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폭염/사례 (문단 편집) ==== [[1950년대]] ==== 1950년대 초반 6.25 전쟁 시기까지는 일제 시대 후반~미군정 시절과 같이 폭염이 심했다. * [[1950년]] 여름, [[대한민국]]: 이미 5월부터 조짐이 보여서 5월 평균기온부터 '''17.5°C'''로 상당히 높았으며 '''5월''' 29~30일에 서울의 기온이 33.7°C, '''34.4°C'''[* '''3월 11일'''에 한낮에도 '''-5.2℃'''에 불과했던 것을 고려하면, 봄철 기간 중 '''81일''' 동안 '''39.6℃'''라는 미친 듯한 격차가 벌어졌다는 말이 된다. 참고로 2018년 1월 31일에 최고기온 0.0℃를 기록한 뒤 8월 1일에 39.6℃를 기록하며 39.6℃의 격차를 기록하기까지 '''183일'''이 걸렸다.]까지 오르며 이상 고온이 숨쉬듯이 당연한 2000년대~2023년 5월에도 깨지지 않은 5월 역대 최고기온을 기록했다. 여름에는 상당히 더웠다. [[6.25 전쟁|한창 전쟁중인]] 8월 중순 초에 태풍[* 영어 위키백과에 올라온 태풍 이름은 그저 '열대성 저기압 20(Tropical Depression Twenty)'이라고 한다. 대한 해협을 통해 [[거제]] 근처에 상륙하여 [[전라북도]]를 지나 '''[[서울]]''' 근처까지 내륙에서 태풍이 북상하였다. 그러나 기온이 좀 낮아졌을뿐 폭염과 열대야는 그대로 계속되었다.]이 지나간 뒤로도 처서를 얼마 남기지 않은 8월 19일에 '''36.9°C''' 를 기록하는등 늦게까지 더위의 기세가 무서웠다. 결국 서일본에 상륙한 또다른 태풍[* 영어 위키백과에서는 '강력한 열대성 폭풍 23(Severe Tropical Storm Twenty-three)'.]의 영향을 받고서야 폭염이 일단락되었다. 그러나 8월 30일과 31일에 다시 32도를 넘어갔는데, 9월 1일부터 서울 공식 관측 기록이 끊겨서 8월 31일 이후의 기록을 영영 알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9월 3일 일본 시코쿠 섬에 상륙한 태풍 재인(Jane)과 13일에 일본 규슈에 상륙한 케지아(Kezia) 때문에 이 늦더위도 얼마 못 갔을 것으로 추정. 9월 21일 재개된 비공식 서울 기록에서는 이미 기온이 안정화되었다고 한다.][* [[대구]]의 9월 기록을 보면 당시 서울의 기온이 어찌 흘러갔는지 간접적으로 알 수 있는데, 8월 31일에 더운 날씨가 9월로 넘어가며 계속되었고, 늦더위 자체도 '''9월 16일'''경이 되어서야 태풍 케지아의 영향으로 겨우 물러간 것으로 기록되었다. 이 기록을 바탕으로 짐작하건대, 서울의 8월 마지막의 폭염이 9월로 넘어가며 초반 며칠은 강력한(대략 '''32~34℃''') 폭염이 유지되었고, 태풍 재인의 영향으로 일시적으로 열기가 물러갔지만 9월 14일경에 또 태풍 케지아가 몰고온 열기 때문에 일시적으로 더웠다가 그 뒤로 늦더위가 가라앉았을 것으로 보인다. 앞 주석에서 언급한 미군의 비공식 서울 기상 관측이 늦더위까지 다 끝난 9월 21일에야 재개된 것도 이 영향일 가능성이 크다.] 서울 평균기온도 '''26.5°C'''로 그 [[2001년]], [[2007년]], [[2010년]], [[2020년]] 8월과 평균기온이 같다. 26.5도가 얼마나 높나면 그 대구광역시의 1981~2010 기온(26.4°C)보다도 조금 높다.[* 운이 좋게도 서울에서 여름까지는 기상관측을 했다. 또한 이 해에 기록이 남아 있는 [[블라디보스토크]]의 8월 평균기온이 '''22.7℃'''로 평년보다 3℃ 이상 높고 지금까지 깨지지 않고 있는 것을 보면 한반도 전역이 폭염에 시달렸을 것으로 보인다.][* 서울의 폭염일수 기록은 나오지 않았지만 최고기온 33도 이상인 날수를 세어보면 26일로 역대 5위이다.] * [[1951년]] 여름, [[대한민국]]: 대구 기준으로 이미 5월 초부터 나흘간 30도를 넘어감으로써 전조를 드러냈으며, 6월 하순부터 폭염이 심화되어 29일 '''35.6°C''', 30일에는 '''36.9°C'''를 기록하였다. 이때 서울.경기 일대에도 한순간에 폭염이 들이닥쳤는지, 당시 미군이 [[https://weatherspark.com/h/s/142033/1951/1/Historical-Weather-Summer-1951-in-Seoul-South-Korea#Figures-Temperature|비공식으로 관측했던 기록]]에 의하면 [[서울]][* 관측 장소는 [[강서구(서울특별시)|강서구]]에 있는 [[김포국제공항]]. 공식 관측이 이뤄지는 [[종로구]] [[송월동(종로구)|송월동]]과 15.1km 정도 떨어져 있다.]은 6월 30일 최고기온 '''34.6°C''', '''7월 1일''' {{{#red '''36.3°C'''}}}[* [[1917년]] [[7월 1일]]의 '''34.1℃'''를 2도 이상 제치는 수치이다.], 7월 2일 '''35.2°C'''[* [[1965년]] [[7월 2일]] '''35.2℃'''와 같다.]를 기록했다. 최저기온 역시 7월 2일에 '''24.6°C'''라는 기록을 세웠다. [[https://ko.weatherspark.com/h/d/149330/1951/6/30/%EB%8C%80%ED%95%9C%EB%AF%BC%EA%B5%AD-Suwon-Ab%EC%97%90%EC%84%9C-1951%EB%85%84-6%EC%9B%94-30%EC%9D%BC-%ED%86%A0%EC%9A%94%EC%9D%BC%EC%9D%98-%EA%B8%B0%EB%A1%9D%EC%A0%81-%EB%82%A0%EC%94%A8|수원]] 역시 6월 30일 '''35.7°C'''[* 비공식이라지만 지금까지 수원에서 기록한 6월 하순 34.0°C(2020년 6월 22일)의 기록을 한참 뛰어넘는 수치이다.], '''7월 1일''' {{{#red '''36.3°C'''}}}, 7월 2일 33.5°C를 기록했다.[* 한국 전쟁으로 인해 공식적으로 관측할 수 없던 사이에 6월 하순(수원 한정)~7월 초순(서울, 수원) 부문에서 엄청난 기록을 세운 셈이다. (다만 수원은 1950년대에는 공식 관측이 없었다.) 정말로 아쉬움을 금하기 힘든 광경이다.] [[https://ko.weatherspark.com/h/d/149319/1951/6/30/%EB%8C%80%ED%95%9C%EB%AF%BC%EA%B5%AD-Pyongtaek-Ab%EC%97%90%EC%84%9C-1951%EB%85%84-6%EC%9B%94-30%EC%9D%BC-%ED%86%A0%EC%9A%94%EC%9D%BC%EC%9D%98-%EA%B8%B0%EB%A1%9D%EC%A0%81-%EB%82%A0%EC%94%A8|평택]]도 기록이 남아 있어서, 6월 30일 {{{#red '''36.3°C'''}}}--?!--, 7월 1일 {{{#red '''37.4°C'''}}}, 7월 2일 33.5°C를 기록했다. 대구와 거리가 먼 서울.경기도 이랬다면 중간 지역인 충청도도 상상 이상으로 더웠을 것으로 추정. 그 뒤, 장마철이 끝나고 7월 하순부터 다시 폭염이 시작되어 8월 말까지 그대로 이어져 8월 17일에 '''38.2°C'''를 기록했다. 그 탓에 대구의 8월 평균기온이 '''27.7°C'''[* 이것이 참 놀라운 기록인데, 다른 것도 아니고 그 '''2018년 8월'''의 '''27.7°C'''와 같다.]로 기록되었다. 대구 기준 8월 한정으로 1951년만큼 평균기온이 높은 해가 없었으므로 당시에는 1위로 랭크되었다. 그 외 광주[* [[8월 20일]] 최저기온이 '''29.8°C'''로 [[초열대야]]에 가까운 기록을 세웠다. 사실상 관측 이래로 강릉(1942년 7월 26일)에 이어 전국에서 두번째로 더웠던 날인 셈.]와 포항 '''27.5°C''', 목포와 제주 '''27.1°C''', 부산 '''26.8°C''', 울산 '''27.2°C''' 등, 전주 '''27.4°C''' 등, 유력한 남부 지역들 전부가 폭염이 관측되었다. 안타깝게도 서울, 경기, 강원, 충청 지역에선 [[한국 전쟁]]의 여파로 기상관측이 시행되지 않았지만, 서울경기는 비공식으로나마 기록으로 남아 있다. 이에 따르면 [[https://ko.weatherspark.com/h/m/149310/1951/8/1951%EB%85%84-8%EC%9B%94%EC%9D%98-%EB%8C%80%ED%95%9C%EB%AF%BC%EA%B5%AD-%EA%B9%80%ED%8F%AC%EA%B5%AD%EC%A0%9C%EA%B3%B5%ED%95%AD%EC%97%90%EC%84%9C-%EA%B8%B0%EB%A1%9D%EC%A0%81%EB%82%A0%EC%94%A8|1951년 8월의 서울]]은 '''22일'''[* 최고 '''35.2°C''', 최저 '''27.4°C'''. 일평균기온은 '''30.0°C'''이다. 최고기온은 7월 1일이 가장 높았지만, 실질적으로 연중 가장 더운 날은 이날로 보아야 한다. [[태풍]] [[마지(태풍)|마지]]의 북상으로 열기가 밀려나는 과정에서 22일에 갑자기 더워졌다가 이후로 기온이 떨어진 것으로 보인다.]까지도 상당히 더웠으며, [[열대야]]를 기록하기도 했다. 결국 월평균기온이 '''27.1°C'''로 계산되었다. 그래도 [[http://www.pogodaiklimat.ru/history/47108.htm|이 사이트]]에서는 서울의 7월 평균 25.2°C, 8월 평균 26.8°C라고 하는데, 이 사이트는 이상하게 1982년까지는 평균기온이 0.1~0.4도씩 오차가 있으므로 평균기온이 27도를 넘었을 가능성도 있다. 7월은 조금 높은 수준이나 8월은 상당히 더웠을 것으로 추측된다.[* 서울 기준 1951년 열대야 일수가 '''0일'''이라 되어 있는데, 이는 1951년 당시의 데이터 자체가 말소되어 확인할 수 없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비슷하게 강릉 역시 지역 특성과 51년 여름의 습한 더위를 볼때 필시 열대야가 발생했을 것임에도, 데이터 자체가 말소되어 열대야 일수가 0일이다. 애초에 습한 더위가 8월 22일경까지 남한 전지역을 덮고 있었고, 광주는 아예 초열대야에 가까운 기온을 보였는데, 서울, 강릉만 열대야가 없다는 게 전혀 말이 되지 않는다.][* 1980년대 초반까지의 평균기온에서 오차가 있긴 하나, 의외로 이 오류가 아주 일관적이다. 이 사이트의 1980년대 초반까지의 연도들의 7~8월 평균기온이 모두 한국 기상청 사이트보다 0.1~0.4도 낮게 기록되어 있다. 그래서 이 사이트에 나온 값은 0.1~0.4도 올려서 보는 게 정확하다. 이를 따른다면 1951년 7월 서울의 평균기온은 25.3~25.6°C이며, 특히 8월은 27°C 전후인 '''26.9~27.2°C'''로 2006년, 2012년, 2019년 8월과 비슷하다.] 남아있는 기록으로 볼때 이 여름은 한여름철인 7~8월에 매우 습했던 것으로 보인다. 서울만 해도 7월에 장마가 왔을 때는 습기 때문에 최저기온이 도저히 하강할 기미를 보이지 않았으며, 8월에 폭염이 찾아왔을 때는 비록 최고기온에선 극단적인 극값은 없었으나, 최저기온이 계속 25~26도를 기록했다가 22일에 27.4도를 기록했었다. 게다가 다른 지역의 기록을 볼때 이 습한 장마와 더위는 '''남한 전지역 공통'''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 [[1952년]] 여름, [[대한민국]]: 전 해에 이어 이 해에도 폭염이 찾아왔다. 이번에도 대구 기준 7월 하순부터 본격적인 폭염이 시작되어 8월 12일에 '''38.2°C'''가 기록되었으나, 이번엔 8월 초순에 최저기온이 18°C까지 낮아지는 등 전년만큼 폭염이 살짝 힘을 쓰지 못 하는 모양새를 보여주었다. 그 탓에 8월 평균기온 '''25.7°C'''로 전년 8월보다 2°C 낮게 기록되었으며, 다른 지역도 1951년 8월보다 낮은 값을 기록하였다. 당시 기상관측이 시행되던 지역 중 제주시가 '''26.1°C'''로 1위를 했을 정도이다. 이번엔 강릉과 인천에서 다시 기상관측을 시작하였는데, 중부지방에선 폭염이 비교적 약하게 기승을 부려 강릉[* 아쉽게도 8월이 지나간 1951년 '''9월'''부터 관측이 시작되었다.] 24.3°C, 인천[* 1951년 10월부터 다시 관측이 시작되었다.] 23.9°C 등으로 낮게 기록되었다. [[http://www.pogodaiklimat.ru/history/47108.htm|이 사이트]]에 의하면 서울의 7월 평균기온 25.7°C, 8월 평균기온은 25.2°C라고 한다. 그러나 51년 폭염에 게재된 미국 사이트에 의한 실제에 가까운 평균으로는 7월이 26.1˚C, 8월이 25.4˚C이다.[* 1982년까지 0.2°C 차이를 감안하면 7월 25.9°C, 8월 25.4°C로 이 값과 거의 같다.] * [[1953년]] 여름, [[대한민국]]: 1949년~1952년 여름에 이어 폭염이 찾아왔다. 이번엔 대구 기준 7월 초순부터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되었고, --휴전 기념으로-- 잠시 내려갔다가 올라가 28일에 36.1°C를 기록한 뒤 다시 내려갔다. 8월 8일부터 다시 폭염이 시작되어 보름 가까이 폭염이 기승을 부렸으며, 22일과 23일에 '''36.9°C'''를 기록하였다. 8월 평균기온 '''26.2°C'''이며, 7월은 '''25.7°C'''로 52년 8월과 같은 평균기온을 기록하였다. 이번에도 제주가 '''27.2°C'''를 기록해 관측지역 중 1위를 기록했으며, 1952년 10월부터 재관측이 시작된 추풍령이 8월 19일에 '''35.5°C'''를 기록하긴 했지만, 평균기온은 그렇게 높지 않았다. [[http://www.pogodaiklimat.ru/history/47108.htm|이 사이트]]에 의하면 서울의 7월 평균기온 25.8°C, 8월 평균기온은 26.2°C라고 한다. 이것이 맞다면 대략 대구와 비슷한 수치인데, 상술된 미국 사이트에서는 7월이 25.4˚C, 8월이 25.9˚C라고 한다. 그리고 1939년[* 1937년 또는 1942년부터라 보는 시각도 있다.]부터 이어진 20세기 초중반 폭염의 절정기의 마지막 시기였다. * [[1955년]] 여름, [[대한민국]]: 6월 13일, 16일, 22일에 33℃까지 오르며 이른 폭염을 알렸으나, 그 뒤 7월 15일부터 습한 북태평양 고기압의 영향에 들어서 애매하게 덥고 습한 날씨가 계속되었다. 그러다 8월 초순 말부터 다시 33℃가 기록되어 본격적인 폭염이 시작되었는데, 특이하게도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 약해졌다가 강해지길 몇번이나 반복한 끝에 27일에 '''35.0℃'''까지 오르며 1945년 8월 이후 10년 만에 8월 하순에 35℃를 다시 기록하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이것이 1955년 여름이 폭염 사례에 등재된 이유이기도 하다. 8월 하순경 서울이 35℃까지 오르는 경우는 그렇게 많지 않기 때문.] 다음날에 기온이 낮아져 실질적인 폭염은 27일에서 끝났으며, 9월 6일과 7일에 31~32℃ 오른 것을 마지막으로 55년 여름이 끝났다. * [[1956년]] 여름, [[대한민국]]: 1년이 저온으로 점철된 1956년이었지만, 7말8초의 더위와 9월 초의 늦더위는 여름이라 부를 수 있는 수준이었다. 7월 하순부터 본격적으로 북태고 영향권에 들었고, 29일부터 33~34℃가 넘는 폭염이 시작되었으며, [[8월 2일]] 최고 '''35.0℃''', 최저 '''26.4℃''', 일평균 '''30.3℃'''[* 어지간히 독한 더위가 아닌 이상 한여름에도 일평균 26~29℃를 찍는 일제~전란 직후 여름 치고 꽤 높은 일평균이다. 최저기온도 1919년 8월에 맞먹는 열대야를 기록. 기온 격차를 보아 습기 때문에 더운 공기가 빠져나가지 못 한듯 싶다.]로 추산되었다. 그뒤 8월 16일까지 여름 날씨가 지속되었고 그 이후 찬공기 남하로 18일 최저 '''15.5℃'''까지 떨어지고 최고도 30℃ 이하로 떨어진 날씨가 한동한 이어졌다. 이후 9월 초에 뒤늦은 더위가 찾아와서 2~3일에 30℃를 넘겼고, 특히 5일 최저 '''23.9℃'''에 일평균 '''27.0℃(!)'''를 기록. 이후에도 늦더위가 이어지고 급기야 23일에 다시 최고 '''29.6℃'''에 일평균 '''22.5℃'''에 이르는 늦더위가 찾아왔으나 직후 더위가 쓸려나가고 완연한 가을 날씨가 찾아왔다. 그러나 9월 역시 저온인 날이 더 많아서 월평균은 낮은 편이었으며, 결국 10월부터는 다시 저온으로 흐름이 바뀌었다. * [[1958년]] 여름, [[대한민국]]: 7~8월에는 큰 폭염은 없었으나 6월에 비정상적인 폭염이 찾아왔다. 서울은 6월 24일 '''37.2℃'''를 기록하여 현재까지도 6월 역대 최고기온으로 남아있다.[* 이후 [[1958년]] [[6월 25일]]부터 '''[[1994년]]''' [[7월 22일]]까지, 햇수로는 36년 1개월, 일수로는 '''13177일''' 동안 서울에 37℃ 이상의 극심한 폭염이 찾아온 날이 존재하지 않는다. 1994년 7월 23일에 38.2℃로 한번에 37℃를 넘어 38℃까지 올라 다시 기록되었다. --복귀식 한번 화려하다--] 그로 인해 평균기온도 '''22.3°C'''로 1981~2010년보다도 높게 관측되었다. 폭염의 고장인 [[대구광역시]]는 한숱 더 떠서 같은 날 '''38℃'''까지 올라가며 '''전국''' 6월 역대 최고기온을 경신하고 만다. [[광주광역시]]에서도 '''36.7℃'''의 기온이 관측되어 6월 최고기온 역대 1위이다. 4월까지는 [[이상 저온]] 수준으로 강한 꽃샘추위가 있었으나 5월부터 갑자기 기온이 큰 폭으로 오르면서 이와 같은 유래없는 6월 폭염이 기록되었다. 정작 7~8월에는 이상 저온으로 서울 최고기온 극값이 33~34℃ 선에서 그쳤다. * [[1959년]] 여름, [[대한민국]]: 저번 해와 다르게 6~7월은 정말 더위가 잠잠했으며, 7월 28일에 '''33.6°C'''를 기록해 비로소 더위가 시작되었다. 8월 초에 본격적인 더위가 집중되었는데, 8월 3일 최고기온 '''36.2°C'''로 [[1950년]] [[8월 19일]]의 '''36.9°C''' 이후로 9년 만에 36°C를 넘어섰다. 4일~7일에 34~35°C를 기록한 뒤 10일에 더위가 다시 잠잠해졌으며, 18~19일과 30일에 다시 33°C를 넘어서기도 했다. 9월 14일에 잠깐 늦더위가 찾아와 30.2°C를 기록한 것을 끝으로 더위가 완전히 사라졌다. 이렇게 평범했던 여름을 등재할만한 사유가 뭔지 의아할 법 한데, 그 이유는 이 해 [[8월 3일]]에 36.2°C를 기록한 이후로 한여름 기간에 다시 36°C를 넘은 시기가 [[1978년]] [[7월 28일]], 즉 '''19년이나 지나서야''' 다시 기록되었기 때문.[* 1960년~1977년 여름은 툭하면 36°C 폭염은 제집 드나들듯 기록하던 1930년대 후반~1950년대 초반과 달리 죄다 33~35°C가 한계일 정도로 극심한 폭염이 없었다.][* 그리고 1978년 여름 이후 다시 36°C를 넘은 해가 [[서울 올림픽]]이 열리기 직전이었던 [[1988년]]. 그리고 다시 36°C를 [[1994년 폭염|넘긴 해가]]......] 한편 당시 [[경상남도]] [[부산시]]에선 다시 더위가 시작되던 [[7월 17일]]에 갑작스런 [[소나기]]로 인해 [[부산 공설운동장 압사 사고|압사 사고]]가 발생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