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하나라 (문단 편집) == 실존한 나라였는가? == > [[고고학]]과 [[역사학]]에서 말하는 [[문화]]와 [[문명]]은 엄격하게 구분된다. 간단히 말하면 "문화(Culture)"는 석기시대범주의 개념이다. 석기시대 중 특히 신석기시대와 이후 [[금석병용기|금석병용시기]]의 원시부락 인류유적을 말할 때 쓴다. 이에 반하여 "문명(Civilization)"은 청동기시대의 범주에 속하는 것이고, 인류가 청동기시대에 진입한 이후의 국가단계를 의미하는 것이다. > > 사실 문화(Culture)와 문명(Civilization)이 두 개의 영어단어의 어원에서도 우리는 분명히 양자를 구분할 수 있다. 문화의 어근인 Cult-의 원시적인 의미는 "경작"이었고, 이것은 문화라는 개념이 농경과 연결되는 원시부락시대의 범주에 속한다는 것을 알수 있다. 그러나, 문명의 어근인 Civ-의 원시적인 의미는 '[[시민]]'이다. 이것은 마찬가지로 문명이라는 개념의 본 뜻이 시민의 출현과 동시에 생성된 [[도시]] 및 상공업과 연계되는 [[청동기시대]]의 범주에 속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 문명은 몇 개의 중요한 특징을 지니고 있다. [[문자]], [[야금술]], [[도시국가]], 종교의식 등등이다. 바로 이것은 상공업과 밀접한 관계를 가진다. 하나의 문명이 시작했는지 여부를 판정하고, 언제 시작했는지를 판정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몇가지 표준을 가지고 보는 것이다. 또한 고고학의 발견에 따라 확정되는 것이지, 신화전설, 민간고사, 야사잡서 또는 "사기(史記)"와 같은 고고연대보다 2천년 이상 이후에 쓰인 "역사기록"으로 판정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고고학과 역사학의 상식이다. >---- >중국 학자의 하상주공정 비판 [[https://blog.daum.net/shanghaicrab/8042526?category=15049|#]] 멸망 과정이 똑같다는 점은 [[상나라]]와 하나라의 존재가 [[주나라]]의 역사를 토대로 창작된 것이 아니냐는 의심을 받는 이유가 되었다. [[갑골문자]] 분석으로 상나라의 실존은 밝혀졌지만, 하나라의 실존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고 고고학계에서는 대체로 실존을 부정한다. 하나라의 실존을 주장하는 측에서 존재를 뒷받침하는 근거로 제시하는 것은 하-상 교체기에 해당되는 듯한 유물의 전환 과정이 나타난다는 것, 그리고 [[탕왕]]의 존재가 갑골문으로 증명되었다는 것이다. 문제는 그 세부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오히려 그 반대의 근거가 된다는 것. 즉, 갑골문은 하나라가 허구의 나라라는 강력한 근거 중 하나다. * 우선 [[갑골문]]에서 [[탕왕]]은 상 왕조의 창시자가 아니라 상 왕조를 [[중흥]]시킨 왕일 뿐이다.[* 탕왕이 상나라를 건국한 것이 사실이라고 쳐도, 하나라를 거쳐 상나라로 가지 않고 바로 상나라를 세웠을 가능성도 있다.] 갑골문에 따르면 상 왕조의 시작은 탕왕이 아니라 [[삼황오제]] 중 하나인 [[제곡]] 고신씨로 거슬러 올러간다.[* 다만 상나라 문서에는 이에 대한 반박이 있다.] * [[갑골문]]에서 [[탕왕]]을 칭송하는 내용은 많이 보이지만 그중에서 하 왕조나 그에 해당되는 강한 적을 물리쳤다는 언급은 전혀 없는 등 갑골문에서 하 왕조의 흔적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이에 대한 반박으로는 하나라를 무너트린 [[상나라]] 입장에서 굳이 하나라를 새길 필요가 있냐는 것이다. 정통성이 문제되는 상황에서 전에 존재했던 왕조를 기록으로 남기는 것은 신생국가로서는 별로 좋은 판단이 아니었을 거라는 추측도 있다.] * 국성이 [[사]](姒)라고 전해지는데, 이 또한 논란이 많다. 최초의 문자로 보고 있는 갑골문이나 홍도문들은 상나라 3기인 은허 시기 이후를 중심으로 발굴되고 있다. 그런데 그보다 600여 년이나 빠른 하나라 초기의 인물인 우왕의 후손들의 성씨를 '사'(姒)라고 《사기》에서 표현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정황상 후손으로 여겨진 [[기나라]]가 '사성'인걸 보고 추측한 것 같다.[* 사실 전근대 시대에 각국의 군주들이나 [[귀족]]들이 자기들을 전설상의 나라나 신화 속 인물의 후예라고 주장하는 일은 매우 흔했다. 당장 [[한국]]만 해도 실존 여부가 불분명한 [[단군]]을 [[한국인]]의 시조로 여기는 풍조가 강하며, 전근대에는 ([[한국사]]로서의) [[기자조선]]을 사실이라고 생각했다는 점까지 고려하면 엄청 복잡해지는데, [[일본 황실]]도 [[제2차 세계 대전]]에서 패배하기 전까지는 공식적으로 자기들을 [[일본 신화]]의 주신인 [[아마테라스]]의 후손이라고 자칭한 바 있다. 또, [[고대 그리스]]의 여러 [[도시국가]]의 [[귀족]]이나 [[왕족]]들은 자기들의 조상을 [[헤라클레스]]나 [[포세이돈]] 등의 [[그리스 신화]]의 영웅이나 신이라고 주장했고, [[로마 제국]]의 건국 신화에서는 그 시조인 [[로물루스]]와 [[레무스]] 형제를 [[아레스|마르스]]의 아들들이라고 비정하고 있다. [[기나라]]의 경우도 이런 경우로 추정된다.] 일단 [[상나라]]와 같이 왕계가 전하고, 선진 시대의 여러 문헌에서 언급이 되는 왕조라서 실존했을 가능성이 있으나, 적어도 '''현재까지 확실한 고고학적 증거가 발견되지는 않았다.''' 현재 하나라의 후보지로 꼽히는 곳이 낙달묘(洛達廟), [[얼리터우|이리두]](二里頭) 등의 지역이지만, 정확한 문자 자료가 없어 아직 실증은 불가능하다. [[중국]]에서는 2000년에 [[중국사회과학원]]이 종료한 [[하상주단대공정]]에 의해 얼리터우 문화를 하나라로 비정해서 실존한 국가라고 확정하고 연대를 추산하였지만, 국제 사학계는 이 결과를 인정하지 않는다. 중국 사학계 내에서도 하상주단대공정은 많은 비판과 논란을 받고 있다. 간단히 말하자면, 공정에서 얼리터우 문화의 추산 연대가 문헌상의 하나라의 연대와 비슷하다는 이유만으로 억지로 끼워맞췄다고 본다. 사실 하상주단대공정의 결론은 죄다 이런 식의 비판을 받고 2000년에 약식 보고서라고 할 수 있는 간본을 발간한 이래 2017년까지도 정식 보고서를 발간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우선, 중국 사회과학원에서는 하나라의 존속 시기는 기원전 2070년부터 기원전 1600년까지라고 주장한다. 다만 전통적으로는 기원전 22세기부터 기원전 18세기까지 존속한 것으로 간주되었다. 세계 학계에서는 많은 비판을 받고 있지만, 2019년 기준으로 [[한국어]]판, [[영어]]판 및 [[일본어]]판 [[위키백과]]에는 [[중국]] 측이 주장하는 하나라의 연대가 병기되어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