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포항고등학교 (문단 편집) == 역사 == || [[파일:포항고 구 교사 1.jpg|width=100%]] || [[파일:포항고 구 교사 2.jpg|width=100%]] || || ▲첫 교사였던 대신동 교사. 현재 선린한방병원이 있는 위치이다. || ▲대신동 교사 시절. 사진 아래쪽이 학교. || 1943년 포항고등학교의 전신으로 볼 수 있는 포항공립중학교가 개교했다. 개교 당시에는 4년제 였다가, 해방 후 6년제로 변경되었다. 포항공립중학교 졸업생은 졸업횟수는 부여받지 못했으나, 행사 등을 할 때 포항고 졸업 동문으로 인정받는다. 이후 1951년 학제 변경에 따라 포항공립중학교는 포항중학교 (3년제)와 포항고등학교 (3년제)로 분리되고, 1951년 8월 13일 6학급으로 포항고등학교가 정식으로 인가받는다. 개교 당시에는 두호동 우역검사소를 가교사로 사용했다. 1952년 제1회 졸업생을 배출하였고, 정식 포항고등학교 첫 입학생은 1954년 4회 졸업생이다. 학교 부지를 찾던 중에 1954년 포항 항도조선소 사장이었던 흥해 출신 김춘생(1917-2000)이 소유한 과수원 땅 3천여평을 기부받아서, 두호동 가교사에서 대신동 교사로 이전했다.[* 연세 많은 어르신들이 떠올리는 포항고의 첫 모습은 대신동 시절 모습일 것이다. ] 이후, 1984년 現 학산동 신축교사로 이전한다. 대신동 교사는 포항고가 이전한 후, 항도여중이 사용하였다. 2000년 항도여중이 죽도동으로 이전하면서 대신동 교사는 방치되어 있다가 선린병원에서 부지를 매입해 선린한방병원을 신축하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포항고 학생들도 학도의용군으로 참전하였다. 특히 포항지구 전투[* 이를 배경으로 한 영화가 바로 [[포화속으로]]]에서 많은 학도의용군들이 전사하였다. 이를 기리기 위해 학교 안에 호국학도충의탑이 세워져 있으며, 6월이 되면 추념식을 거행한다. 1960년 3월 8일, 대구에서 일어난 [[2.28 학생민주의거]]의 영향을 받아 포항고 학생 2백여명도 포항 시가지에서 자유당 정권 규탄과 학원 자유화 등을 외치며 시위에 나섰다.[* 1960.04.25 동아일보 석간 참조] 이후 일어난 [[4.19 혁명]]에도 많은 포항고 학생들이 참가하여 부정선거와 자유당 정권을 규탄하는 시위를 벌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