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풍수지리 (문단 편집) == 과학역사적 해석 == 기본적으로는 [[기복신앙]]과 토속신앙에 근간한 [[애니미즘]]과 [[무속]], [[점복학]]을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어느정도 일리가 있는 분석도 있어 과학역사적 가치를 보려는 이들은 있다. 실제로 북반구 기준 북쪽에 산을 두고 남쪽에 물을 두는 [[배산임수]] 자체는 과학적으로 따져도 실제로 사람이 살기 좋은 형태에 속한다. 북반구를 기준으로는 남녘에서 햇볕이 잘 드는데다 겨울의 북풍을 막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남향 주택이 북향 주택보다 평균적으로 집값이 비싼 것도 이러한 맥락에 있다. 아파트들이 최대한 남향을 존중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게다가 좋은 경치가 보장되며, 앞의 강에서 물을 쉽게 길어올 수 있고, 뒷산에서는 땔감과 건축재료를 구할 수 있기에, 전통적인 농경사회 기준으로는 배산임수만한 곳이 없었다. 주변의 산과 앞의 강이 자연적 방어벽이 되기 때문에, 외적을 막는 데에도 용이하다. 이 때문에 풍수지리를 전통적인 농업경제 사회에서 자연스레 발달한 지리적 지식에 훗날 [[기복신앙]]이 덧붙여진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으며, 최창조 전 서울대 [[지리학과]] 교수 등을 중심으로 제도권 학계에서는 이런 자연과학적 차원에서 풍수지리에 접근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이론 자체로만 보면 풍수지리는 국토를 효율적으로 이용하기 위한 일종의 인문지리학적인 학설로 현실을 반영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풍수지리가 기본적으로 역사적 경험에 의거해 구성되었기 때문으로 추측된다. 특히 한반도에서 유독 양택풍수에 목을 멘 이유가 산이 많은 지형적 조건에서 유래했을 가능성이 크다. 기본적으로 산을 북쪽에 끼지 않으면 살인적인 북풍을 버틸 방도가 없거니와, 풍수지리를 따르자면 도시 및 거주지를 분지 지역으로 몰아넣어 결과적으로 [[평야]] 지대의 농경지를 보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1960년대 [[성남시|광주대단지]], 1970년대 [[안산시|반월신도시]] 입지를 선정할 때에도 농경지 침범 여부가 큰 고려사항이었을 정도였는데, 1970년대 말 [[박정희]] 대통령이 행정수도 이전사업 일명 백지계획을 추진할 때에도 실무자들에게 내린 입지선정 지침 중의 하나가 '최대한 평야지대는 (농사 때문에라도) 피하고 구릉지를 위주로 할 것'이었다. 물론 이런 식의 접근은 어디까지나 풍수지리에서 설명하는 원리를 현대 과학으로 재해석하려는 시도일 뿐이며, 이에 따라 앞으로도 풍수지리의 기준이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과거 [[수맥]]이 근현대 풍수지리에 알게모르게 편입됐듯, 현대 풍수지리에는 [[난개발]]로 인한 [[스카이라인]] 문제, 주변 건물로 인한 [[빛공해]] 등 다른 요소도 편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리학과 교수들의 대다수가 '명당이 어쩌고 산의 기운이 어쩌고' 하는 기복신앙적 요소를 매우 경멸한다. 최창조 전 서울대 교수도 풍수지리를 현대 학문으로 해석하려고 했는데도 학계에서 이런 시선을 받다가 스스로 교수직을 내려 놓았다는 말도 있었다고 한다. 반대로 과거 선조들이 풍수지리에서 가졌던 신비주의 관점을 유지하거나, 그런 관점의 존재와 유래를 무시할 수 없다는 견해도 상당수 있다. 대개 돈 받고 터 봐주는 대중사회의 지관이나 지관 시민단체들은 이쪽 노선이고[* 이중에서도 젊은 연령층일수록 후자가 많다.] 학계에서도 조용헌 교수가 비슷한 주장을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