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평화선 (문단 편집) == 발단 == 1945년 8월, [[연합군]]은 일본의 항복을 받고 [[도쿄]]에 [[GHQ|연합군 최고사령부]]를 설치하였다. 남한이 단독정부 수립 이전까지 미군정의 통치 아래 놓인 것처럼 일본 역시 이를 기점으로 [[미군정]]의 통치 아래 놓였다. 태평양전쟁에서 일본과 싸운 주체는 바로 [[미국]]이었고, [[미군]]이 주력이 되어 항복을 받아냈으니 승전국 미국으로서는 당연한 결과였다. 일본 정부는 어디까지나 연합군사령부의 보조기관이었다.[* 한때 대한민국의 신군부 시절을 다룬 드라마 [[제5공화국(드라마)|제5공화국]]이 일본에서 노년층을 상대로 컬트적 인기를 끌었다. 그들이 젊은 시절 경험한 [[도조 히데키]]의 군국주의 정부와, 뒤이은 미군정을 연상하며 군사정권의 암울한 분위기에 쉽게 몰입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일본군은 만주 전쟁을 통해 내려온 [[소련]]에도 투항했으나, 사전에 미국 대통령 트루먼과 소련 서기장 스탈린의 합의 때문에 '일본 주요 4개 섬은 미국의 관할이다' 라는 결정에 따라 일본 본토는 조선이나 독일과 달리 몽땅 미국 지배하에 놓였다. 연합군사령부는 [[연합군 최고사령관 각서 677호]]를 발령하며, 전후 일본의 행정구역에서 독도를 포함한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를 분리시켰다. 여기다 더해 연합군 최고사령관 각서 1033호에 따라 아예 일본 선박의 독도 인근 해역의 출입을 금지했다. 더군다나 1948년 8월 15일, 한반도에서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며 국제적 승인을 얻었다. 즉,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으로 일본의 주권이 회복될 때까지, 일본은 그때까지도 미군정의 통치 하에 있었다. 일본은 메이지 유신이 진행 중이었던 1876년 이래 1900년까지만 해도 독도를 대한제국 관할로 인정했지만 [[러일전쟁]] 개전 때 [[독도]]를 불법 강탈했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한국이 다시 독도를 차지했음에도 기껏해야 [[주권]] 없는 행정부만으로 [[더글러스 맥아더|맥아더 장군]]의 통치 아래에서 행정처리를 집행하는 상황에 놓여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기껏해야 독도가 그려진 우표를 붙여 들어오는 대한민국발 우편물에 독도 부분을 먹칠하여 반송하는[* 우표는 우편요금을 납부했음을 알리는 일종의 증표인데, 일본은 독도를 한국영토로 인정하지 않았으니 한국이 자국령이라는 상징으로서 발행한 독도 우표도 우표(우편요금 납부확인 수단)로 인정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독도우표가 붙은 우편물을 우편요금 미납으로 처리한 것이다.] 쪼잔한 짓밖에 할 수 없었다. 한국 어민들은 일본 선박의 통행이 금지된 해역에서 마음껏 어로활동에 종사할 수 있었으며, 일본 어민들은 독도 인근 해역에 진입할 수 없었다. 과거 일제는 지도에서 독도를 분명히 울릉도의 부속 도서로 인식하여 일본 직할령이 아닌 조선총독부 치하에 표시하였지만 일본 어민들은 여전히 독도 인근 해역에 출입했고, 한국 어민들도 출입하면서, 이 시기에 양국 어민들 간의 분쟁이 자주 발생했다. 그렇게 일본은 독도와 [[동해]] 수역을 멀거니 바라보아야만 하는 상황이 되었다고 생각됐지만...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