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피에몬테 (문단 편집) == 역사 == 초대 [[사보이아 백국|사보이아 백작]] [[움베르토 1세(사보이아)|움베르토 1세]]의 막내 아들 [[오도네(사보이아)|오도네]]가 이 지역의 상속녀 수사의 아델라이데와 결혼하면서 11세기부터 [[사보이아 가문]]의 지배를 받았다. 피에몬테의 소유권을 두고 [[프랑스 왕국]]과 [[사보이아 공국]] 간의 끊임없는 전쟁이 벌어지면서 서로 빼앗는 각축전을 벌였으나 1601년 [[카를로 에마누엘레 1세]]가 사보이아 인근 브레스(Bresse), 뷔제(Bugey), 젝스(Gex) 지역[* 현재의 [[프랑스]] [[앵(프랑스)|앵 데파르트망]]. 중심지는 [[부르캉브레스]].]을 양도하는 조건으로 살루초(Saluzzo)를 병합하면서 피에몬테 대부분의 영유권을 인정받았다. [[비토리오 아메데오 2세]]가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을 기점으로 몬페라토(Monferrato)까지 점령하면서 사보이아 공국은 피에몬테 전역을 손에 넣었다. 1720년 비토리오 아메데오 2세가 [[사르데냐 왕국]]을 선포한 이후에도 [[사르데냐]]가 아닌 피에몬테가 왕국의 핵심 지역이었으나[* [[프로이센]]의 이름을 빌려온 [[프로이센 왕국]]의 중심지가 [[브란덴부르크]]였던 것과 비슷하다.] 1796년 [[프랑스 제1공화국]]의 위성 공화국이 세워져 사보이아 왕조의 통제에서 벗어났고 1801년 [[프랑스 제1제국]]에 합병되었다. 1814년 제1차 [[파리 조약]]으로 [[사부아|사보이아]], [[니스|니차]]와 함께 다시 사보이아 왕조에게 귀속되었고 [[이탈리아 통일]]운동이 벌어지면서 그 중심지가 되었다. 1860년 토리노 조약으로 [[프랑스 제2제국]]에 양도된 사보이아, 니차와 달리 [[이탈리아 왕국]]을 거쳐 현재까지 [[이탈리아]] 영토로 고정되어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