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포스코 (문단 편집) === 광양제철소 건설 === [include(틀:전두환 정부)] [youtube(m0A2zndCFIQ)] 1987년 광양제철소 1기 준공식 [youtube(L6iO4TS2PT4)] 1988년 광양제철소 2기 준공 (박태준 사장과 노태우 대통령) [youtube(xVvjvcFkK78)] 1990년 광양제철소 3기 준공 [youtube(bXvdGejjejc)] 1992년 광양제철소 4기 준공 '''[[현대그룹]]''' 계열사였던 [[현대제철|인천제철]]과의[* 현대와 포철이 제2제철소 사업권 경쟁을 벌이던 시절은 현대자동차, 현대중공업, 현대해상, 현대상선 등 [[범현대가]] 기업이 현대그룹이라는 큰 울타리 안에 한데 모여 있었다. 현재의 형태처럼 각 업종별 기업이 각각 분리된 것은 [[정주영]] 창업주의 타계 직전인 2000년부터의 일이다. 아울러 현대그룹의 철강 계열사가 오늘날의 현대제철로 이름을 바꾼 것은 [[현대자동차그룹]] 출범 이후인 2006년의 일이다.] 치열한 경합 끝에 포항제철 측이 제2제철소 사업권을 갖게 되었고[* 현대는 이후 당진제철소를 보유한 한보철강을 인수한 뒤 기존의 INI스틸(인천제철의 후신)과 합병한 후 통합 철강회사인 현대제철을 출범시킴으로써 일관제철소를 갖게 된다.], 지리적인 영향을 다각도로 종합해서 [[전두환]] 정권 때 [[광양시|광양]]만에 있는 금호도가 제2제철소 부지로 결정되었다. 다른 후보지[* 추가적으로 삼천포도 있었다.]인 [[울진군|울진]]은 너무 북쪽에 있어 안보 위협이 문제가 되고, [[서산시]]·[[태안군]]의 아산만은 수심이 얕고 조수 간만의 차가 크다는 문제점이 있었다. 반면 광양만은 수심이 깊고 조수간만의 차도 그다지 크지 않았을 뿐더러 [[전라도]]에 있다는 점에서 균형발전에도 들어맞아 높은 점수를 받았다. 실제로는 [[http://news.joins.com/article/386795|광양만이 최적의 입지인데도]] [[http://news.joins.com/article/387397|아산으로 하라는 압박이 있었다고 한다.]] 부지가 광양만으로 정해진 이후에도 포철 고위직들이 난색을 표하면서 광양만에서도 [[하동군]]에 짓자고 하였으나, [[박태준]] 회장의 직권으로 광양으로 결정했고 [[전두환]]이 이를 승인했다. 이러한 이야기들이 보여주듯이 [[박태준]]이라는 친 호남적 사고를 갖춘 유력자가 없었다면, 광양제철소는 세워지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 부지선정을 두고, 포항제철소 설립시부터 포스코 측과 합작관계를 맺어 온 일본 기업인 도멘(동양면화: 원래 미쓰이물산의 레이온 사업부 였다가 훗날 종합상사로 독립) 서울지사장이었던 모모세 타다시는 자서전에서 "하동 쪽으로 붙여 지으려는 것에 대해 내가 반대 의견을 낸 적 있다"라고 써놓기도 했다.] 부지조성작업을 거쳐 [[1985년]] 시작된 광양제철소 건설은 [[1992년]] 4기 공사가 완결됨으로써 포스코는 조강생산 2,080만 톤(연간)을 달성하게 되었다. [[파일:external/monthly.chosun.com/0906_034_4.jpg]] 제철소 부지가 굉장히 크다. 대지 넓이가 무려 '''2,080만㎡'''(630만평)[* 서울 [[도봉구]]의 면적과 비슷하며, 광양 도심 보다 더 크다.]로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제철소'''[* 광양제철소 이전까지 해당 타이틀을 가지고 있었던 곳은 [[영국]] [[랭커셔]]에 위치한 Barrow-Hematite 제철소로, 이곳은 [[산업혁명]] 시절인 19세기부터 20세기까지 무려 100년 넘게 세계 최대 타이틀을 가지고 있었던 곳이다.]이며 [[대한민국]] 기업이 운영하고 있는 생산공장 중 단일부지로는 제일 넓다.[* [[포항]] [[포스코]] 부지 넓이는 약 1,200만㎡, [[울산]] [[현대중공업]] 공장 넓이는 약 500만㎡다.] 1992년 제철소가 세워진 이후에도 잦은 간척 사업이 이뤄지면서 넓이가 더 넓어졌다. [[여의도]] 면적의 7배에 달하며 [[기초자치단체]]인 [[서울]] [[성동구]]의 경우 면적이 1,684만㎡ 정도인 것을 볼 때 일개 제철소 규모가 어마어마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제철소 견학을 가 보면 공장 안내를 해주는 간부직원이 "포항제철소는 주조부터 압연까지의 공정이 U자 형태로 돌아나오게 배치되어 있지만, 광양제철소는 그보다 뒤에 지은지라 신기술이 적용되었고 부지도 훨씬 넓어서 용광로 주물부터 압연까지 전체 공정이 일자형으로 설계되어 있다"고 설명해주는 것을 들을 수 있다. 이 U자-I자 형태는 의외로 포항제철소와 광양제철소 역사에서 중요한 지점인데, 일자형 설계를 통한 일관제철 공정만으로도 약 8%의 손실이 줄어든다. 제조업에서 8% 로스면 얼마 아닐 거라 생각할 수 있지만 제철 같은 대형산업에서 8%면 엄청난 금액이 된다.[* 1억 어치의 핫코일을 팔 때 거의 800만 달러의 로스가 일어나는 것이다.] 즉 포철 공장은 U자 형태라 쇳물과 슬래브를 일일이 옮겨야 하지만 I자 형태에서는 그냥 일관공정으로 쭉 밀 수 있다는 이야기다. [* 참고로 이 포철의 U자 설계는 당시 협업했던 일부 일본 쪽 기업들이 강력하게 주장해서 그렇게 된 거란 증언들이 있다. 이게 뭐가 문제냐면 이 일본 종합상사들은 협력사 주제에 포철이 나중에 일본 제철기업들의 라이벌이 될 것임을 미리 인지하고 '''확장성을 애초부터 차단하는 설계'''를 그 당시부터 심어버린 것이다. 심지어 포철은 저 U자형 설계를 위해 매립한 송도 연안을 도로 파내는 짓거리까지 해야 했는데 이는 지금도 위성지도에 그대로 나온다. 당시에는 한국이 정부도 포철도 진짜 맨주먹만으로 맨땅에 헤딩하느라 저런 꼼꼼하고 치밀한 태클을 몰랐던 것뿐이다.] 그리고 포철은 포항제철소 준공 15년 후 광양에 제2제철소를 일관공정으로 마련하게 되어, 더욱 진일보한 생산거점을 갖추게 되었다. 제철소 뒤에 있는 금호동 사원 주택단지까지 합치면 조그마한 [[신도시]]라 불릴 정도며 실제 제철소와 [[광양]] 시내는 [[교량]]으로 연결된 또 다른 도시처럼 구성되어 있다. 여담으로 이 광양제철소가 들어선 광양만 지역은 본래 어업, 특히 김 양식이 대단히 발달한 지역이었다. 마침 김(金)과 철을 뜻하는 한자가 같아서 호사가들이 이에 대한 말을 많이 하는 편. 광양제철소 한켠에 이를 기념하는 비석이 남아 있으며 현지 어민들은 이주 보상금 및 제철소 취업의 우선권 등의 보상을 받고 광영동 등에 이주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