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프라이토리아니 (문단 편집) === 창설 === 오랜 내전을 끝내고 로마의 [[절대권력]]자가 된 [[아우구스투스]]는 본국 이탈리아에서 자신이 직접 제어할 수 있는 직속 무력집단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이에 따라 아우구스투스는 기원전 27년에 9개 대대로 편제되는 친위부대를 최초로 편성하게 되는데, 초기에 각 대대의 병력은 500명 정도였지만, 이내 2배에 달하는 1천 명으로 증강되었다. 여기에 각 대대별로 기병이 약 30기 정도 배속되어 1만 명이 조금 못 되는 규모였다. 구성원은 모두 로마 내지는 이탈리아 출신이었다. 즉, 창설 본국 출신들로만 구성된 엘리트 부대를 지향했던 셈이다. 비록 이렇게 친위부대를 편성하기는 했지만, 아우구스투스는 일단 카이사르 이래로 사실상 빈사 상태에 빠져있던 공화정을 부활시켰다는 형식을 취하면서 권력을 누리고 있었기 때문에 괜히 국경방어선이 없는 본국 수도에 군대를 박아놓고 전제적인 군사독재를 한다는 인상은 주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명칭도 눈가리고 아웅하는 식으로 프라이토리아니라고 지어서 '''이건 본국에 필요한 최소한의 치안과 방어를 보장하는 '법무'집행단'''일 뿐이라는 식으로 나왔다. 때문에 창설 초기에 근위대는 3분의 1에 해당되는 3개 대대 1500명에서 3천 명 정도가 로마 시내에 상주했고, 나머지는 로마 근교에 배치되었다. 그 임무 또한 황제의 궁전과 주요 시설들을 순찰하거나 요인들을 경호하는 데 그쳤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