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프로타고라스 (문단 편집) ==== 시모니데스의 시 해석 ==== 프로타고라스는 이에 동의하고 시를 읽고 올바르게 이해하는 능력은 교양인의 기본 소양이라 하며 당시 유명했던 시모니데스의 시구[* 당대엔 유명하고 교육받은 자들 사이에서 널리 암송되었으나 현재는 이 대화편에 인용된 부분만이 남아있다. 실제로 이 시의 모순되는 것처럼 보이는 구절을 단어 분별을 통해 모순 없이 해석하는 것이 소피스트들 사이에서 유행했던 것으로 보인다.]를 아냐고 묻는다. 소크라테스는 물론 알고있고 자신이 이미 많이 연구해본 시구라고 답한다. 프로타고라스는 그렇다면 시구가 잘 지어졌냐고 묻는다. 소크라테스가 시구가 훌륭하다고 답하자 프로타고라스는 시구 속 '진실로 좋은 사람이 되기 어렵다'는 구절과 '탁월하기 어렵다'는 피타코스의 경구에 반박하는 구절이 모순되지 않느냐며 공격한다.[* 갑자기 시구 해석을 시작하는 게 앞에 있던 논쟁과 유리된 생뚱맞은 비약으로 보일 수 있겠지만 소크라테스가 한 '되다'와 '하다'의 차이가 아닌 '좋다'와 '탁월하다'를 변별하는 것으로 모순을 해결한다면 프로타고라스가 앞에서 장황하게 연설하다 소크라테스의 반발을 불러온 좋음의 다양성을 입증할 수 있고 더 나아가 소크라테스가 주장하는 덕의 단일성을 반박할 수 있다는 점에서 미루어 보아 소크라테스가 만일 시구의 모순을 인정한다면 덕의 단일성을 논파하고 논쟁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계산이 깔린 행위로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소크라테스는 소피스트적인 궤변을 프로타고라스보다 더 잘 활용하는 방법으로 이를 비껴나갔고 결국 프로타고라스는 비록 마지막에 소크라테스를 논파해내지만 정작 자신의 주특기인 소피스트술에서 오히려 소크라테스에게 패배해버린다.] 소크라테스는 이에 단어 의미 세분화를 연구한 것으로 유명한 프로디코스를 끌어들여 논답술을 벌이며 '되다'와 '하다'의 차이, 즉 성취와 유지의 차이를 지적한다. 좋은 사람이 '되는' 것과 영원히 탁월한 채로 '있는' 것은 다르다는 것이다. 프로타고라스는 덕을 소유하고 '있는' 것이 무엇보다 어려운 것임은 세상 모두가 아는 것인데 그러한 해석은 터무니없는 것 아니냐 반박한다. 소크라테스는 이번엔 자신이 프로디코스에게 강의를 들었을 때 [[무서운 아이|무섭도록 지혜롭다]]는 표현을 할 때마다 무섭다는 표현은 부정적 의미로 쓰여야 한다고 프로디코스에게 혼났다며 시모니데스가 '탁월하기 어렵다'는 피타코스의 경구를 '탁월하기 나쁘다'는 식으로 해석해서 이를 비난하는 것 아니냐고 주장하고 프로디코스가 이에 동의한다. 프로타고라스가 당연히 어렵다는 나쁘다가 아니라 힘들다로 해석해야 한다고 바로 반박하자[* 애초에 '진실로 좋은 사람이 되기 어렵다'는 구절에도 어렵다는 단어는 등장한다. 번역으로 인해 같아진 것도 아니라 그리스어로도 동일하다.] 소크라테스는 이는 프로디코스와 자신이 프로타고라스를 시험해 보기 위한 농담이었다고 발뺌하고 자신의 시 해석을 소피스트처럼 장황하게 연설하기 시작한다. 소크라테스는 [[7현인]] 같이 지혜로운 이들은 [[스파르타]]인의 라코닉 화법처럼[* 스파르타인이 사실은 지혜로움으로 인해 우월한데 자신의 지혜를 숨기기 위해 (자신과는 달리 지혜를 숨기는 이들이 많다 했던 초반부 프로타고라스의 발언을 떠올리게 한다.) 지혜가 아닌 군사 훈련으로 우월해진 척 한다는 억지 주장도 곁들인다.] 짧은 경구로 자신의 지혜를 드러내는 것을 즐기고 피타코스 역시 비슷한 방식으로 경구를 이용했다 주장한다. 그리고 시모니데스가 이 시를 쓴 이유 자체가 바로 피타코스를 논파하기 위함이고 우선 '진실로 좋은 사람이 되기 어렵다'는 구절은 문법적으로 '좋은 사람이 되기 진실로 어렵다'라는 뜻으로 읽어야 한다고 (억지) 주장한다.[* 소크라테스의 주장은 그리스어 문법을 보자면 굉장히 부자연스러운 것이다. 이 뒤로도 시구를 해석하면서 이런 억지 주석을 다는 부분이 많다.] 좋음의 등급은 구분할 수 없어 '진실로' 좋은 것이 있을 리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을 하는 이유는 프로타고라스의 좋음의 다양성과 상대성 주장을 봉쇄하기 위함인 것으로 보이나 [[메논]], [[파이돈]], [[국가]] 등 다른 대화편에서 참된 좋음을 추구하는 모습과는 대조된다.] 그리고는 자신이 했던 '되다'와 '하다'의 차이를 다시 끌어들여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은 어려울 지언정 가능한 일이지만 영원히 탁월한 채로 '있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게 시모니데스의 원 뜻이라 한다. 그리고 시구 다른 부분을 인용하며 탁월한 이도 어쩔 방도 없는 재난에 쓰러져 나빠질 수 있으며[* 소크라테스는 여기에 자신의 지덕합일 사상을 끼워넣어 쓰러짐을 앎의 상실로 해석한다.] 오히려 원래 나빴던 이는 이미 쓰러져 있으니 재난에 쓰러질 수 없고 그러니 시모니데스가 재난에 쓰러진다고 표현한 건 탁월한 이들을 일컫는다고 주장한다. 아무리 탁월한 이라도 어찌할 수 없는 재난엔 쓰러지니 탁월한 채로 영원히 '있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결국 시모니데스는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은 진실로 어려울 지언정 가능하나 좋은 사람인 채로 영원히 있는 것은 어쩔 방도 없는 재난을 이겨낼 수 있는 신이 아닌 한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는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이에 더해 시구 나머지 부분의 대부분을 가져오며 시를 전체적으로 해석하기 시작한다. 우선 '모든 이를 나는 칭찬하고 사랑하네,/ 기꺼이 어떤 추한 일도 행하지 않는 자는 누구나.'라는 구절은 시모니데스가 의도적으로 저지른 나쁜 일이 아니면 비난할 수 없다[* 보통은 소크라테스가 반박하는 이 주장이 시모니데스 시의 원래 주제로 생각된다. 아무리 탁월한 이라도 어쩔 방도 없는 재난에 쓰러질 수 있으니 의도적으로 나쁜 이 아니면 함부로 나쁘다 보면 안된다는 것이다.]는 멍청한 생각을 할 리 없다고 주장하며 그렇게 보통 해석하기 쉬운 부분의 내용은 좋은 이들이 자기 조국이나 부모의 이상한 행동을 변명하는 등의 좋지만 잘못되었다고 볼 수 있는 행동을 가리키는 것이고 비슷한 내용의 시구 마지막 부분인 '지나치게 무법적이지 않은 사람,/ 나라에 이득이 되는 정의를 아는/ 건전한 사람, 그런 사람을 나는 흠잡지 않으리,/ 바보들의 무리는 무수히 많으니./ 추한 것이 섞이지 않은 것은 모두 아름답도다.'라는 구절은 의도적으로 나쁜 짓을 한 이가 아니면 나쁜 이라 할 수 없다 주장하는게 아니라 관대한 시모니데스가 좋다고 볼 수 없지만 나쁘다고 볼 수도 없는 회색에 가까운 이들 또한 포용하겠노라고 선언한 것이라 (억지) 해석한다.[* 프로타고라스 속 소크라테스의 시모니데스 해석은 처음부터 끝까지 자의적인 해석과 부정할 수 없는 억지와 궤변으로 점철되어 있다. 보통은 소피스트들의 시구 인용과 궤변을 풍자하며 이러한 행태가 쓸모없음을 그리스 희극적인 분위기로 익살스럽게 표현했다는 해석이 일반적이지만 소크라테스가 소피스트들의 주특기인 언어의 분별과 장황한 궤변 연설을 소피스트 본인들보다도 더 잘한다는 것을 보인 것으로 볼수도 있다.] 히피아스는 이러한 소크라테스의 궤변에 호평을 내리며 자신의 해석도 한번 들어보겠냐고 하지만 청중들은 소크라테스와 프로타고라스의 논쟁이 우선이라며 이를 거부한다. 소크라테스는 시구 해석은 의미 없는 일이라고 비하하며 진정 훌륭한 이들은 음악이나 시 같은 꾸밈 없이 자신의 연설만으로 분위기를 만들수 있다며[* [[이온]]과 [[국가론|국가]]의 시인추방론으로 이어지는 플라톤의 시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드러나는 부분이다. 작내에선 프로타고라스와 소피스트들의 주특기인 시구 인용을 비판하는 역할을 한다.] 시구 인용 없이 생각과 논리만으로 맞붙어보자 제안하며 다시 덕의 단일성 논쟁으로 돌아올 것을 요청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