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푸에르토리코 (문단 편집) == 역사 == [[남아메리카]]에서 온 오르토이로인들이 약 4천년 전에 이 섬에 처음으로 정착하였다. 기원전 430년과 기원전 250년 사이에 살라드인들이 남아메리카에서 푸에르토리코로 이동해 오르토이로인들을 몰아냈다. 120년과 400년 사이에 오리노코강 유역에서 이그네리인들이 이곳으로 이주했다. 7세기와 11세기 사이에 타이노 문화가 형성됐고, 콜럼버스가 도착할 당시 약 3만 명에서 6만 명의 [[타이노인]]들이 살고 있었으며 이들의 지도자는 [[아궤이바나 1세]]였다. 타이노인들은 지도자가 이끄는 작은 마을에서 살고 있었고, 주로 남자들은 수렵을, 여자들은 [[카사바]]와 과일 채집을 담당했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도착 이후, [[중남미]]로 식민지를 넓혀가는 과정에서 자연히 [[스페인 제국]]의 식민지가 되었다. 1508년 스페인의 [[후안 폰세 데 레온]]이 푸에르토리코에 정착촌을 건설하였다. 허나 곧 [[스페인인]]들은 이곳에서 소량의 금이 나오는 것 이외엔 별 다른 돈벌이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플랜테이션]] 농장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물론 원주민들은 플렌테이션 노동에 강제로 동원되어야 했고, 열악한 환경을 이기지 못한 원주민들이 과로와 질병으로 빠르게 죽어나가자 이들을 메우고자 [[아프리카]]에서 흑인 노예들을 데려오기 시작했다. 1511년 산후안에서 [[아궤이바나 2세]] 휘하의 타이노인들이 반란을 일으킨 [[1511년 산후안 스페인-타이노 전쟁]]이 일어났으나 스페인군에 의해 무력 진압되었다. 곧 푸에르토리코는 연이은 정복전쟁에 있어 물류기지로서의 역할을 수행해나가게 되었고 스페인 정부로부터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1580년]]부터 400년 간 [[스페인 제국]]의 지배하에 놓이게 된다. 이 시기 스페인령 푸에르토리코([[누에바에스파냐|푸에르토리코 도독령]])는 신대륙의 귀금속과 물자의 집산지와 중개무역 기지로 전성기를 누렸다. [[1879년]] 노예 제도가 폐지되고 나서는 [[1897년]] 스페인이 자치권을 약속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바로 다음해인 [[1898년]] [[미국-스페인 전쟁]]의 결과로 미국에 할양되었다. 미국령이 된 뒤에도 한동안 미국은 이 섬에 관심이 없었다. 원래 미국이 원한 건 [[플로리다]] 반도의 부속도서 [[쿠바]]를 먹는거였다. [[사탕수수]]를 미국에 수출하고, [[플로리다]] 반도의 부속도서로서 미국 발 밑에 있으며[* 사실 [[한반도]] 본토와 [[제주도]] 간 거리와 비슷한 게 플로리다와 쿠바 사이다. 미국은 스페인으로부터 플로리다를 사들인 후 쿠바에도 본격적으로 관심을 가지며, 애초 [[미서전쟁]]의 원인부터 미국이 호세 마르티가 시작한 쿠바 독립운동을 도와주려고 발 뻗치다가 스페인과 충돌한 것이다. 이 때 미국은 쿠바 전선이 싱겁게 끝나자 이제는 중국으로 가는 관문인 [[영국령 홍콩]]과 가까운 [[필리핀]]도 같이 집어먹었다.] 면적도 꽤 넓은[* 쿠바는 초기 히스파니올라 식민지의 중심지로 쓸 만큼 땅 크기가 넓고 기후도 좋은 편이다.] 쿠바와 좁아터지고 대부분 못 쓰는 쓰레기 땅인 이 섬은 비할 바가 아니었다. 푸에르토리코는 너무 좁고 가운데에 떡하니 큰 산인 엘 윤케 산이 있어서 평지도 별로 없었으며 농업 생산량이야 여기도 [[사탕수수]]나 [[바나나]] 등 플랜테이션이 실시됐으나 같은 미국령이던 필리핀보단 생산량이 낮았다. 그러나 이런저런 이유로[* 무엇보다 미국이 스페인에게 전쟁을 선포하여 쿠바를 따낸 명분이 '''스페인 식민당국으로부터 쿠바를 해방시킨다'''는 명분이었던지라 대놓고 쿠바를 먹었다가는 [[13개 식민지|한 때 식민지였던 놈들이]]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한다|이제는 제국주의 열강 행세를 하는 꼴이라]] 다른 나라들의 눈치가 보일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미국은 쿠바를 합병하지는 못하고 1902년까지 군정을 실시한 뒤 독립국으로 풀어주었다.] 쿠바를 집어먹진 못해서 할 수 없이 이 섬을 대신 먹었다.[* 쿠바는 대신 미국의 보호국 신세로 전락했으며 1962년 [[쿠바 혁명]] 이전까지 쿠바는 사실상 미국 식민지 비슷한 취급을 받았다. [[미국인]]들도 쿠바에서 무엇이든 마음껏 할 수 있다고 믿었을 정도였다. [[피델 카스트로]]가 처음 혁명을 시도했을 때 본인이 사회주의자였음에도 민족주의도 강조한 이유가 바로 쿠바를 속국으로 취급하던 미국으로부터의 독립 때문이었다. 그러나 쿠바 혁명 이후에도 [[관타나모 만]]은 미국이 쥐고 있기 때문에 미국이 쿠바에서 완전히 발을 뗀 것은 아니다.] 그렇게 이 섬을 방치하다가 어느새 이 섬이 카리브 해 교통요지로 쓸모가 있단 걸 알고는[* 카리브 해는 유럽세가 신대륙으로 오는 길목이라 이 섬을 비롯한 섬 몇개만 미국이 가져도 제해권을 확실히 잡고 유럽세의 접근을 차단할 수 있는지라 [[먼로 독트린]] 이후 유럽세의 아메리카 개입을 차단해오던 미국에게 이 푸에르토리코 섬은 꼭 필요한 곳이 되었다.] 관심을 가지기 시작, 1917년에 푸에르토리코 사람들에게도 [[미국 시민권]]이 주어지게 되었다. 그러나 자치가 실시되어 그들 스스로의 총독을 뽑게 된 것은 1947년에 되어서였다. 그 전까진 생판 모르는 미국인이 총독으로 왔으나 이후에는 푸에르토리코 현지인들이 선거로 현지인을 주지사를 뽑는다. [[1950년]] [[미국 의회]]에서 자치성을 고려해 헌법 제정을 승인하는 법안이 통과되었고, [[1952년]] 7월 25일에 새 헌법이 제정되며 푸에르토리코는 자치령이 되고, 총독은 주지사로 지위가 바뀌었다. 이후 [[1950년대]], 미국 본토로부터의 지원으로 고속도로와 항구 등, 사회기반 시설을 건설하고, 푸에르토리코가 가진 미국 시장의 접근성, 그리고 연방정부가 제공하는 혜택을 최대한 이용하여 경제성장을 하는 전략을 취했다. 이에 각종 소득세, 재산세, 면허세 등을 면제하고, 저임금 인센티브로 미국 회사를 유치하는데 주력하여 1956년에는 제조업 총소득이 농업부문 총소득을 처음으로 앞질렀다. 이후 연방대법원이 설정한 공정근로기준법(Fair labor standard act)을 적용하여 [[1980년대]] 초에는 본토인 '''미국의 최저임금'''과 동일한 수준까지 올라갔다. 그리고 [[카리브 해]] 항로의 지리적 이점을 살려 정유산업을 육성하여 중화학 공업으로의 산업 전환을 꾀했다. 그러나 [[1970년대]] 중반 중동전쟁으로 인해 촉발된 [[오일쇼크]]와 미국의 경기침체로 푸에르토리코는 경제성장이 정체되기 시작했다. 특히 오일쇼크로 인해 발생한 금수조치로 인해 미국의 석유 수입이 줄고, 석유 수요량도 감소한것은 푸에르토리코의 경제에 큰 타격을 입혔다. 이미 본토에 종속된 산업구조로 인해 전통적인 설탕농업, 섬유산업에서도 대량 실업자가 발생했고, 푸에르토리코 정부의 막대한 지방부채는 이미 개별적인 경제정책으로 감당 할 수 있는 수준을 넘었다.[* [[2011년]]에는 푸에르토리코의 1인당 소득 대비 88.9%가 공공부채인 것으로 집계되었다.] 또한 푸에르토리코는 미국 지방채 발행시 면세혜택을 받고, 연방 파산법이 적용되지 않기 때문에 본토의 은행, 헤지펀드에서 실 가치에 비해 높은 수준의 투자가 이루어졌는데, 이점이 푸에르토리코가 [[모라토리움]]을 선언한 이후 도리어 발목을 잡고 있다. 이후 [[1980년대]]와 [[1990년대]] 초 미국의 경제 위기로 같이 흔들리기 시작했고 엎친데 덮친 격으로 [[1989년]]에는 [[허리케인]] 휴고가 전 국토를 물바다로 만들어 놓았다. 이러면서 미국본토로 이주가 늘었는데 이 섬 사람들은 미국 시민권자로서 미국 본토와의 왕래가 자유롭기 때문에 그만큼 인구 유출도 많은 편이다. [[http://www.pewresearch.org/fact-tank/2015/10/14/puerto-ricans-leave-in-record-numbers-for-mainland-u-s/|#]] 2017년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푸에르토리코를 매각하는 아이디어를 냈다는 증언이 나왔다.[[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2D&mid=shm&sid1=104&sid2=232&oid=079&aid=0003382686|#]] 물론 아이디어로만 그쳤다. 2019년 이후 미 연방정부의 지원과 관광업 장려로 경제가 살아나자 묻혔다. 미국에서 피한지로 각광받는다. 카리브 크루즈들은 죄다 코스가 이 섬을 찍고 가는 것이며 이 섬의 산후안에 크루즈선이 기항하면 돈 많은 백인 은퇴 노인들이 호텔 내 [[카지노]]에서 돈을 팍팍 쓰고 간다. 푸에르토리코는 미국인들에게 휴양지로 유명하며 관광업이 발달했다. 기존 산업의 몰락으로 인구 유출이 컸으나 대신 휴양지로의 개발을 택해 1인당 GDP는 어지간한 [[남유럽]] 국가 수준은 되는 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