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필리핀/역사 (문단 편집) === 필리핀 제4공화국: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독재정권(1972~1986) === 마르코스는 재임 2기 중반부터 점차 막장이 되어 결국 1972년에 [[계엄령]]을 선포하고 반공을 내세워 야당인사들과 만디나오 섬의 무슬림을 대대적으로 탄압했다. 또 정부 요직에 부인 [[이멜다 마르코스]]와 장남 봉봉 등 친인척들에게 요직을 맡기고 개인재산 수억 달러를 국외로 빼돌렸다. 같은 시기 필리핀 곳곳에서 무장세력이 들고일어나 반 마르코스 투쟁을 전개하자, 정부군이 총동원되면서 실질적인 전시체제로 접어들었다. 특히 1968년에 필리핀 공산당이 조직한 신인민군(NPA)과 1969년에 소수민족인 모로족들이 만든 무장 독립투쟁 단체 '모로민족해방전선(MNLF)'이 각각 열대우림 같은 곳에 숨어서 게릴라 작전을 벌여 마르코스를 세게 압박했다. 이에 여론이 악화되자 마르코스는 1981년에 계엄령을 풀지만 부정선거로 3선에 성공을 거두었다. ||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Ninoy2.jpg]] || || [[니노이 아키노]]. 스페인 [[메스티소]]와 [[상글레이]] 혼혈 계통의 필리핀인이다. || 그러나 1983년에 그의 정적 [[베니그노 아키노|베니그노 '니노이' 아키노]](Benigno Simeon "Ninoy" Aquino Jr.)가 미국 망명 생활을 끝내고 귀국해 필리핀 마닐라 국제공항에 들어서자마자 암살당한 사건을 계기로 국내외로부터 반마르코스 여론이 거세지면서 국민들의 시위가 끊이지 않았다. 이에 그는 1986년 초에 대통령 선거를 앞당겨 치러, 이 대선에서 승리하여 정권을 연장할 생각이었는데 제대로 치르면 낙선할 게 뻔하므로 부정선거를 저질러 상대인 니노이 아키노의 부인 코라손 아키노 후보를 이겼다. 그러나 코라손 아키노는 물론 필리핀 국민들도 이에 불복하면서 2월에 전국에서 노란 머리띠를 매고 반마르코스 투쟁을 벌이자, 마르코스는 대통령직을 내놓고 가족들과 하와이로 망명했다. 교양만화가 이원복 교수의 2006년 저서 <가로세로 세계사> 2권에 따르면 마르코스 시절 [[필리핀/경제|필리핀의 경제]]가 나빠졌다고 언급됐지만, 실제로는 꾸준히 성장했다. 집권 초기와 비교하면 확실히 성장했다.[[https://www.indexmundi.com/facts/philippines/gdp-per-capita#NY.GDP.PCAP.CD|#]] 이는 동시기 수하르토 치하 인도네시아의 경제 성장 과정과 비슷한 속도였다. 다만 베니그노 아키노 암살 사건 등으로 입지가 명백하게 불안해진 1983~1986년에는 경제 성장이 하락세로 돌아섰으며, 이는 마르코스가 정권을 유지할 수 없게 만든 큰 원인이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