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풀어쓰기 (문단 편집) == 역사 == 풀어쓰기는 [[구한말]]에 국문학자들에 의해 제안된 것이 시초로 [[타자기]]가 수입되면서 인쇄 및 문서작성에서의 용이성을 이유로 지식인 및 관료들에게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타자기로 한글을 적으려면 모아적기를 구현해야 되는데(훈민정음 때부터 그렇게 사용) 당대의 기술력으로는 모아적기를 구현하기에는 어려움이 많았다. 이 때문에 인쇄 및 문서 작성의 용이성을 이유로 일부 학자들이 주장하기 시작했고, 특히 [[주시경]]이 가로 풀어쓰기를 고안하여 책으로 내기도 했다. 현재 풀어쓰기라고 하면 [[최현배]]가 고안한 방식을 주로 일컫는다. 1908~1909년 주시경은 국문연구소의 '국문연구인' '국문연구보고서' 등을 통하여 '철자법은 자음과 모음을 각각 따로 적으면 제일 좋을 것이며 대체로 기존의 것을 따르되 경우에 따라 각 글자를 풀어쓰기 하는 것도 안 될 이유가 없다, 또한 기존의 철자법과 풀어적는 것을 섞어 사용하는 것이 옳다' 등의 의견을 밝히며 풀어쓰기를 제안했다. 이후 1922년에 이필수라는 국문학자가 '정음문전'이라는 책을 통하여 풀어쓰기를 주장하였지만, 기존 한글 자모의 모양은 그대로 사용한 주시경의 풀어쓰기와 달리 글꼴을 변형해 로마자나 키릴문자 필기체 모양과 비슷하게 만든 것이 다른 점이었다. 아래 등장하는 최현배, 김석곤 등의 풀어쓰기도 로마자와 흡사한 꼴이 많았다. 예를 들어 ㄱ은 알파벳 T 혹은 그리스 문자 감마와 비슷한 모양이었고 이는 특히 필기체(풀어쓰기 특성상 필기체가 가능했는데, 학자들에 따라 날림글씨 등의 이름으로 불림)에서 더 유사해진다. 이들 필기체는 현대인이 얼핏 보아서는 한글인지 모를 정도이다. 그 외에도 최현배, 김석곤[* 이 사람은 아예 1928년 동아일보에 6회에 걸쳐 풀어쓰기 칼럼을 게재했다.] 등이 풀어쓰기를 주장하였는데 국어 변동이 가장 큰 시기에 그런 주장을 한 것이 흥미롭다고 볼 수 있다. 이 시기에는 한글 맞춤법 통일안이 나와서 [[아래아]] 및 어두 자음의 합용병서(ㅅ계열 및 ㅂ계열)를 폐지하고 기존의 고어체를 모두 뜯어 고쳤을 만큼[* 가장 대표적인 예로 당시 한글과 한자음 간의 괴리를 다 뜯어고쳤다. '긔챠(汽車)'가 '기차'로 바뀐 것이 대표적인 예시.] 한글의 역사에 있어 격변기였다고 볼 수 있다. 다만 당대에도 풀어쓰기는 가독성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많아 결국 풀어쓰기는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이후로 [[공병우]]에 의해 타자기가 개량되면서 모아적기로도 충분히 기계화가 가능하다는 점을 보여주면서 풀어쓰기는 묻혔다. 그 이후 1987년 김정수라는 학자는 기울여 풀어쓰기를 제안하면서 기존의 풀어쓰기가 가독성에 문제가 있음을 인정하며 45도로 '기울여 풀어쓰기'라는 절충안을 제시하였다. ~~물론 묻혔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