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폭염/사례 (문단 편집) ==== [[1990년대]] ==== * [[1990년]] 여름, [[대한민국]]: 5~6월은 저온이었고 7월도 평범했으나 8월에는 다소 더위가 있었다. 8월 7일에 35.5도를 기록했고 폭염이 7말 8초에 연속으로 일어났다. 부산은 8월 평균기온이 역대 1위인 '''28.3 °C'''를 기록하였으나, 이례적으로 심한 더위기록은 8월 마지막 이틀을 빼면 거의 없었으며 대신 최저기온이 매우 높아[* 8월 하순까지도 열대야가 잦았다.] 평균기온도 덩달아 올라간 사례이다. 흐름을 보면 2020년 8월처럼 습기가 가득한 스타일이었던 듯. * [[1992년]] 여름, [[대한민국]] [[남부]]: [[대구광역시]]에서 7월 8일과 29일에 '''37.8℃︎'''를 기록했으며, 7월 하순 평균기온이 무려 30.5℃︎였다. 34~37℃︎의 폭염이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 대전 이남부터는 32~34℃︎ 이상으로 폭염이 길게 지속되었고 강릉도 7월 29일에 '''37.4℃︎'''로 7월 역대 5위를 기록할 만큼 심했으나 폭염이 7월에 집중되어 있고 서울은 이와 대조되게 폭염이 전혀 없었던 여름이라 그렇게 많이 알려지지 않은 여름이 되었다. 즉 남부지방 중심으로 더운 여름이었다. * [[1993년]] 여름, [[미국]]: 남동부에서 7월 평균 최고치를 기록. 그러나 이때 중서부에서는 홍수, 북서부는 이상 저온 현상이 일어나고 있었다. 한국에서도 ~~역시~~ 이 해에 이상 저온 현상이 발생하여[* 서울 기준 높아봐야 30도에서 31도 정도였다. 참고로 이해 연중 최고 극값은 6~8월이 아닌 '''5월'''에 달성되었다! 2022년 현재까지 서울, 광주, 대구에서 열대야일수가 없는 마지막 해이자 전주, 강릉, 춘천, 진주 등 상당수 지역에서 폭염일수가 없는 마지막 해이다.] 서늘한 여름을 보냈다. * '''[[1994년 폭염|1994년 여름]], [[대한민국]]'''·[[일본]]·[[중국]] 중동부[* 독일 [[베를린]]에서도 [[1994년]] 8월 1일에 37.7도를 찍었다고 한다. 단, 1994년 여름은 한국을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 지역이 무자비하게 더웠던 것 외에 세계적으로는 조금 더웠던 정도의 비교적 평범한 여름으로 기록되어 유럽쪽에서는 [[2003년]] 폭염 같은 특별한 폭염기록이 알려지지 않은 것으로 보아 일시적인 현상으로 추정됨.][* 중국 [[베이징]]의 여름철 평균기온이 역대 3번째이자 건국 이후 최대였다거나 일본 [[도쿄]]의 열대야 최다일수가 2010년 여름이 오기 전까지 최대였다는 기록이 있는 등 중국과 일본 또한 한국 못지 않게 역사적인 폭염으로 기억되는 여름이다.]: 우리나라에서 경험자들이 이구동성으로 꼽아주는 [[https://www.youtube.com/watch?v=TXUOeDYtt5M|인생 최강의 폭염을 맛본 여름.]] 기상학자들이 2017년까지도 첫순에 놓았던 '''전설의 가뭄.'''[* 기온이 아니라 가뭄 일수 기준, 21세기 지구온난화가 제대로 두각을 보이기 이전의 기록이라서 더 특이할 만하다.] 한국에서 1932년, 1939년, 1942년, 1943년 등의 아주 오래전 최강 폭염이 잊혀질만 할때쯤 가공할 폭염을 20세기에서 마지막을 화려하게 장식했다.[* 1970~80년대부터는 한국에서 본격적인 도시화가 진행되고 세계적으로 지구온난화 문제가 대두됨에 따라 이때는 기존의 열대야 기록까지 갈아치워 한반도의 열대야는 1994년이 관측역사상 최대다.] 하지만 '''이 해에 세워진 기록을 대부분 씹어먹는 [[2018년 폭염/대한민국|기상관측 이래 역대 최악의 폭염]]'''이 2018년에 발생했다.[* 다만 열대야 기록은 2018년보다 1994년의 기록이 더 앞선다.] 아직까지 이견이 있지만, 일부 학계에서는 1994년을 기준으로 동아시아의 몬순이 변했다고 볼 정도. 일사병 사망자가 속출했으며 아스팔트 바닥에서 계란 후라이가 가능했다. 상당수 지역에서는 이미 5월부터 최고 기온이 29도를 넘기는 등 이미 조짐이 보였다. 어쩡쩡한 장마로 인해 6월 말부터 시작된 폭염은 9월 초순까지 길게 이어졌으며 9월 중순~12월 말에도 평년보다 높은 기온을 유지하고 있었다.[* 1994년 9월 1일에 대구광역시가 37.5°C를 기록한 이후~~로도 연말까지 계속 고온을 보였던 것은 맞지만~~ 서서히 폭염의 기세가 어느정도 누그러졌다. 중부지방은 9월은 평년 수준이었다.] 이 때 [[대구광역시]]는 39.4도를 기록했다. '''심지어 7월의 대구 월평균 기온은 관측이래 유일하게 30도가 넘는 30.2°C!''' 서울도 38.4°C로 역대 최고 기온 달성. 2018년 이전까지 최상위 기록이었다. 서울의 7월 평균기온은 '''28.5도'''로 역대 1위, 8월 평균기온도 27.6도로 역대 5위. 이보다 높은 8월은 2018년 '''28.8도''', 2016년 '''28.0도''', 1943년 27.8도, 2013년 27.7도로 모두 기록적인 폭염이 발생한 해이다. 이 때 폭염으로 인한 사망자가 3,384명이라는 기사가 나왔으나 이는 '초과사망자'라는 개념을 오해한 것으로 사실과 다르다고 한다.[[http://www.bigkinds.or.kr/search/totalSearchView.do?news_id=02100601.20160125223821873|#]] 또한 사람들이 잘 모르는 사실이 있는데, '''전국 평균기온은 1994년과 2018년이 같다.'''[* 7~8월만 하면 1994년이 더 높다. 1994년 7,8월이 각각 27.7,26.7도 2018년 7,8월이 각각 26.6,27.1도이다. 단 서울의 경우 2018년이 더 높으며, 기간이 아닌 세기로 비교한다면 2018년이 우세하다.] 게다가 3달 총합으로 하면 1994년이 0.033...도 높은데 반올림되니 같은 것이다. 즉 평균기온으로 따지면 아직도 1994년이 원탑인 셈이다. 그만큼 1994년 폭염이 길고 광범위했던 지독한 폭염이였다. 당시 '''전국 폭염일수'''는 무려 '''29.4일'''을 기록했고 서울에서는 '''열대야'''가 '''35일'''이나 발생했다. 몇몇 사람들은 작년에 올 더위가 올해 더위에 얹혀서 왔다고 할 정도다.[* 반대로 전년(1993년) 여름은 7월 말~8월 초 기온이 9월 중순 기온과 비슷할 정도로 선선하여 역대 가장 서늘했던 여름으로 기억된다.] 덤으로 폭염에 [[가뭄]]까지 겹치면서 농업용수는 물론 생활용수조차 공급에 차질을 빚었는데, 7월 초에 조기 종료된 장마 탓에 전국 대부분 지방의 강수량이 평년보다 훨씬 적어 농민들의 시름은 깊어만 갔다. [[전북]] [[남원]]은 7월 한달 간 강수량이 단 1mm에 그쳤으며 거창, 정읍에서도 10mm 미만의 강수량을 보였다(...).~~지중해성기후?~~ 폭염은 계속되고 비가 오지 않아 가뭄 피해가 심각하여, 오죽하면 [[태풍]]이 오기를 기대할 정도였으며[* 이때 mbc 뉴스데스크 앵커가 이렇게 태풍을 손꼽아 기다려 본 적이 있을까라는 말을 하기도 하였다] MBC에서는 타는 들녘에 사랑의 물줄기(...)라는 특별 생방송을 편성하여 각 지역 가뭄이 극심한 지역에 양수기를 배달시키는 방송을 하기도 하였다. 실제로 8월 초에 남부 지방에 영향을 준 태풍 브렌던은 바람은 강하지 않으면서 적당히 비를 뿌려줘 '''효자태풍'''이라는 칭송(?)를 들었다. 일본에서도 지역에 따라 40도를 넘어가는 역대 최고 수준의 폭염으로 고통을 겪었으며, 가뭄 크리까지 겹쳐 많은 피해를 입었다. 중국에서도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이래 역사적인 폭염기록이 나왔다.[[https://nmg.weather.com.cn/zt/tqzt/2161990.shtml|#]] 그리고 [[안후이 성]]의 과거 여름 자료에서도 강수량은 적고 기온은 최고수준이었던 1994년의 위엄을 알수 있다.[[http://www.ahqx.gov.cn/ahqxoa/office/ahqx/200503/3%20%B0%B2%BB%D5%CA%A1%CF%C4%BC%BE%C6%F8%BA%F2%CC%D8%B5%E3%BC%B0%D6%F7%D2%AA%C6%F8%CF%F3%D4%D6%BA%A6.htm|#]] 공교롭게 [[김일성]] 사망과도 때가 겹쳤기 때문에 항간엔 일사병으로 죽은 것 아니냐는 추측도 있었으며,[* 사실 김일성이 죽은 7월 8일 당시에도 이미 경기도 안성 이남 지방에서는 7월 시작 본격적으로 폭염이 시작되었던터라. 중북부 지방은 장마가 지속되던 북한 영향으로 덜 더웠을 뿐이다. 또한 아직 7월 초니 일시적으로 폭염이 왔다가 지나갈 거란 예측도 있었지만 7월 9일부터 서울을 포함한 중북부 지방도 얄짤없이 폭염 시작, 이 날 기상청에서도 전국적으로 폭염이 오래 갈 것이란 예보를 하였다. 후대에 김일성의 죽음과 폭염을 연결시켜 이야기를 만들었을 가능성이 높지만, 실제로는 나이가 차서, 혹은 소문대로 [[김정일]]의 사주로 인해 죽었다고 보는 게 맞다.] 당시 군인들은 혹독한 폭염에 겹친 초긴장 정국 덕분에 잊지 못할 여름을 보냈다. 이 해의 압도적인 폭염 때문에 '''하나의 기준점'''이 됨으로써 이후의 폭염은 항상 1994년과 비교를 면치 못하고 있다. [[2016년 폭염]]에서 최고 기온은 갱신되었지만 폭염, 열대야, 가뭄이 지속된 일수는 아직도 1994년이 더 앞서고 그로인한 농작물 및 인명피해도 1994년의 기록이 아직도 더 앞선다. 또한 1994년은 1998년, 2015년, 2019년처럼 끈질기게 이상 고온을 보여 3월을 제외하고 모두 더웠다. 9~12월 고온도 다소 강했으나 그래도 늦더위는 없었다.[* 1993년에는 5월 말에 이른 더위가 찾아왔고 여름은 서늘했지만 처서가 지나고서 오히려 잠깐이지만 늦더위가 찾아왔고, 9월 초순까지 지속되었다. [[이상 저온|그러나, 10월에는?]]] 그리고 [[2018년 폭염]]이 모든 것을 갈아치웠다. 그리 혹서기의 체감온도는 2010년대 이후가 더 높다고 볼 수 있다. 거기에 중국발 [[미세먼지]]까지... * [[1995년]] 여름, [[미국]] [[시카고]]: 시카고에서 7월 11일부터 1주일 간 닥친 폭염으로 700명 이상이 사망하여 살인 폭염으로 불릴 정도였다. 고온에 높은 습도까지 동반되어 매우 견디기 어려울 정도였으며, 가장 기온이 높을 때 41℃까지 올랐으나, 폭염의 기세는 길지 않아 1주일만에 평년 기온으로 내려갔다. 짧은 기간 동안 폭염에 의한 사망자가 급증해 미국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으며, 사망자 중에는 냉방시설이 제대로 되지 않은 곳에 사는 저소득층 노인이 특히 많은 비중을 차지하여, 이를 계기로 미국에서도 폭염을 단순 이상기온이 아닌 자연재해로 규정하고 이로 인한 피해자, 최악의 경우인 사망자가 나오지 않도록 특히나 폭염에 취약한 노약자들의 피서와 열사병 방지를 위해 냉방시설을 점검하고 사회안전망을 재정비하게 되었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2877603|이 과정을 담은 폭염사회라는 책도 국내에 번역본]]이 나와있다. * [[1995년]] 여름, [[대한민국]], [[일본]]: 1995년 여름은 전년도와 달리 2010년 여름만큼은 아니지만 남쪽으로 갈 수록 더운 여름이었다. 대한민국에서는 전년도의 압도적인 기록과 중부지방의 평범한 여름으로 상대적으로 묻힌 여름이지만[* 이 점은 후술할 [[2019년]] 여름하고 비슷하다. 차이점은 2019년은 중부 지방, 특히 수도권 중심으로 폭염이 강했고, 1995년은 남부지방, 특히 대구, 경북 지역 중심으로 더욱 더위가 강했다는 점이다. 1995년은 중부 지방의 서울 등은 펑범했으며 2019년은 전라도는 평범했다.] 남부 지방에는 강한 [[폭염]]이 찾아와 [[대구광역시]]는 7월 29일에 '''36.6 °C'''를 기록했고 심지어 8월부터는 3~8일간 최고기온이 37 °C 이상을 연일 기록하였으며 9~10일에는 최고기온이 33 °C로 잠시 소강 상태를 보이다 급격하게 기온이 올라 14일에는 '''39.2 °C'''까지 올라갔다.[* 1994년 여름의 대구광역시 지역 최고 극값인 7월 21일 39.4 °C와 비교해도 얼마 차이 없다.] 이후 34~36 °C를 넘는 무더위가 8월 19일까지 이어지다가 20일부터 폭염이 물러갔다. [[광주광역시]]에서도 8월 14일 '''35.9 °C'''를 기록했다. 게다가 일본은 1995년의 8월이 1994년의 8월과 비슷하거나 '''오히려''' 더 더웠다. 도쿄의 8월 평균기온이 '''29.4℃'''로 2010년에 이어 아직까지 역대 2위이고, 당시에는 관측 사상 처음으로 '''29℃'''를 넘어선 기록이었다. 그리고 1995년 7월의 경우에는 1994년 7월 보다 낮았다. * [[1997년]] 여름, [[대한민국]]: 6월부터 폭염 수준의 기온을 보여 6월 평균기온이 23.4°C였고, 6월 15일에는 35°C를 찍었다.[* 관측 사상 가장 빠른 35℃이자 폭염경보급 폭염이다.] 7월 17일부터 기온이 오르더니 21일 이후에 폭염이 시작되었다. 7월 말에 36.1°C를 기록했다. 7월 서울 평균기온이 26.1도를 기록했다. 8월 초에는 7월보다는 약했지만 폭염이 있어서 34도까지 올랐다. 그리고 9월 초에는 강한 늦더위가 찾아왔다.[* 참고로, 원인이 2018년과 유사한데, 티벳 고기압이 늦게까지 물러나지 않았던 듯. 이말인 즉슨, 대륙 열적 고기압(티벳 고기압)이 물러나지 않을 경우 계속해서 폭염이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후 빨리 식어서 [[이상 저온]]으로 갔다.[* 서울 기온으로 보아 9월 초순에 강력한 늦더위가 찾아왔음에도 불구하고 월평균기온 20.2도를 보였던 것을 보면 이달 중하순에 매우 식었음을 알 수가 있다. 이후 2022년까지 9월에 이보다 낮은 평균기온이 나오지 않고 있으며 이 이상 저온은 10월까지 이어졌다.] 하지만 대구는 9월도 평년보다 높았다. * [[1998년]] 여름, [[대한민국]]: 본토에서는 여름에 잦은 폭우로 인해 폭염일수가 없는 곳도 있었지만, 제주도는 예외였다. 7월 초순부터 34.5도에 이르는 폭염이 찾아왔고, 7월 말에 다시 찾아온 폭염은 8월 중반까지 계속되어 8월 11일에 '''37.2도''', 15일에는 '''37.4도'''[* 역대 제주도 최고기온인 1942년 7월 25일 37.5도와 0.1도 차이나는 기록이다.]까지 치솟았다. 게다가 밤에도 최저 27~29도대의 살인적인 열대야까지 겹쳤으니... 이 직후 기온이 낮아짐으로써 폭염은 끝이났지만, 평균기온이 7월 27.4도 8월 28.2도로 전후 년도에 비해 높게 나타났다.[* 이유는 북태고가 한반도 본토에 머물던 장마전선에 밀려 본토에선 힘을 못 쓰고 제주도까지만 힘을 미쳤기 때문. 만약 북태고가 장마전선을 밀어냈으면 본토도 제주도처럼 어마어마한 폭염이 시달렸을 것이고, 우리가 기억하는 1998년 여름은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되었더라면 연평균 기온이 기록적으로 높아서 13.6~'''14°C'''를 찍어서 현대에도 깨지지 않는 역대 신기록을 달성했을지도 모른다.] 또한 본토의 여름도 최저기온은 높았으며 1998년은 4년 전처럼 저온이 없고 고온이 심각한 해로 극단적인 고온이 존재했다. 4월에는 5월같은 날씨를 보여서 4월 평균이 '''15.6°C'''를 기록했다.[* 저온이 없는 1994년 4월과 달리 1998년 4월은 월초에 저온이 있었는데도 이 정도면 1~3일 저온이 없을 시 16도 이상이 되었을 뻔했다.] 5월에는 중순부터 아예 대놓고 여름 날씨를 보여[* 5월 '''14일'''에 여름 시작. 2012년이 5월 '''2일'''로 경신하기 전까지 가장 빠른 기록이었다. 현재 기준으로도 [[2012년]], [[2019년]] 다음 세번째이다.(그 뒤로 2001년, 2003년, 2009년, 2013년~2018년, 2021년(5월 '''15일''' 여름 시작. 후술하겠지만 여름이 끝나는 시점도 '''10월 9일'''로 이 해와 상당히 유사했다.)~2023년 등.)] 5월 21일에 31.4°C로 전조 증상을 보이더니,[* 5월 온난화가 본격적으로 심해진 2000년대 부터의 현대에서 봐서는 별거 아닌거 같지만 5월 고온이 적었던 1990년대라는 것을 감안하면 엄청난 것이다. 실제로 전국은 '''5월'''에 연중 최고 기온을 달성한 곳이 많았으며, 전국 평균기온은 17.8°C로 당시에는 1위였다. 현대 치고도 0.5도정도 높은 편. 서울도 19.0°C로 당시 치고는 1.6도나 높은 기록이고 1991~2020 기준으로도 0.8도 높았다.] 그나마 하순까지 다소 높았던 5월에 비해 6월에 접어들면서 오히려 기온이 내려가서[* 5월 하순 20.7도, 6월 상순 18.6도. 참고로 5월 하순은 그 엄청난 폭염을 기록했던 2019년 5월보다도 높다.] 좀 나아지나 싶었으나, '''7월 7일'''에 최저기온이 '''25.5˚C'''를 기록해 관측 사상 2번째 7월 초순 [[열대야]]가 관측되었고, 장마가 일시적으로 멈춘 7월 28~30일에 최고 30~32˚C가 관측되었으며, 8월 2일에도 32.0˚C가 관측되었지만, 이 뒤로 장마가 끝을 모르고 계속되어 흐지부지 넘어가는 듯 했다. 게다가 서울에서 폭염일수가 없으니 시원한 인천은 아예 없을 것으로 생각될텐데 인천은 7월 28일에 33도를 넘어 폭염일수가 기록되어 서울이 폭염일수 없는 해인데 인천이 폭염일수를 기록한 유일한 해이다. 그러나 '''9월'''로 넘어가자 늦장 폭염이 찾아와서 7~8일에 30˚C를 넘었고, 9~13일에는 '''31~32˚C'''를 넘어서기도 했으며[* 특히 '''9월 12일'''에 '''32.8˚C'''로 그제서야 연중 가장 높은 최고기온을 기록. 한여름철인 7~8월에 32~33˚C는 그럭저럭 더운 날씨이지만, 일반적으로 폭염이 꺾이고 선선해져가는 9월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18일 29.0˚C, 19일 '''30.6˚C''', '''20일 31.9˚C'''로 하순 직전까지 한여름에 못 다한 폭염을 이제와서 만회하려는 듯 계속 기승을 부렸다. 최저기온도 8일~14일에 '''21~23˚C'''에 이르렀고, 20일에 또 '''21.9˚C'''를 기록. 그러나 하순 초에 비로 인해 열기가 쓸려가서 그제서야 늦장 폭염이 끝이 났다. 27일에 27.3˚C로 다시 슬슬 기미를 보였으나 또다시 비로 인해 그마저도 쓸려나갔다. 그러나 기온이 떨어지지 않아서 16도 아래로 내려가지 않았다.[* 후일담으로 10월은 ~~그놈의 열기가 집념이 참 강해서~~ 잦은 고온 현상으로 월평균 '''17.0˚C'''를 기록해 당시에 '''1위'''를 차지했으며, 기상학적 가을도 10월 중순으로 가장 늦게 시작되었다. 즉, 폭염일수는 없었으나 지긋지긋하게 여름이 이어져 5월 14일~10월 13일이 여름으로 무려 5달이나 되는 여름이었으며 여름이 가장 길었다. 11월에야 잠시 평년~조금 높은 수준을 회복했지만 중순 전반의 심한 고온으로 이 와중에도 11월 중순인데도 '''최저'''부터가 '''15.1˚C'''로 시기에 걸맞지 않게 열기가 얼마나 강했는지 알 수 있다. 물론 바로 급락해서 수능날에 반짝 한파가 왔다. 게다가 12월 들어 다시 고온으로......] 9월 평균은 '''23.0˚C'''로 10월과 함께 당시 월평균 1위를 갱신하게 된다. 또한 1998년 자체가 더운 해인게 봄까지는 슈퍼 엘니뇨로 고온이 심했고 5~6월에 중립으로 가더니 여름에 라니냐가 시작되었는데 이렇게 되는 과정에서 폭우가 잘 내리지만 라니냐로 인해 가을 늦더위도 심하고 연말까지 고온이 이어졌다. * [[1998년]] 여름 [[인도]]: 평소 더운 지역임에도 불구, 고온으로 인해 약 2500명 정도가 사망. 우리나라는 같은 년도에 손에 꼽히는 고온현상 기록을 보여주었으나, 정작 여름에는 잦은 폭우로 인해 폭염이 약한 편이었다. * [[1999년]] 여름, [[대한민국]]: 6월 말에 더위가 있어서 33도를 넘었고 평균기온도 23.1도를 기록했다. 7월에 반짝더위가 있었고 8월에 입추~처서기간에 더위가 있었다. 8월 17일에 서울의 최고기온이 35.4도를 기록했다. 대략 전 해인 1998년 6~8월의 평균을 1도 정도 올린게 1999년 여름이다. 심지어 9월도 22.0°C로 1975년과 같이 22도를 넘었고 역대 2위이다. 그러나 제주시는 폭염일수가 없는 마지막 해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