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폭스바겐 (문단 편집) === 포르쉐와의 미운 정 고운 정 === [[포르쉐]]와는 창업주가 같은 [[형제]] [[기업]]이다. 포르쉐 회장인 볼프강이 페르디난트 창업주의 친손자고, 폭스바겐의 회장과 감독이사회 의장을 역임한 페르디난트 피에히가 외손자다. 지금도 각 기업의 회장들은 서로 사촌 지간이면서 라이벌이다. 다시 말해 원래는 적군이다. 자세한 내용은 [[http://aboutcar.co.kr/1943|링크]] 참고. 포르쉐와 폭스바겐이 협력한 사례는 적지는 않지만, 딱히 대박이라고 할 만한 물건은 많지는 않다. 대표적으로 포르쉐 914와 924에 사용한 4기통 버전은 엔진을 폭스바겐에서 제조했다. [[폭스바겐 투아렉]]과 [[포르쉐 카이엔]]은 대박난 작품에 속하고, 여기에 [[아우디 Q7]]까지 세 차량은 플랫폼(PL 시리즈)이 동일하다. 폭스바겐의 상용 밴인 [[폭스바겐 트랜스포터]]의 차체를 갖고 와서 엔진을 세로 배치가 가능하게 개조한 것 이다. 포르쉐 카이엔은 포르쉐가 개발한 자동차 중 '[[신의 한 수]]'였는데, 공동 개발 과정에서 개발비를 크게 절감한 포르쉐 카이엔이 대박을 치면서 박스터와 더불어 [[포르쉐]] 매출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효자 상품으로 등극했기 때문이었다. [[21세기]]에 들어서는 두 기업이 서로를 인수하려고 신경전을 벌였다. 선제공격은 [[포르쉐]]의 CEO였던 벤델린 비데킹이 주도했다. 그 결과 포르쉐가 빚을 내서 폭스바겐 지분의 51%까지 차지하는 상황까지 갔다. 자동차를 생산하는 포르쉐 AG의 지주회사인 포르쉐 SE가 폭스바겐 그룹 지주회사인 폭스바겐 AG의 주식을 매입한 것이다. 사실상 [[마름]]이자 [[바지사장]]에 불과했던 비데킹이 사운을 건 인수합병을 독단적으로 했을 리 없기 때문에 당시 포르쉐 회장이었던 볼프강 포르쉐가 사장인 비데킹의 배후에서 외사촌인 페르디난트 피에히 당시 폭스바겐 감독이사회 의장과 붙은 걸로 볼 수 있다. 그런데 곧바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서브프라임 모기지 크리]]를 맞아 돈줄이 급해진 포르쉐는 구제 금융을 요청했지만, 생산 설비나 기술 개발 투자가 아닌 100% 돈지랄로 망하게 생긴 까닭에 [[독일]] 정부는 당연히 거절했다. 결국 포르쉐 SE가 포르쉐 AG의 주식 절반을 폭스바겐 AG에게 넘겼다. 폭스바겐 AG는 포르쉐 AG의 주식 나머지를 모두 인수하는 과정에서 80억 유로(당시 환율 적용 시 한화 12조 원)를 포르쉐 SE에게 지불했다. 결국 2009년 7월 거꾸로 폭스바겐이 [[포르쉐]]를 인수한다. 인수 합병의 결과로 '포르쉐 SE → 폭스바겐 AG → 포르쉐 AG&기존 폭스바겐의 자회사들'로 이어지는 지배 구조가 성립됐고, 결국, '최후의 승자'는 '포르쉐 창업주 가문'인 '포르쉐-피에히 가문'이 되면서 [[페르디난트 포르셰]] 공학 박사가 세운 두 회사는 포르셰-피에히 가문의 것이 됐다. 결국 [[포르쉐]]의 폭스바겐 인수 실패의 책임으로 벤델린 비데킹 CEO는 사퇴했고, 페르디난트의 외손자인 볼프강 포르셰가 포르쉐의 후임 CEO를 맡았다. 헌데 2015년 [[디젤게이트]]로 마틴 빈터콘 CEO가 사퇴하면서 포르쉐 CEO인 마티아스 뮐러가 VW그룹 CEO로 승격했으니 어째 지위가 다시 역전된 것으로도 볼 수 있겠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