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프로이센 (문단 편집) === 프로이센 지역과 현재의 독일 ===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제2차 세계 대전 종전 후 독일-폴란드 영토 논란)] 앞에서 말했듯 독일은 1차 대전 직후 [[포젠]]과 [[서프로이센]] 대부분[* 포젠과 서프로이센의 일부 영토가 2차 세계대전 시기 이전까지 독일 영토로 존속하였다.], [[엘자스-로트링겐]] 및 기타 일부 영토를 빼앗겼고, [[2차 대전]] 직후 [[동프로이센]], [[슐레지엔]],[* 아주아주 조금 남아서 [[작센]] 주에 흡수되긴 했다.] [[브란덴부르크]] 동부의 1/3과 [[포메른]]의 2/3 등 [[오데르-나이세 선]] 이동의 동방 영토를 잃어버렸다. 비록 [[현대]]에 이르러서 옛 프로이센의 대부분이 [[폴란드]]나 [[러시아]]에 예속되었다곤 해도, '''프로이센이 현대 [[독일]]에 미치는 직간접적인 영향은 그 어떤 것들보다도 더할 나위 없이 크다.''' [[30년 전쟁]] 이후 수백 개의 영방으로 나뉘어지고, [[나폴레옹 전쟁]]으로 태반이 정리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왕국]]만 4개([[프로이센 왕국|프로이센]], [[바이에른 왕국|바이에른]], [[뷔르템베르크 왕국|뷔르템베르크]], [[작센 왕국|작센]])가 존재했던 독일이 지금의 통일된 독일로 있게 만든 나라인 데다가 독일에 대한 대외 이미지 등 프로이센이 [[독일|현대 독일]]에 미친 영향은 지대하다. 심지어는 현대 독일의 [[수도(행정구역)|수도]]도 프로이센 왕국의 수도였던 [[베를린]]인 데다가, 앞서 말한 대로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 유니폼 색상이 흑적금 삼색이 아닌 흑백으로 되어 있는 것도 프로이센의 영향이 짙다. 독일 [[네오 나치]] 및 [[극우파]]들의 염원이 이 과거 프로이센의 영토 수복인데, 현재 독일의 방침 자체가 ''''상실한 영토의 영유권을 영구히 포기한다''''라서 '''가능성은 제로.''' 그렇다고 해도 프로이센 지역 [[실향민]]들의 숫자도 만만치 않고, 이들 역시 [[고향]]을 되찾고 싶어하는 마음이 간절하다는 것이 변하지는 않는다. 나치 잔재를 과도하다 싶을 만큼 지워버리려는 [[독일 정부]]에 의해 도매금으로 이들의 보상 요구조차 처절할 만큼 묵살당하고 있지만. 그러나 폴란드는 이게 당연한 것이라고 주장하며 이는 사실이다. 과거 [[나치 독일]]은 [[폴란드 제2공화국|폴란드]]를 침략하여 유대인 90%를 포함한 폴란드 전체 인구의 무려 25%를 학살했다.[* 다만 인구의 25%가 줄어든건 소련 점령 영역에서의 피해도 합친 결과이다.] 이 막심한 손해는 독일이 보상하지 않으면 폴란드가 보상받을 방법이 없다. 소련에 빼앗긴 영토를 점유하고 있는 [[우크라이나]]와 [[벨라루스]]에 보상을 요구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여기에 [[폴란드 인민 공화국|공산 폴란드]]가 들어선 후 독일로 강제 이주된 이들 중에는 바로 이 나치 독일이 [[유대인]]과 [[폴란드인]]들을 학살하고 해당 도시에 대거 독일인들을 이민시킨 것도 있다. 전쟁 기간 동안 250만에 이르는 폴란드 시민들이 독일의 강제 이주로 쫓겨났고, 이 자리를 130만에 이르는 독일 정착민들이 차지했다. 예를 들어 폴란드 공업 도시 [[우치(폴란드)|우치]](Łódź)의 경우, 전쟁 전의 시민 중 독일계는 9%에 불과했지만 독일이 점령한 이후 25만에 이르는 유대인과 15만에 이르는 폴란드인들이 쫓겨났고, 이들 대부분은 [[학살]]당했다. 그리고 그 자리를 15만에 이르는 [[독일인]]이 차지했다. 단순히 우치뿐만 아니라 독일에 병합된 폴란드 서북부 영토에서도 이러한 일이 빈번하게 일어났다. 그리고 이렇게 폴란드인과 유대인들의 자리를 차지한 독일인들 중 일부는 [[독일 국방군|독일군]]을 따라 독일 영토로 도망쳤거나 학살 및 추방당했고, 나머지 독일인들은 전후 [[폴란드 인민 공화국|폴란드 공산 정권]]에서 [[전후 독일인의 추방과 도주|독일로 강제 이주시켰다.]] 이 경우는 단순한 압제자에 지나지 않는다. 단순히 인구뿐만이 아니다. 폴란드는 독일의 침공으로 전체 재산의 상당수를 잃어버렸다. [[바르샤바]], [[그단스크]], [[그디니아]], [[포즈난]] 등 유수의 폴란드 도시들이 폐허가 되거나 반파되었다.[* 바르샤바는 폴란드의 수도, 그단스크와 그디니아는 폴란드의 무역의 '''77%'''를 담당하던 지역이었다.] 특히 [[바르샤바]]의 경우는 독일에 의해 계획적으로 매우 철저히 파괴되었다. 또한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소련]]이 폴란드 동부 지역을 자신이 가져갔고 그 보상으로 독일 동부 지역을 떼어 폴란드에 주었다. 당시 소련 지도자가 악명 높은 '''[[이오시프 스탈린]]'''이었다. 오히려 당시 [[런던]]의 [[폴란드 망명정부]]는 전쟁 전의 [[국경]]을 원했다. 독일 동부를 폴란드에 내준 것은 스탈린이다. 또 스탈린은 [[폴란드 침공]]에서 독일과 짝짜꿍하며 폴란드를 갈라먹은지라 폴란드 입장에선 히틀러나 스탈린이나 그놈이 그놈인 상황이다. 이외에도 폴란드는 전후 독일에 보상을 청구한 적이 '''의외로 단 한 번도 없다'''.[* 독일의 전후 보상 자체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양 독일을 재무장시켜야 했기 때문에 서로 합의를 봐서 전후 청산을 철저하게 하고 영토 분할에 대해 입을 닫는 대신 국가 차원의 공식적인 전쟁 배상금을 요구하지 않거나, 소련처럼 형식적으로만 받았던 것이다. 하지만 다른 나라는 전후보상을 청구하기라도 했던 반면 폴란드는 아예 청구 자체를 하지 않았다.] [[1945년]] 당시 폴란드인들이 이 [[국경]]을 원했냐 하면 그렇지도 않은 것이 위에도 써놨지만 '''[[스탈린]]이 친히 그렇게 명령했다'''. 그리고 폴란드는 독일 동부를 얻은 대가로 자국의 동부 영토를 소련에 빼앗겼다.[* 사실상 소련이 폴란드 영토를 뺏어간거에 대한 보상 겸 입막음으로 독일 땅을 넘겨준거에 가깝다.] 즉 폴란드 입장에서는 실질적으로 보상받은 것은 아무것도 없고, 남은 것은 독일이 남기고 간 폐허밖에 없다.[* 물론 대신 받은 구 독일 영토의 잠재적인 경제적 가치가 더 높긴 했지만 당시로써는 맨땅에서 재시작해야 하는 입장이었다.] 그나마 사람이라도 남아 있으면 좋겠지만, 스탈린의 지시에 의해, 그리고 청년층 인구가 거의 박살난 독일의 피해 재건을 위해 다 [[동독]]으로 쫓아냈다. 그리고 폴란드인들은 이 폐허 위에서 모든 것을 완전히 재건해야 했다. 그런데 물론 가능성이야 없지만 만약 독일이 갑자기 폴란드에 영토를 내놓으라 한다면, 폴란드 입장에서는 정말이지 날강도도 이런 날강도가 없다. 나치 독일에 의해 유럽에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국가가 폴란드와 소련인데, 그 역사적 과정을 그냥 무시하고 내놓으란 법이 있는가? 이러한 주장은 현실적으로도 불가능한 것이, '''현대 폴란드 영토의 3분의 1 이상이 옛 프로이센([[독일제국]] 기준) 땅이다.''' 폴란드가 이 영토를 가지게 된 계기는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이후 [[스탈린]]이 [[독소 불가침조약]]을 맺고 [[폴란드 침공]]에 가담하여 집어삼켰던 영토를 내놓지 않으려고 폴란드에 일련의 보상으로서 대규모 탄전 지대이자 공업 지대였던 [[슐레지엔]], [[발트해]] 요충지인 [[포메른]], 근대 독일의 발상지인 프로이센 및 [[브란덴부르크]] 동부 등의 독일 영토를 대신 할양한 것인데, 이 때문에 본래 폴란드에서 약간 서쪽에 위치하던 수도 [[바르샤바]]가 상당히 동쪽에 쏠리게 되는 등 국토가 서쪽으로 많이 밀려나게 되었다. 현대에도 이 지역은 폴란드의 알토란인 데다 폴란드 역시 [[커즌 선]] 이동의 고토를 소련에 빼앗겼기 때문에 이 상황에서의 상실 영토 수복 발언이나 운동은 결국 폴란드를 집어삼키겠다는 뜻이 되어버린다. 경제적인 측면에서 보아도 [[1990년]] [[독일 재통일|독일 통일]] 이후 구동독 지역을 구서독 지역과 균형을 맞추는 것만으로도 독일 경제에 크게 무리를 줬고, 현재까지 그 부작용이 만만찮다. 그것도 모자라 구동독 지역보다 경제적으로 비교적 낙후된 구 프로이센 영토까지 덜컥 떠맡게 된다면? [[1989년]] 동독의 1인당 명목 [[GDP]]는 $9,679였고, [[폴란드 인민 공화국|폴란드]]는 [[1989년]] 당시 '''$4,565에 불과했는데''', 이 자료도 공산 국가 특유의 과장된 통계로 실제로는 동독 3000, 폴란드 1000~1500이었다. 참고로 [[1989년]] 당시 [[서독]]은 $15,300.[* 더 기가 막히는 사실은 동독은 공산 국가 중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였다는 것이다. 가장 잘 사는데도 [[서독]]에 밀린 것. 서독이 당시 자유 국가 중에서 3위로 잘 사는 국가였다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문제다.] 거의 [[슬라브인]]으로 구성된 인구만 1,000만 명이 넘는 데다가 서독 근처도 못 오는 경제력[* 현재도 독일의 30% 수준. [[2013년]] 당시 독일 [[GDP]]는 $46,251, 폴란드는 $13,654.[[http://www.indexmundi.com/facts/poland/gdp-per-capita|#]][[http://www.indexmundi.com/facts/germany/gdp-per-capita|#]] [[PPP]]로 따지면 현재는 독일의 50~60% 수준이다.]을 자랑했던 이 지역을 떠맡는다면 훨씬 문제가 심각해졌을 것이다. 거기다가 전쟁 중 있었던 대규모 학살이나 전후의 강제 이주로 인해 현재([[21세기]])는 [[슐레지엔]]이나 프로이센 지방에 독일인들이 거의 살지 않는다. [[체코]]에 있는 [[주데텐란트|수데티]] 지방도 마찬가지로, 나치 독일 시절처럼 현지의 독일인들의 민족 심리를 자극하여 [[민족 자결주의]]를 운운하며 영토를 [[병합]]할 가능성은 거의 없는 것이다. 다만 북부 오스트프로이센, 즉 현재 러시아 [[칼리닌그라드]] 주에서는 2001~2004년경 '''러시아계 주민들의 자발적인''' 독일로의 병합 운동 및 [[쾨니히스베르크]] 명칭 복귀 운동이 일어난 적이 있었다![[http://durl.me/653hc|#]] [[소련 붕괴]] 이전 소련 영토였던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등 발트 3국이 [[유럽연합]]에 가입하며 [[칼리닌그라드]] 주가 EU 안의 [[월경지|섬]]이 되어버렸기 때문. 같은 러시아 영토인데도 불구하고 [[칼리닌그라드]]에서 [[모스크바]] 등 러시아 본토에 육로로 이동하려면 [[비자]]가 필요한 해괴한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다.[* 칼리닌그라드주의 특수 상황을 감안해달라는 러시아와 난색을 보이는 EU의 협상 끝에 현재 칼리닌그라드에서 러시아 본토로 육로 이동할 때는 '''간이 통행증'''을 발급받는 것으로 합의되었다.] 안 그래도 주변국보다 경제적으로 낙후되어 있던 차에 차별 아닌 차별까지 받게 되자 소외감이 극에 이른 주민들이 이 참에 아예 칼리닌그라드 주를 독일로 환수하거나, 적어도 자치권을 받기 원하는 움직임이 있었다. 하지만 러시아로서도 이 지역은 [[발트해]] 연안의 요충지로 [[스칸디나비아]] 지역과 [[중부 유럽]]을 동시에 견제할 수 있는 곳이다. [[러시아 해군]]의 [[발트함대]]의 모항인 이유가 이 때문이다. 또한 [[부동항]]이라는 것도 중요한 요소라서 도저히 포기할 수 없는 지역이다. [[우크라이나]]나 [[일본]]과의 영토 분쟁에 불리해질 선례를 남길 수도 없는 처지인 데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와 [[크림 반도]]와 [[돈바스]]를, 일본과는 [[쿠릴 열도]] 4개 도서(하보마이, 쿠나시르, 이투루프, 시코탄)를 놓고 영토 분쟁 중이다. 또한 현재 정부 차원의 직접적인 영토 분쟁은 없지만 [[핀란드]], [[폴란드]], [[중국]] 등과도 분쟁의 씨앗이 존재한다.] 현재 러시아의 [[실권자]]는 다른 사람도 아닌 '''[[블라디미르 푸틴]]'''. 거기에다 독일에서도 종전 약속을 지키기 위해 다시 한번 [[칼리닌그라드]] 주는 엄연한 러시아 땅이라고 천명하며 독일 환수 운동의 입을 막았다. 러시아가 나서서 돌려주겠다고 하지 않는 이상 독일로 돌아갈 가능성은 없다. 다만 현재도 [[칼리닌그라드]]에 독일인들이 문화, 사회, 경제면으로 [[칼리닌그라드]] 내 지분을 착실히 늘려가고 있고, 프로이센 시대 [[문화유산]] 유지 보수에 신경쓰는 것을 보면 [[제2차 세계 대전|아돌프 히틀러처럼 당장 무리수는 두지 않고]] 차근차근 순리적으로 병합할 걸 노리는 건 아닌가 하는 소리도 간간이는 나온다.[[http://mynury.com/63|#]] 물론 현실적으로 독일이 [[독일 재통일|통일]] 조건으로 [[안슐루스|오스트리아와의 통일]] 금지 및 옛 영토([[주데텐란트]]/[[포메른]] 및 [[동프로이센]]) 수복 금지를 내건 만큼 이 역시 비현실적인 관측이다. 애초 독일의 [[국력]] 자체도 러시아에 한참 밀려 러시아가 위협을 느끼면 주둔 병력을 늘려서 봉쇄해버리면 그만이다. 그리고 이 도시를 [[2018년]] [[러시아 월드컵]]의 주요 개최 도시 중 하나로 지정, 명백한 러시아 땅으로 못 박아 두는 강수까지 보였다! 정확히는 조별 리그 3개 경기를 [[칼리닌그라드]]에서 치르었고, 당연히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은 뺐으며, [[스페인 축구 국가대표팀]], [[모로코 축구 국가대표팀]]이 격돌했다. 사실 이제 유럽 같은 안정된 사회에서 [[영토분쟁]]을 일으키는 것도 자폭 행위이거니와, 이미 [[세계대전]]을 두 번이나 치른[* 특히나 [[전간기]]에 독일에 대해 소극적인 자세를 취해([[라인란트 재무장]], [[오스트리아 병합]], [[뮌헨 협정]] 등) [[2차 대전]]이 일어난 면도 있는 만큼 독일이 야심을 드러낸다면 [[전쟁]]으로 가기 전에 초장부터 압박할 수도 있다. 그것도 '''[[서유럽]]과 [[동유럽]] 모두 다'''] 독일이 다시 영토 수복 움직임을 보이는 것 자체가 주변국들에는 굉장히 위협적인 일이기 때문에 독일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영국]], [[프랑스]]나 [[폴란드]] 등 주변국의 독일 영토 수복에 대한 경계심은 정말 상상을 초월한다. [[1990년]] [[독일 재통일|독일이 통일될]] 때에도 영국의 [[마거릿 대처]] 총리는 아예 통일 자체에 반대했고, 프랑스와 폴란드는 더 이상의 영토 수복이 없고 현 국경에 만족할 것을 명시하라고 수 차례나 압박하고 맹세를 강요했다. 참고로 독일 [[국가]]인 [[독일인의 노래]] 1절에는 '마스(뫼즈강)에서 메멜[* 현 [[리투아니아]] [[클라이페다]] 남부 및 타우라게 주 남서부]까지, 에치(아디제 강)에서 벨트해[* 발트(Balt)해가 아닌 벨트(Belt), 즉 [[덴마크]]에 있는 소 벨트 해협(Little Belt)이다.]까지'라며 현 독일국의 영토를 규정하는 구절이 있는데 지금 이 경계들은 벨트해를 빼고는 '''주변국 땅이다.''' 특히 네만강은 [[동프로이센]] 동쪽으로 흐르는 강으로, '[[메멜]]까지'는 현재 폴란드의 전체 영토를 포함하는 영역이다. 본래 비더마이어 시대(1815-1848)에 지어진 시로서, [[독일 제국]] 때부터 부른 노래이긴 하지만 현재는 그 1절을 부르는 게 금기시되고 있고[* 단 [[호르스트 베셀의 노래]]처럼 완전 금지는 아니다. 어쨌건 이 지역들이 한때 독일 땅이었다는 건 부정하기 어려운 사실이고, 프로이센 시절 영토라고 우기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2절도 그닥 부르기에 좋지 않기 때문에[* 독일의 여자, 신의, [[와인]], [[노래]]를 지키자는 내용이다. [[여자]]를 [[남성]]의 소유물로 봤던 인식이 녹아 있다는 비판으로 인해 부르지 않는다.] 3절만 부른다(같은 이유로 네오 나치들은 1절만 부른다). [[1995년]]에 한때 [[브란덴부르크]] 주와 원래 브란덴부르크였던 [[베를린]]을 합쳐 베를린브란덴부르크 주로 만들려는 시도가 있었다. 실제로 두 주의 정부가 합의 하에 [[합병]]을 추진했다. 일부에선 새로 합병된 주를 아예 '''프로이센 주'''로 명명하자는 주장을 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합병은 이듬해 주민투표에서 부결되었고 이에 따라 프로이센의 '부활'도 무산되었다. 주민투표 때 구 서베를린 시민들은 합병에 찬성했는데 구 동베를린 시민들과 브란덴부르크 주민들은 반대했다고 한다. 사족으로 폴란드에서 [[가톨릭]]이 국가적 정체성과 동일시된다는 편견 때문에 2차 대전 직후 [[개신교]] 교회들을 다 갈아버렸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으며 [[http://en.wikipedia.org/wiki/Evangelical_Church_of_the_Augsburg_Confession_in_Poland|폴란드 루터교단]]과 [[https://en.wikipedia.org/wiki/Silesian_Evangelical_Church_of_the_Augsburg_Confession|실롱스크 루터교단]]등으로 소속이 바뀌어 잘 남아 있는 교회들도 많다. 물론 독일인들이 상당수 추방된 것과 [[폴란드 인민 공화국|공산정권]] 시절의 종교 탄압으로 인해 신자수가 과거보다 현저하게 감소한 것도 사실이지만 폴란드에서 [[개신교]]를 절대적으로 금기시했던 것도 아닌 데다 개신교 신자들이 모두 독일계이기만 했던 건 아니고, 오히려 [[폴란드어]]나 실롱스크어 등으로 [[예배]]가 진행되기도 하는 등 생각보다 [[현지화]]가 잘 이루어졌기 때문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