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프리울리베네치아줄리아 (문단 편집) == 역사 == 알프스 산맥과 지중해 사이의 전략적으로 중요한 곳에 위치하고 있어 정치적 이해관계가 복잡해 분쟁이 잦은 곳으로 [[고대]] 때부터 로마 제국의 영토였던 당시 181년 [[이손초 강]] 하류에 세워진 [[아퀼레이아]][* 다만 현재 이손초강은 아퀼레이아 대신 동쪽의 몬팔코네를 지나간다. 오랜 세월이 흐르면 퇴적 정도에 따라 강줄기도 변한다.]라는 대도시를 중심으로 발전해 왔다. 실제로 주명인 프리올리와 줄리아의 어원은 각각 로마의 광장이란 뜻의 포룸 줄리와 고대 로마의 율리아 씨족에게서 유래되었다. 당시의 프리올리베네치아줄리아는 상감과 모자이크 예술이 탄생하는 등 매우 번창한 지역이었고, 프리올리의 모자이크 세공가들은 로마 제국 시대부터 유명세를 떨쳤다. 또한 이탈리아의 다른 지역과 동유럽, 그리고 북유럽을 잇는 해상무역의 중심지였으며, 북해와 발트 해를 줄발 지점으로 한 [[호박]]의 길을 통해 호박이 남유럽 일대로 유입되는 중간 지점 역할을 한 곳이다. 이후 로마 제국이 몰락하기 시작하면서 초기 기독교 공동체의 요새로서 로마로 향하는 순례자들의 주요한 중간 정착지로 변했으며 도적이나 종교 박해, 그리고 [[훈족]]의 침입으로부터 안전한 피난처가 되었다. 이후 5세기 동안 [[동로마 제국]]의 영토로 편입되어 있었으나 이는 해안 지역 한정으로 내륙 지역은 프리울리 공작 및 고리치아 백작들이 나누어 통치했다. 이후 590년 교황 [[그레고리오 1세]]가 국교회로부터 분리를 주장한 이 지역의 분리파들 간의 대립도 있어 실제로 교황이 보낸 군대를 피해 흩어진 작은 섬들 사이로 피한 분리파 교도들이 많았다. 그러다 순례자와 대희년의 시대인 11~15세기까지 동유럽 사람들이 프리올리베네치아줄리아의 아퀼레이아를 거쳐 로마로 가는 길목으로서 제 역할을 해 왔으며 통치권에 변동이 오면서 로마 가톨릭 교회의 아퀼레이아 총대주교의 세력이 커지자 해안은 물론 프리울리와 이스트리아 반도까지 교회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이 시기의 아퀼레이아의 대주교이자 베네치아 교구장은 로마 교황만큼의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베네치아 공화국의 지배를 받고 있던 상황이었다. 그러나 1420년 이탈리아 북동부의 강대국으로 등장한 [[베네치아 공화국]]이 프리울리에 대한 지배권을, [[신성 로마 제국]]의 [[오스트리아 대공국]]이 [[고리치아]] 및 [[트리에스테]]를 나누어 갖게 되면서 아퀼레이아가 주도권을 잡고 있던 시대는 끝났다. 베네치아가 지배하던 시기는 1593년 베네치아의 전략가와 기술자, 건축가, 역사가들이 참여한 팔마노바와 같은 군사요새를 지었다. 베네치아의 다른 식민지들도 별반 다르지 않게 베네치아 공화국은 프리올리 사람들을 그저 도시 건설에 투입하거나 [[오스만 제국]]과의 전쟁에 내보낼 잠정적인 인력으로밖에 생각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프리올리를 비롯한 베네치아의 지배하의 있던 지역들은 베네치아의 제대로 된 통치를 받지 못하고 심지어 착취까지 받게 되어 오랫동안 고립과 방관, 가난과 기아에 허덕였다. 이후 [[근대]]인 19세기 경 [[나폴레옹 전쟁]]의 결과로 전 지역이 오스트리아 대공국의 [[합스부르크 가문]]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가 1866년 [[이탈리아 통일]] 운동으로 인해 [[우디네]]를 중심으로 한 지역(현재의 프리울리 지역)은 [[이탈리아 왕국]]에 속하게 되었고, 그 동쪽 지역(현재의 베네치아 줄리아 지역)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 넘어갔다가 1918년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이곳의 전체가 이탈리아 왕국으로 편입되었다. 하지만 1945년 이탈리아 왕국이 추축국으로서 [[제2차 세계 대전]]에 참전하다가 패전하면서 [[이스트리아 반도]], 트리에스테의 내륙 지역, 카르스트 고원이 [[유고슬라비아]]로 편입되었다. 그러나 이탈리아계와 슬라브계가 같이 거주하던 트리에스테를 두고 이탈리아와 유고슬라비아 간의 대립으로 인해 [[트리에스테 자유 지구|1954년 각각 양측을 지지한 서방 세계와 공산권 간의 대립]]이 있었고, 이후 잠정 조치에 의해 [[미국]] · [[영국]]이 관리하던 A지구의 대부분은 트리에스테를 포함해 이탈리아의 행정 관할하에, 유고슬라비아가 관리하고 있던 B지구와 A지구의 일부는 유고슬라비아의 행정 관할하에 놓이게 되었다. 1975년 이탈리아·유고슬라비아 양국은 앞의 잠정 조치를 승인하는 협정을 체결했으며, 이에 따라 지금의 경계가 완성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