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폴란드 (문단 편집) === 유대교 === [[폴란드 유대인]]은 11세기 말부터 현 폴란드 지역에 정착하기 시작했다. 10세기 후반부터 무슬림 통치 하 스페인의 유대인 상인들이 [[폴란드 영지]]를 방문하기 시작했으며, 11세기 말 십자군 전쟁 즈음해서는 [[유대인]]들이 [[폴란드 왕국]]에 정착하기 시작했는데, 당시 주요 정착지는 폴란드 왕국의 첫 번째 수도였던 그니에즈노였다. 폴란드 왕국은 십자군 전쟁 시기에는 다른 나라들의 유대인 박해와 비교하여 관용적인 대(對) 유대인 정책을 견지했으며, 유대인 상인의 유용성을 인정한 볼레스와프 3세(재위 1102 - 1138년) 치세에 이르러서는 유대인의 폴란드 이주가 가속화되어 폴란드 전역에 유대인이 정착하게 되는 결과를 낳았고, 미에슈코 3세 치세에는 동전에 [[히브리어]]가 새겨지기도 할 정도로 유대인의 영향력이 확대되었다. 이렇게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 형성 전 이미 폴란드 주요 도시에 유대교 공동체가 형성되었으며, 기존 주민이 [[영주(중세)|영주]]와 [[농민]]으로 양분되어있던 폴란드에서 상인·기술자 등 중간계급 역할을 맡게 되었다. 이런 폴란드 유대교의 낙관적인 상황은 [[독일 기사단국]]의 확장과 로마 [[가톨릭]] 교회 성직자 일부의 반유대주의 부추김으로 위기에 빠지기도 했으나, 폴란드 왕국의 역대 통치자들은 (자신들이 가톨릭 신자였음에도 불구하고) 대체로 [[반유대주의|반(反) 유대주의]]에 반대하여 관용적인 대(對) 유대인 정책을 유지했으며, 14세기 말에는 편입된 리투아니아의 유대인에게도 기존 폴란드 유대인과 동일한 권리를 보장하였다. 유대인의 폴란드 이주도 계속되어 1492년부터 16세기 전반부 사이에는 [[스페인]] 유대인 일부가 폴란드로 이주했다. 유대교는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 시절에도 내내 폴란드 최대 소수 종교였는데 이 때는 리투아니아로부터 리트박 유대인이 유입되기도 했으며, 폴란드 분할로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이 멸망한 뒤에도 폴란드의 유대교 세는 약화되지 않았다. 여러 외침 속에 대체로 폴란드에 충성한 유대인들은 큰 피해를 입었지만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의 왕들은 거듭해서 유대인의 권리를 옹호했으며, 1764년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의 유대인 수는 75만여 명으로 당시 전(全) 유럽 유대인 숫자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었다. 폴란드 분할이 끝난 뒤에 유대교의 위치는 전보다 위태로워지게 되었지만 유대인의 수는 감소하지 않았다. 오히려 19세기 말 러시아에서 [[반유대주의]]에 따른 [[포그롬]]으로 많은 러시아계 유대인들이 그나마 덜 위험한 러시아령 폴란드나 안전한 독일령 폴란드로 이주하였으며, 독일령 폴란드 서부에는 폴란드 분할 전부터 이미 독일계 유대인들이 거주하고 있었다. 오스트리아령인 [[크라쿠프 대공국]]에는 오스트리아인, [[헝가리인]], [[체코인]] 등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여러 민족에 제각기 (종교만 빼고) 동화된 유대인들이 이주하기도 했다. 전간기 끝 무렵인 1939년 당시 폴란드 [[유대인]]은 약 350만여 명으로 폴란드 인구의 10% 이상[* 그 중 [[이디시어]]를 구사할 줄 알고 유대인 정체성을 자각하고 있던 유대인은 약 325만여 명.]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제2차 세계 대전]] [[나치 독일]]이 저지른 [[홀로코스트]]로 인해 폴란드의 유대인들이 폴란드계·리투아니아계·러시아계·독일계를 막론하고 대거 목숨을 잃었을뿐더러[* 90%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그나마 남은 생존자들도 전후(戰後)에 지속적으로 [[미국]]이나 [[이스라엘]] 등지로 이주하면서 현재는 폴란드 내 입지가 거의 사라졌다.[* 0.1% 미만. 현재 폴란드 내 유대인은 2만여 명이다.] 게다가 러시아와의 역사적 악연 때문에 폴란드 내에서 이미지가 영 좋지 못했던 정교회보다도 교세가 약해졌으며, 그로 인해 정교회가 폴란드의 최대 소수 종교가 되는 아이러니한 상황까지 벌어졌다.[* 상술한 것처럼 폴란드의 정교회 신자는 약 50만 명인데, 약 2만 명인 폴란드 내 유대인보다 무려 25배나 많다!] 400여 년 이상 유대교가 폴란드 최대 소수 종교였던 점을 고려한다면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1985년 제작된 홀로코스트 관련 다큐멘터리 쇼아를 보면 전쟁 때 버려진 채로 촬영 당시까지 다시 문을 열지 못한 채 방치된 유대교 [[시나고그]]를 볼 수 있다.] 폴란드 내 [[유대인]] 대다수는 폴란드계 유대인이지만 [[실레시아|실롱스크]], [[포즈난]], [[그단스크]] 등 구 독일령 지역은 소수의 독일계 유대인도 거주하고 있다. 우크라이나와의 접경지대인 폴란드령 [[갈리치아]]는 우크라이나계 유대인들도 있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Warszawa_synagoga_Nozykow_03.jpg|width=500]]}}} || 1902년 건립되어 홀로코스트 기간동안 파괴되었다가 1983년에 재건을 마치고 다시 운영중인 [[바르샤바]] 노지크(Nożyk) 회당 홀로코스트로 인해 [[바르샤바]] 대(大)회당을 포함하여 많은 유대교 [[시나고그|회당]]이 파괴되거나 버려져 방치되었지만, 본격적으로 2000년대 접어들어 폴란드 유대인 문화 유산 보전 차원으로 방치된 시나고그 중 역사가 깊은 일부를 수리하고 다시 문을 열고 있다. 현재 폴란드 [[유대교]] [[교단]]으로는 '폴란드 유대교 공동체 연합(The Union of Jewish Religious Communities in Poland)'[* [[폴란드어]]로는 'Związek Gmin Wyznaniowych Żydowskich w RP. 약자는 ZGWŻ'.]이 있다. 폴란드 유대인 명사(名士)로는 영화 [[피아니스트(로만 폴란스키 영화)|피아니스트]]의 [[모티브]]가 된 피아니스트 브와디스와프 슈필만(Władysław Szpilman), 바르샤바 게토 봉기 생존자이자 전후에도 반(反) [[시온주의]]자로서 이스라엘 이주를 선택하지 않은 마레크 에델만(Marek Edelman) 등이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