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푸젠성 (문단 편집) == 역사 == [[춘추전국시대]] 이전에는 백월이라고 총칭되는 수십여개 다양한 부족이 살고 있었고, 이들은 북쪽 [[중원]]과 별개인 [[오랑캐]]의 지역으로 여겨졌다. 특히 푸젠 일대의 백월 부족들을 가리켜 '민(閩)'이라고 하였다. 이 부족들은 [[오스트로네시아어족]] 계통이나 [[크라다이어족]] 계통의 언어를 쓰는 종족들과 연관이 있으며 [[대만 원주민]]과도 연관성이 있다. [[춘추전국시대]] 때 [[월나라]]가 세를 확장하는 과정에서 푸젠성 일대의 종족들을 흡수하며 패권을 차지하였다. 이 월나라는 전성기때는 [[양쯔강]] 하류에 위치한 [[오나라]]를 멸망시킬 정도였으나 전성기가 지난 후에 세가 약화되어 초나라에 의해 멸망당하면서 초나라와 진나라의 지배하에 있게 되었다. 그 후 초한 쟁패기 시절에 민월과 동월이라는 명칭으로 독자적인 국가가 설립되었으나, 결국 [[한무제]]에 의해 멸망하였다. 다만 험한 지형과 중원에서 먼 거리 때문에 한무제는 이 지역 통치를 포기하고 동월 백성을 장강과 회수 사이로 옮겨 살게 했다. [[삼국시대]]에 이 지역은 [[동오]]의 영역으로 본디 한나라 회계군 소속의 미개발 지역이었으나 [[손권]]이 이 일대를 개척하여 196년 무렵부터 본격적으로 현이 설치되었다. 손권은 이와 비슷한 시점에 이곳에 회계군 남부도위(南部都尉)를 설치하고 [[하제]] 등을 보내 반란을 진압하고 이곳을 개척하게 했다. 동오는 이후 260년에 회계남부도위부를 승격시켜 이곳에 건안군을 설치했다. 이렇게 개발이 진척되면서 오랜 세월을 거치며 [[한족]]이 이 지역까지 내려와 정착하게 되고 동시에 통혼과 혼혈이 빈번히 일어나며 한족에 동화되었다. [[위진남북조시대]]엔 중원의 분쟁으로 인해 [[중원]]에서 수많은 한족 집단이 푸젠 지역으로 이주하여, 험준한 지형을 기반으로 [[객가]]라는 한족의 일파가 되었다. 이들은 오늘날 [[난민]]과 비슷한 처지였기 때문에 특이한 거주 양식이 발전했는데, 그것이 바로 마을 주민들의 공동숙소이자 작은 [[병영]]인 [[토루]]라는 폐쇄적 건축 양식이다. 또한 푸젠의 지형이 험준해서 농사로 먹고살기는 힘들었던지라, 푸젠 사람들은 역사적으로 [[공부]]에 집중하고, [[상업]]에 열중했다. 그래서 강절 지역(장쑤, 저장 등)과 함께 [[과거시험]] 급제자를 많이 배출한 지역이었고, 민상(閩商)으로 불린 상인들은 바다를 누볐다. 지금도 해외 [[화교]] 조상 중에서 객가인이 상당히 많다. [[취안저우]](천주)는 [[이븐 바투타]]와 [[마르코 폴로]]의 여행기에서 세계 최대의 항구로 나올 정도였다. 또한 이 곳은 한때 [[정성공]]의 [[동녕 왕국]]의 거점이었던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바다로 나가는 것을 금지하는 [[청나라]]의 [[해금]] 정책은 대만의 정성공을 고립시키기 위해 푸젠 해안 50km 이내 모든 마을을 파괴하고 주민을 강제 이주시키며, 이미 바다에 나간 푸젠인들은 외국과 밀통한 매국노 취급했다. 푸젠 출신의 화교가 고향에 돌아가지 않고 전 세계에 퍼져있는 한 이유가 되었다. 청말에는 상황이 역전되어 푸젠수사학당 등이 건설되면서 남양수사의 요람이 되었고 상당수의 해군 장성들이 푸젠성에서 배출되었다. [[신해혁명]] 이후 [[청나라]]가 멸망하면서 [[안휘군벌]] [[리허우지]]의 영토가 되었으나 1922년 [[쉬충즈]]의 공격으로 리허우지가 축출된 후 1923년 [[직예군벌]] 쑨촨팡의 영토가 되었다가, 그 휘하의 주음인이 통치했다. 하지만 1926년 [[국민당의 1차 북벌]]이 시작되면서 [[국민정부]]의 영토가 되었다. 1931년 [[만주사변]]이 발생한 후에 전국에서 가장 배일운동이 들끓는 성 중 하나가 되었다. 1933년 푸젠성 정부주석 [[장광나이]], 19로군 군장 [[차이팅카이]], 전 행정원 부원장 [[천밍수]], 전 광둥성 정부주석 [[리지선]]이 [[제5차 초공작전]]으로 중국이 혼란한 틈을 타서 [[복건사변]]을 일으켜 독립을 시도했으나 순식간에 분쇄되었다. 이후 [[천이(1883)|천이]]가 새로운 정부주석에 취임하여 그간의 배일 분위기를 일소시켰다. 1937년 [[중일전쟁]] 발발 이후 일부 주요 항구들이 일본군의 공격에 점령되었으나, 전체적으로는 중화민국의 영토로 남아 있었다. 1949년 [[중국|중화인민공화국]]이 [[국공내전]]에서 승리함에 따라 [[중국]]이 대륙 쪽에 있는 푸젠성 대부분 지역을 차지하였지만, 해안 도서 중 [[진먼]]현 대부분, [[롄장]]현 일부[* 흔히 [[마쭈 열도]]로 부르는 도서 지역.], 푸톈현 일부[* 현 진먼현 우추향.], 창러현 일부[* 현 롄장 현 쥐광 향.]를 점령하지 못해서[* 여기 언급된 행정구역은 모두 1949년 당시를 기준으로 한다.] 이 지역은 [[중화민국]]령으로 남아 있다. [[중화민국]] [[푸젠성(대만)|푸젠 성]]의 진먼현은 중국 푸젠성의 항구도시인 [[샤먼시]]와 불과 4km 떨어진 거리로, 이 지역에서 [[진먼 포격전]]이 발발한 적이 있다. [[21세기]] 들어서는 정기편 [[선박]]도 진먼 - [[샤먼시|샤먼]] 구간에 취항하면서 양안간 교류가 가장 활발한 지역이 되었다. 현재 [[중국]]의 명목상 행정구역으로는 진먼현(우추향 제외)은 취안저우시 소속,[* 취안저우시 밑에 (명목상)진먼현을 두고 있다.] 진먼현 우추향은 푸톈시 슈위구 소속, 롄장현(쥐광향 제외)은 [[푸저우시]] 롄장현, 롄장현 쥐광향은 [[푸저우시]] 창러구 소속으로 되어 있다. 한편 진먼현 중 중화인민공화국의 실제 영토인 곳은 샤먼시로 이관되어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