깐 뛰었던 [[응우옌꽁프엉]]의 얘기로는 "한국보다 하노이 미세먼지가 더 심각하다."는 얘기를 했으니. 실제로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01&aid=0011275872|기사]]를 보면 알 수 있듯이 미세먼지와 수백만대의 오토바이 등으로 인한 대기오염이 아주아주 심각하다. 대기오염지수 1위를 기록했으며 다른 여타 주요 도시들보다 100 이상 차이날 정도. 한국에서는 베트남 하면 일 년 내내 더운 열대 국가라는 인식이 강하지만 남북으로 길쭉한 나라인만큼 지역별로 차이가 있고 북부에 있는 하노이는 [[타이완]] 및 중국 남부와 흡사한 아열대기후라 나름 한국의 봄가을쯤 되는 겨울이 존재한다. 사람에 따라 여름옷으로는 추울 수도 있다. 그리고 많은 오토바이들로 교통이 몹시 혼잡하다. 동남아를 처음 방문하는 관광객들 입장에서는 길 건너기도 어렵고 교통사고의 가능성도 한국보다 높으니 길을 다닐 때는 보다 주변을 잘 살피는 것이 중요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