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포증 (문단 편집) == [[법조인]]으로서 == 포증이 다른 지방관들과 달랐던 것은 억울한 일을 당한 백성들에게 관청 앞으로 직접 나와 북을 치도록 한 점. 얼핏 [[조선]]의 [[신문고]] 제도와 비슷하다.[* 북 옆에 관원을 배치하여 그 호소를 듣고 소장을 작성하게 했다고 하는 걸 보면, 글을 모르는 계층을 위한 배려도 포함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포증의 수사와 양형은 하도 엄격해 권문세족조차 그가 두려워 감히 [[법]]을 어기지 못했다고 한다. 당시 서민들 사이에선 '''"천하에 청탁이 통하지 않는 건 [[염라대왕|염마왕]]과 포대인뿐."'''이라는 노래가 유행했다고 하니 그의 명성을 짐작할 수 있다. 중국 설화에 따르면 죽어서 저승에 갔을 때 생전에 쌓은 공덕으로 극락에서 좀 쉬나 했더니, 포증을 눈여겨봤던 '''[[염라대왕]]이 자기 자리를 떠넘기고 은퇴해버리는 바람에 [[망했어요|강제로 염라대왕이 되어 오늘도 머리를 쥐어뜯으며 저승세계의 송사를 처리하고 있다]]'''고 전해진다. 중국에서는 공정하지 못한 현실에 살다가 사후에서만은 공정한 판결을 받고 싶어하는 마음이 명판관을 염라대왕으로 추앙하는 신앙이 있으며, 그의 업적을 추앙하는 사당도 존재한다고 한다. 평생을 강직한 공직자로 살아왔던 인물인 만큼 죽을 때 그의 [[유언]]은 이랬다. >'''"내 자손들이 벼슬을 하여 [[부정부패]]를 저지르면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하게 하라. 그리고 그들이 죽은 이후에도 우리 포씨 집안의 선산에 묘를 쓰지 못하도록 하라!"''' 자기가 죽고 향을 피울 때 목향을 사용하면 후에 자신이 돌아올 것이라고 했지만, 후손 및 일가친척들이 전부 이런 위대하신 분의 장례를 그런 싸구려 향으로 할 수는 없다면서 유언을 어기고 고급향을 사용한 결과 환생길이 막혀서(...) 저승에서 염라대왕으로 말뚝 박았다는 설화도 있다. 중국민간설화는 [[불교]]와 [[도교]]가 뒤섞였다. 불교에선 명부에 진광왕, 송제왕, 평등왕, 도시왕, 태산왕, 평등왕, 염마왕, 변성왕 등등 이른바 [[시왕]](十王)이 있다고 간주한다. 그중에 염마왕이 염라대왕으로, 염마왕 개인을 가리킬 때도 있고 시왕 전체를 대표하는 이름으로 쓰일 때도 있다. 또한 도교의 세계관은 중국 관료제도를 모방했는데, 염라대왕은 특정인물이 아닌 관직명으로 본다. 따라서 염라대왕 임무를 맡은 이는 세월에 따라서 바뀐다. 이런 맥락에서 나온 이야기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