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플라톤 (문단 편집) === 소년애와 [[플라토닉 러브]]에 대한 오해 ===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고대 그리스/동성애)]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플라토닉 러브)] >어쨌든, 플라톤의 생애에는 어머니나 자매를 제외하고 여성이라곤 한 명도 등장하지 않는다. 소크라테스에게는 크산티페와 테오도테, 아리스토텔레스에게는 피튀아스와 헤르퓌리스라는 여성이 이야기되곤 하지만 평생을 독신으로 산 플라톤에게는 그런 사람은 물론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유명인사에게 늘 따라다니는 여성 스캔들 관련 일화조차 없다. 게다가 그는 예상과 달리 동성애에 대해서도 매우 비판적이었다.(GG. Field(1967) p.28) 아마도 그는 그의 철학이 갖는 엄격함만큼, 마치 수도승처럼 경건하고도 금욕적인 태도로 평생을 살아간 것으로 보인다. >---- > 플라톤의 《편지들》(강철웅, 김주일, 이정호 옮김) 부록에서 발췌 플라톤의 <[[향연]]> 속 [[알키비아데스]] 묘사와 당대 그리스의 풍습 때문에 플라톤이 동성애를 좋아한거 아닌가 하는 인상을 받을 수도 있다. 일반적으로 고대 그리스에서, 운동경기, 전투, 정치, 철학, 수사술과 같은 높은 신분의 활동들은 자유인 신분의 남성들에게 국한되어 있었다. 당시 그리스에서는 성인 남성[* 기혼자일 수 있다.]이 18세 이하의 소년을 애인으로 삼는 문화가 자연스러웠다. 당시에는 잘생긴 소년은 강한 성적 매력을 풍기는 것으로 생각되었지만, 아무리 잘생겼더라도 성인 남성은 성적 매력을 갖지 못하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동성이지만 성적인 욕구가 없기에 이런 점에서 소년애는 [[동성애]]와 구분된다.] 성인 남성들은 성적 욕망에 이끌려 소년들을 따라다녔다. 성적 욕망의 대상인 소년들은 그 욕망을 공유하지 않는 것으로 생각되었고 그래야만 하는 것으로 기대되었다. 그에 비해 소년 애인은 성인 남성과의 관계에서 물질적 이득, 사회적 성공, 애호, 존경등의 다양한 연애 동기를 가질 수 있었지만, 성적 욕망이나 쾌락은 앞서 말했듯이 동기로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물론 그 중에는 성인 남성이 소년의 성적인 욕망을 자극시킬 가능성도 있다. 통상 능동적인 역할의 성인 남성은ἐραστής(사랑하는 자)로, 수동적인 역할인 소년은 ἐρώμενος(사랑받는 자) 또는 padika(소년 애인)으로 지칭하는 것이 당시의 관행이라고 한다. 이런 점 때문에 소년애 관계는 대등하지 않았다. 자세한 내용은 [[고대 그리스/동성애]] 문서 참조. 참고로 이러한 소년애 관계는 시민권을 따기 전인 소년에 대한 사회적, 교육적인 기능을 담당하기도 했다. 연애와 교육적인 기능, 그리고 사회적 지위가 결합되어 있다는 점에서 오늘날의 [[동성애]]와는 다르다고 할 수 있다. 당시의 소년애는 그리스 사회에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여성과의 사랑과 성관계는 종족번식의 본능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순수하지 못하고, 번식이 불가능한 동성과의 사랑이 본능 따위 포함되지 않은 순수하고 진정한 사랑이라고 했다. 그 시대의 여성은 남성들과 엄격하게 분리된 생활을 했다. 어린 나이에(14세 정도에) 결혼을 했다. 결혼 생활에서도 남성과 여성의 역할 분리는 엄격하게 유지되었고, 활동 공간 역시 나누어져 있었다. 가사를 돌보고 아이들을 낳고 기르는 것이 여성들의 일이었고 집 밖으로 나갈 일은 거의 없었다. 스파르타를 제외한다면 고대 그리스에서 여성은 반쪽짜리 2급 시민이자 아이를 낳는 태반 역할로 취급 당했다.[br] 이런 연유로 낭만적인 사랑은 자유인 남성 정부와 흔하진 않지만, 성인 남성과 소년 애인과의 사이에서만 가능했다. 여성과 결혼하지 않고 평생 지속되는 배타적인 소년애 커플은 흔하지 않다고 한다. <[[향연]]>에 나오는 아가톤과 파우사니아스가 그렇다.][* 다만 헬레니즘 시대와 로마 시대에 들어서는 그리스인들 사이에서도 [[이성애]]를 중시하는 풍조가 도래하게 되었다. 루키아노스에 따르자면 심지어 이성애vs동성애를 놓고 어느 쪽이 좋은지 철학자 사이에 논쟁이 있었을 정도.] 오늘날 육체적 사랑과 대비되는 정신적인 사랑을 의미하는 '[[플라토닉 러브]]'[* 유명한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플라토닉 러브를 가장 변태적인 사랑이라고 평한 바가 있다(…).]는 플라톤의 이름에서 따왔다. 이를 처음 쓴 사람은 이탈리아 신학자이자, 철학자인 [[마르실리오 피치노]]다. [[https://ko.wikipedia.org/wiki/마르실리오_피치노|한국어 위키백과 마르실리오 피치노 문서]] 그는 플라톤 전집을 [[라틴어]]로 처음 번역하면서 유럽 전역에 플라톤의 사상을 소개했다. 마르실리오 피치노는 플라톤의 에로스 개념과 아리스토텔레스, 키케로, 단테의 개념 등을 결합하면서 '플라토닉 러브'라는 개념을 재해석하여 만들어낸다. 그에 따르면 '플라토닉 러브'는 플라톤이 묘사한 사랑이고, 그것은 즉 신의 사랑이었다. '플라토닉 러브'는 마르실리오 피치노의 편지와 그가 주석을 단 <[[향연]]>에서 처음 쓰였다. 피치노의 '플라토닉 러브' 개념은 15,16세기 전반 유럽의 문학에 큰 영향을 끼쳤다. 그러나 문학작품에서 '플라토닉 러브'는 피치노의 철학적인 배경과 분리되고 희석되었다. 또한 플라토닉 러브는 고대 그리스 시대에 시민들 사이에서 보편적으로 이루어졌던 소년애와 맞물리면서 그 의미가 변질되기 시작한다. '플라토닉 러브'는 남자 어른과 소년과의 동성애, '에로스'는 이성애로 오해되었다. 영어 '플라토닉 러브'라는 말이 처음 쓰이게 된 것은 영국의 작가 윌리엄 데버넌트(William Davenant)의 책, 희극 (1635)이다. 윌리엄은 작품에서 <[[향연]]> 내용을 토대로 덕과 진리 사이에 있는 선(善)에 대한 사랑을 플라토닉 러브라고 주장했다. 이후 플라토닉 러브는 영국 왕실과 상류사회의 중요한 패션으로 자리 잡는다. 사랑을 육체적인 대상물로 표현하는 것은 저급한 계층에서나 하는 이야기며, 사랑은 품위가 있어야 하며 고매해야 진정한 사랑이라는 분위기가 퍼진 것이다. 이렇듯 오늘날 육체적 사랑과 대비되어 쓰이는 '플라토닉 러브'라는 말은 원래의 에로스[* 플라톤의 저서 〈[[향연]]〉은 여러가지 에로스에 대해 쓰였다. 〈[[향연]]〉에서 플라톤은 육체적 욕망으로부터 출발해 정신적인 것의 추구, 교류를 통해 영혼의 아름다움을 보고, 그로 인해 지식의 아름다움을 보는 것이 가능해진다. 지식의 아름다움은 다양한 이야기와 사유를 산출하게 된다. 이를 포괄하는 것이 아름다움 자체(= 좋음)이다. 에로스를 추구하는 최종단계에서는 아름다움 자체(= 좋음)를 갑자기 알려지는 것이 가능해진다. 몸에만 해당하는 아름다움이 아닌, 아름다움, 좋음 자체를 연습하는 일이 삶을 가치있게 만들어준다고 한다.] 어원에서 많이 멀어진 채로 쓰인다고 할 수 있다. [include(틀:문서 가져옴, this=문단, title=플라토닉 러브, version=66, paragraph=2)]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