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플라톤 (문단 편집) ==== 기타 ==== 2010년대에 들어 많이 쓰이는 인용구로 "[[정치적 무관심|정치를 외면한]] 가장 큰 대가는 저질스러운 자들에게 지배당하는 것이다." 라는 말이 있다. 플라톤의 《국가》 1권 347c에서, 소크라테스는 "돈이나 명예는 훌륭한 사람들이 지배자가 되기를 승낙하지 않게 할 것일세. ... 따라서 그들이 지배하길 승낙해야 한다면, 그들에게 처벌이라는 것으로 강제하지 않으면 안되네—이것이 아마 강제당함이 없이 지배를 받게 되는 것을 부끄러운 일로 생각하게 된 까닭인 듯하네—그러나 가장 큰 벌은, 만약 자기 자신을 지배할 생각이 없다면, 자기만 못한 사람의 지배를 받는다는 것일세."라고 한다. 이 문장은 민주국가에서 투표 독려의 격언으로 쓰인다. 물론 분명히 하자면 플라톤은 민주정을 싫어했다[* 플라톤을 민주/반민주주의자로 구별하려는 시도는 현대 학계에서도 섣불리 정의내릴 수 없는 주제이다. 일례로 포퍼는 플라톤을 전체주의자이자 반민주주의자라고 해석하는 반면, 로널드 B. 레빈슨이나 존 와일드 같은 경우는 플라톤을 민주주의자에 가깝다고 해석하는 등 이견이 많다.]. 앞의 발언은 일반적인 대중에게 하는 말이 아니라, 철학자(즉 통치자)에게 하는 말이다. 즉 철학자가 정치를 외면한다면 가장 저질스러운 자들에게 지배당하게 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앞의 발언은 민주주의와는 오히려 정반대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플라톤의 이상적인 국가는 철저히 검증된 소수의 엘리트들, 곧 '수호자(guardian)'를 상정하고 이들만이 정치 권력을 잡아 다른 모든 (열등한) 이들의 복리를 증진시키는 방향으로 권력을 행사하는 것이다. 즉 민주정이라기보다는 철저한 능력제에 가깝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발언이 현대 민주국가에서 쓰일 수 있는 것은, 아테네 민주정과 현대 민주정이 지닌 차이점 때문이다. 아테네 민주정은 모든 사람[* 현대의 '모든 사람'과는 범위가 다르다. 당시의 모든 사람이란 시대적 한계상 시민 남성만을 의미하고 노예와 여성이 빠졌다는 점을 간과하면 오독이 된다.] 이 통치에 적합한 능력을 완전히 똑같이 가지고 태어났다는 대전제를 가지고 있다. 물론 실질적으로는 능력의 차이라는 개념을 부정하지는 않았지만, 기본적으로는 추첨 민주정 체제있다. 즉 정치에 특화된 전문적인 프로 정치인이 아닌, 여러 분야에 두루두루 걸쳐있는 전인적인 아마추어[* 위에서와 같은 원리로, 여기서의 '아마추어'는 폄하하는 의미가 아니다. 고대 그리스 사람들은 현대 자본주의적 인간과는 달리 전문적 삶이 아닌 전인적 삶을 살았다.] 시민들이 이끌어야 한다는게 아테네 민주정의 대전제였다. 이는 현대 민주정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는데, 당장 [[대한민국]]만 하더라도 통치에 특화된 전문적 '프로 정치인'을 가려내기 위해 선거를 치른다. 이는 아테네와 분명히 다른 상황이다.[* 아테네 민주정에 대한 비판자가 가장 많이 저지르는 오류 중 하나는, 아테네 민주정을 현대 민주정과 비교하면서 폄하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옹호자가 가장 많이 저지르는 오류 중 하나는, 아테네 민주정을 현대 민주정과 동일시하면서 무작정 옹호해버리는 것이다. 당연히 둘 다 지양되어야 한다.] >법 개념의 이러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법이 국가의 모든 종류의 정치권력보다 상위에 있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체계화되어 명시적으로 표현된 것은 《법률》 편에서이다. 《법률》 편에 개진된 생각의 정도와 범위가 오늘날 우리의 시각에서는 미약한 것일지라도, 이런 생각은 비교적 독립된 사법권과 이에 보편적으로 호소할 수 있다는 것이 제도화됨으로써 비로소 가능하게 된다. 행정관의 신뢰성과 그들에 대한 통제는 아테네에서 이미 발견할 수 있는 것이었지만 플라톤의 제안은 행정관들의 모든 조치와 영역에 이런 통제를 확대하자는 것이었다. 알려진 바대로 플라톤은 민주주의자는 아니었다. 그러나 그가 반대했던 아테네의 민주주의 또한 우리의 민주주의와는 다른 것이었으며, 오늘날 우리의 민주주의는 아테네 민주주의 못지 않게 《법률》 편이 제시하는 법의 지배와 혼합정체론에 근거한 것이기도 하다. >---- >-플라톤의 《법률》(김남두, 강철웅, 김인곤, 김주일, 이기백, 이창우 옮김) 옮김이 해제 플라톤 철학에서 언급되는 민주정체는 오늘날의 대의[[민주주의]]와는 거리가 있는 아테네의 직접민주정체이다. 상술된 바 있지만 플라톤의 전성기 시절 아테네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으로 인해 겪은 고통, 그리고 패배가 끼친 후유증 등으로 인해 개판이었다. 이 와중에 [[소크라테스]]도 시민의 투표로 죽는 등, 플라톤 입장에서 민주정은 지배자들(참정권을 지닌 시민)의 이해관계만을 따지는 주제에 [[중우정치]]로 흘러가는 정치 체제였다.[* [[소크라테스]]의 죽음도 알키비아데스와 크리티아스의 사상적 스승인 것에 대한 죄값을 물은 것이다. 하지만 소크라테스가 직접적으로 알키비아데스나 크리티아스를 사주했거나 반아테네적 사상을 주입하지 않은 이상 그걸 이유로 사람에게 사형을 때리는 것은 말도 안 되는 것이다. 소크라테스 항목에서도 서술되어 있듯이 소크라테스의 사형은 많은 부분 그가 어그로를 끌었던 탓이 있지만, 원래도 밉상인 놈이 어그로까지 끌어서 더 미워져서 사형을 때린 것, 즉 너 미우니까 죽여버린다는 것이 바로 당시 민주정의 실태 중 하나였다.] 민주주의와 귀족정을 구분짓는 것은 권력이 소수에게 집중되는가 아니면 일반대중에게 있는가하는 차이이다. 민주주의자란 대중이 어리석고 비열하며 천박하다 할지라도 권력을 나누어 주어야한다고 말하는 사람이다. 현대의 '민주주의' 개념과 고대 플라톤의 직접 민주정체와 과두, 참주정체는 의미가 다르다. 플라톤은 '능력검증 없이 명문귀족 혈통이란 이유만으로 통치자격을 부여하는 형태의 귀족정'은 부정했으며, 모든 시민[* 상술했듯 당연히 이 '모든 시민'이 지구상의 모든 인간을 뜻하지 않는다는 걸 명심해야한다. 모든 인간이 동등하다는 식의 현대적 시각으로 읽어서는 오독이 된다.]이 평등하게 교육받아야한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플라톤 이론에서의 '철인'은 능력에 의해서 그 자리를 쟁취한 인간에 가깝다. 플라톤의 주장은 "통치에 적합한 소수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는 [[능력주의]](meritocracy)적이고 수호자주의(guardianship)적이다. 여기에 혼합정치를, 곧 현대적으로 말해서 권력분립을 결합한 것이 플라톤의 폴리테이아(政體) 이론이다.[* 가장 널리 알려진 <[[국가론|국가]]> 집필 시기의 플라톤 정치철학은 '옳고 그름의 전문가'인 철학자가 정치를 담당해야한다고 주장했고, 이는 귀족적 혈통주의와는 거리가 멀지만 상당히 [[엘리트주의]]적인 경향을 보인다. 하지만 스파르타의 몰락과 철인왕 옹립 시도 실패 등을 겪은 말년의 플라톤은 <정치가>, <법률>에서 자신의 사상을 더욱 보완하여 [[중우정치|옳고 그름을 잘 모르는 다수 민중도]], [[독재자|참주로 전락할 수 있는 소수 엘리트도]] 아닌 [[법치주의|법과 권력분립, 시스템에 의거한 통치]]를 주창하였다. 현대 대의민주정은 플라톤의 문제의식을 받아들여 [[법치주의|사람이 아닌 헌법에 기반한 통치 시스템]]을 확립하고 [[정치인|정치의 전문가]]가 존재함을 인정해 [[직접민주주의|민중의 정치 직접 참여]]가 아닌 [[선거|더 나은 전문가를 뽑고 견제할 권리를 민중에게 부여하는 방식]]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플라톤이 전체주의으로 해석할 여지가 있다는 의견은 있다. [[칼 포퍼]](『열린 사회와 그 적들』)나 [[로버트 달]](『민주주의와 그 비판자들』) 등의 관점에 따르면, 플라톤은 열린 사회의 적, 수호자주의자이다.[* 플라톤의 저작이 희곡 형식의 문학 작품이이서, 플라톤이나 소크라테스의 정치사상에 대해서는 해석이 굉장히 다양하다.] [[로버트 달]]에 따르면, 현대 민주주의의 근본 전제는 "모든 인간은 스스로를 통치하는 능력에서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이며,[* 플라톤도 정치가에서 철인정치가 안 되는 이유 중 하나로 누구든지 복종할 만한 우위를 가진 사람은 사실상 없다고 얘기했다. 신체적으로건, 정신적으로건.] 여기에서 "모든 이들이 스스로에 대한 통치에 있어 평등한 권리를 갖는다"는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가 뻗어나온다. 로버트 달은 현대 민주주의가 전문가의 필요성 등에서 능력제적 요소를 받아들인 것은 사실이지만 이러한 전문가의 영역은 어디까지나 [[민주주의]]의 핵심 조건 가운데 하나인 "최종적 주권자인 평등한 시민들이 중요한 사안에 관해 적절한 정보를 제공받는 것"을 돕는 데 한정되며, 최종적 결정권은 평등한 시민들이 갖는 것이라고 논한다. 즉, 대의제와 선거를 플라톤적 개량으로 해석하려는 것은 어렵다. 현대 민주주의가 대리인 선출이라는 대의제적 요소를 갖게 된 것은 근대국가의 큰 규모를 아테네식의 직접민주주의가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미국의 모든 시민들이 단 30초만 직접 발언한다고 해도 1억 5천만분의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시공간적인 제약을 결코 극복할 수가 없으므로 분업의 차원에서 유일한 대안인 대의제가 등장한 것이다. 현대 민주주의는 플라톤적인 "통치에 적합한 소수"를 결코 상정하지 않는다. (정신질환이나 연령에 따른 선거권 및 피선거권 제한을 예외로 하면) 누구도 평등한 성인 시민 가운데 일부는 통치에 적합하지 않다는 이유로 선거권과 피선거권을 박탈당하지 않는다는 점만 보아도 그러하다. 이는 의원내각제-비례대표제 민주주의 국가에서 극명히 드러난다. 사람들은 특정 인물이 "통치에 적합한 소수"라고 믿기 때문에 표를 던지는 것이 아니라 특정 정당의 정책을 선호하기 때문에 그 정당에 표를 던지는 것이다. 다만 고전적 민주정이 현대의 민주정으로 발전한 것이 플라톤적 개량의 의도인가를 논외로 하더라도, 결과적으로는 현대 민주정에서도 플라톤적 호소가 여전히 유효하다고 볼 여지는 분명히 있다. 위에서 인용하듯, [[로버트 달]] 역시도 현대 민주정이 능력제적 요소를 어느정도는 받아들였다는 것을 인정했다는 것이 중요하다. 현대 민주정은 '자기통치능력'이 큰 차이가 없다고 할 지언정, '통치능력'에서의 차이 그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정말로 '통치능력'의 차이를 부정한다면, 대의민주정의 가장 이상적인 방법은 제비뽑기를 통한 대표 선출이다. 인구수의 문제로 순수한 직접민주주의가 힘들었던건 아테네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본질적으로 똑같으며, 그렇기에 아테네는 '제비뽑기'라는 방법으로 관료를 선발했다. 왜냐하면 통치능력의 차이를 극단적으로 부정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테네의 방법을 21세기 민주국가들이 과연 따라하고 있을까? 아니다. 비록 대의민주정이 직접민주정의 현실적 한계(시간, 비용 등의 한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행해진 것일지언정, 선거라는 제도는 명백히 '더 알맞은' 사람을 가려내는 제도이다. 심지어 [[총선]]에서의 비례대표에서도 이는 드러난다. [[비례대표제]] 항목에서 보듯이, 부적합 인물의 출마 가능성이 있는 것 자체는 비례대표제가 가진 문제점으로 여전히 진지하게 논의되고 있다. 사람들은 비례대표에서조차 적합한 인물이 좋은 순번을 받았는지, 혹시나 부적합한 인물이 비례대표로 당선되지를 않았는지를 '너무나 당연하게' 검토한다. 이는 '통치에 적합한 누군가'라는 관념이 민주사회에서도 호소력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물론 현대 민주정이든 아테네 민주정이든 "평범한 사람들에게 목소리를 주자"라는 것에는 동의를 하고 있으며, 그런 의미에서는 플라톤의 비판이 현대 민주정도 공격하는 것이기는 하다. 평범한 사람의 목소리를 막으려 한 플라톤의 생각은 21세기 관점으로도 가혹하다. 그러나 21세기의 평범한 사람들은 비록 목소리 자체를 포기하는 것은 아닐지언정, 다시 말해서 선거가 참정권의 유일한 발현은 절대로 아닐지언정, '적합한' 대표를 선별해야 할 상황은 인생에서 끊임없이 닥쳐온다. 바로 그 상황에서, "[[정치적 무관심|정치를 외면한]] 가장 큰 대가는 저질스러운 자들에게 지배당하는 것이다."라는 플라톤적 호소는 절대로 무의미하지 않다.[* 비슷한 예시를 들자면, [[키케로]]는 민중파를 물어뜯었을지언정 [[독재]]를 막으려는 민주주의자들에게 즐겨 인용되며, [[존 로크]]가 자유를 "지배의 부재"로 해석한 것은 자유주의와는 거리가 먼 신로마 공화주의자들에게 즐겨 인용된다.] 이런 플라톤의 정치철학에 대해 고대에서부터 말이 많았던 모양이다. 동시대에 이미 플라톤은 내 사상을 표절했다던가, 혹은 내가 알고 있는데 다른 사람의 사상을 표절했다던가 하는 얘기도 많았으며, 아리스토파네스나 에우리피데스의 희곡 등에서도 어느 정도 플라톤 사상의 혁신적인 부분과 비슷한 내용이 있다고 보는 학자들도 많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