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폭염/사례 (문단 편집) === [[15세기]] === * [[1405년]] 여름, [[조선]]: 혹서에 죄수들이 더위로 죽을 것을 염려하여 죄질이 가벼운 죄수를 풀어주게 했다고 한다. * [[1430년]] 여름, [[조선]]: 곧 혹심한 더위에 접어드는 것을 이유로 공조에 명해 건축 공사를 정지시키게 했다고 한다. * [[1432년]] 여름, [[조선]]: 심한 더위로 죄질이 가벼운 죄수들을 풀어주었다는 기록이 있으며, 11일 뒤에는 금년 여름은 더위가 심했는데도 사신에게 베옷을 주지 못한 것을 들어 지금은 가을철이 됐으니 베옷을 주는 게 어떻겠냐고 하자, 권진과 [[허조]]가 만류한다. 기록 시점인 양력 8월 2일에는 확실히 폭염이 설쳤으며, 그 뒤 3일과 12일 사이에 폭염이 누그러졌는지 13일 시점에선 날씨가 가을철같다는 언급을 한다. * [[1443년]] 여름, [[조선]]: [[세종(조선)|임금]]이 "올해는 가뭄으로 인해 더위가 심한데, 이미 죄가 가벼운 죄수들은 모두 풀어주었지만, 석방되지 않은 죄수들은 더위로 인해 옥에서 죽지 않을까 염려되니, 각 고을의 수령들에게 죄수들을 무휼(撫恤)하여 병이 나지 않게 하라는 전지를 내린다. 이상 양력 8월 7일의 기록이며, 이보다 이틀 앞서 여진족 사람 '도구라'가 더위를 무릅쓰고 서울까지 오는 것을 가련하게 여겨 도구라와 그 수행원들에게 옷을 하사할 것을 의논하게 하였다. 감옥에 남아있는 죄수들을 신경쓰는 것과 서울까지 내려오는 사람을 굳이 걱정할 정도로 더위가 아주 심했던 듯. * [[1484년]] 여름, [[조선]]: 폭염으로 인해 죄수들의 고통이 심해지자 [[성종(조선)|성종]]의 어명으로 강력범죄자를 제외하고 풀어주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 [[1485년]] 여름, [[조선]]: 기록에 의하면 전 해에 이어 이 해에도 불볕더위가 찾아와 [[경상도]] 등의 지역에서 [[기근]]이 들었다고 하며, 성종이 이를 언급하여 자신의 부덕함을 탓하고 대신들에게 방도를 물어보았다고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