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필리핀/역사 (문단 편집) == 식민지배 이전 == [[오스트랄로이드]] 계열의 [[네그리토]]라 불리는 원주민들이 오래 전부터 살고 있었지만, 언제부터 살아왔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필리핀과 같은 혈통의 갈래를 가진 일본 내의 고대 민족집단으로는 [[구마소]]가 있다. 오늘날의 규슈 남부지역에 해당한다. 이후에 여러 이민족이 오고 가다가 7세기부터 일부 섬 지역은 근처의 [[스리위자야]] 왕국의 지배를 받았고, 그 영향으로 [[힌두교]] 문화와 [[불교]] 문화가 필리핀으로 전파되었다. 그 영향으로 문자도 전파되어 인도계 문자와 [[아랍 문자]]를 개량한 [[바이바이인]](Baybayin) 문자도 존재했지만 [[스페인]] 식민지배 시기에 로마자로 많이 대체되는 바람에 현재는 실생활에서 거의 쓰이지 않고, 거의 장식용으로나 쓰는 형편이다. 필리핀 내의 국수주의적 민족주의자들이나 필리핀 고유 문화에 대해 관심있는 사람들은 이들 문자를 상용하기 위해서 노력한다고 한다. [[유니코드]]에도 포함되어 있다. || [[파일:external/3.bp.blogspot.com/bayblopez_chart.jpg|width=320]] || || 남아있는 [[바이바이인]] 문자들, 16세기까지 사용되었다. 필리핀은 [[중국]]과 가까웠고 실제 [[베트남]]처럼 중국 [[화교]]들도 [[도시]]를 세우는 등 많이 존재했으나 필리핀은 베트남과 달리 중화 문화권이 아니었고 [[한자]]를 사용하지 않았다. 스페인이 오기 전까지 토착화된 [[인도]] 및 [[아랍]]계 상업 왕국들의 우세속에 세력판도가 짜여져 있었고 또한 그들의 문자를 사용했다. 지역 내 중국 정부와의 공무역권 또한 [[화교]]들이 아닌 인도 아랍계 토착왕국이 쥐고 있었다. || 처음으로 금속 제련기술을 들여온 건 [[말레이인]]들이었다. 기록물들이 종종 발굴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 당시 역사적인 문자와 사료들이 [[패엽]]으로 기록된 탓에 보존성이 좋지 않았고, 다른 동남아국가들 보다도 큰 [[지진]], [[태풍]]이 빈번했기 때문에 기록들이 소실되었고 그나마 남아있던 것들도 [[태평양전쟁]] 때 파괴되었다. [[스페인]] 측과 주변국들 기록으로 역사 연구를 의존하던 실정 때문에 자국 스스로에 대한 왜곡이 적어 문헌이 적은 대신 비교적 객관화된 기록 위주로 남아있다. || [[파일:실크로드2_Chrome.jpg|width=370]] || || [[기원전]]부터 형성되기 시작한 유라시아 대륙의 무역망인 육상 실크로드(Silk road)와 해상 향신료 루트(Spice route). [[로마 제국]]에서 [[동아시아]]까지 이어지며, 필리핀에서는 중국과 가까운 루손섬에 다국적 상인들이 경유하며 공동체를 이루기 시작한게 시초로 보고 있다. || 그러다 라구나 동판이 발견되면서 필리핀 북부 [[루손]] 지역은 [[당나라]] 이전시대 부터 중국과 교역을 했다는 기록이 교차검증되었다. 루손섬은 다양한 국가의 사신들이 중국에 [[조공]] 또는 무역을 하러 가는 와중에 경유한 경우도 많아서 자연스레 중계무역항이 된 경우이다. 또한 당시 남부 민다나오 지역에서 금이 많이 발견되어 특산품이 되었고, 이미 [[고대]]부터 필리핀 제도는 [[금화]],[[은화]]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후 [[스페인 제국]] 식민지 시기 300여 년간 임금을 지불받을 때 금,은화를 지급받았고 [[미국]] 식민지 때도 금,은화를 기반하여 화폐로 쓴다. 그러다가 2차대전 이후 미국이 패권국이 된 후 [[미국 달러|달러]]가 기축통화가 되고 세계적 흐름으로 [[금본위제]]가 폐지되면서 필리핀도 종이화폐를 사용하게된다.] 필리핀 북부와 남부를 망라해서 많은 다국적 상인들이 오갔고, 먼 바다를 건너 [[중동]]과 [[인도]]에서 온 상인들이 [[동남아시아]],[[동아시아]] 전역을 상대로 무역을 하고 있었다.이때 [[중국인]]들이 필리핀 제도를 경유해 다른 [[동남아시아]]와 [[인도인]], [[아랍인]]들과 장사를 해서 이익을 얻길 원했기 때문에, 홀로섬과 [[마닐라]]에는 당시부터 [[차이나 타운]]이 생겼고, 필리핀 [[화교]]의 역사는 [[고대]] 7세기부터가 원조라 할 수 있다. [[일본인]]들과의 교류는 문헌으로 발견되는 기록으로는 8세기 [[헤이안 시대]]부터 발견되며 주로 [[나가사키]] 상인들과 [[오키나와]]인들이 자주 들렀고 루손섬 북부와 마닐라 등 곳곳에 정착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면서 문명과 별로 접촉하지 못했던 대다수의 원주민 집단들도 이후 다양한 출신 국가 성분을 가진 상업집단들이 오가면서 조금씩 바뀌기 시작한다. 9세기 이전에는 다국적 상인들이 그냥 지나다니던 길목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기록이 소실되어 남아있지 않기 때문에 당시의 스토리를 잘 알 수가 없다. 지나다니던 상인들과 술루지역의 통치자는 5세기부터 화폐를 발행하였고, 9세기 기록에서부터 정착된 상인자본에 의해 여러 나라들이 생겨나면서 상업으로 번성하였다.[* 비슷한 시기 태국은 5세기부터, 베트남은 8세기부터 화폐 유통을 하기 시작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