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평강공주 (문단 편집) == 의문점? == [[삼국사기]]의 온달 열전에 기록된 온달 [[설화]]에 따르면, 평강공주는 귀족 영식들은 마다한채 대신 한미하고 가난한 [[온달]]을 택했다고 하는데 이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학자들도 있다. 우선 온달이 정말 하층민 출신이라면 평원왕이 온달의 존재를 아는 것부터가 의문이 들 수 있다. 국왕이 일개 노숙자의 신상까지 알고 있는 것은 얼핏 이해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이 부분은 설화에서도 이미 온달이 평양에서 나름 유명하다는 식으로 묘사되어있어 가능성의 영역일 뿐 왕이 모른다고 확정하기도 어려운건 사실이다. 오히려 일국의 왕이 공주가 우는 것을 달랜답시고 바보한테 시집 보낸다고 어릴 적 장난 삼아 말한 것을 다 큰 공주가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진심으로 듣고 시집 간다]]는 것이 현실성은 더 떨어지는 얘기다. 그래서 오늘날 몇몇 학자들은 이 이야기를 약간 다른 차원으로 해석해서, [[평원왕]]이 귀족 세력들을 견제하기 위해[* [[고구려]]는 23대 [[안원왕]] 이후 귀족들의 세력이 이전보다 강해졌다고 추정된다. 특히 안원왕 말엽의 왕위 계승 분쟁 이후 귀족 연립 정권이 세워진 이후로는 왕권까지 위협할 정도였다.] 한미한 집안 출신들을 등용하는 차원에서 자신의 딸을 유력한 신흥 세력 인물에게 시집 보냈다는 의견을 내놓기도 한다. 다만 이 신흥세력이 말 그대로 하급 귀족 출신인지, 아니면 지위 자체는 높지만 기존 세력과 대립하던 마이너 세력인지는 역시 해석이 분분하다. 이후 [[온달]]이 가난하고 한미한 인물로 기록된 것은 떠오르는 신흥 세력이었던 온달을 견제하기 위해 당대의 고구려 고위 귀족들이 퍼뜨린 악의적인 소문과 기록들이 후대에 그대로 전해진 것 아니냐는 의견도 있다. 기타 내용은 [[온달]] 문서도 참조. 한편, [[온달]]이 실제 설화처럼 가난하고 한미한 출신의 배운 거 없는 순박하기만 한 청년이었다고 가정할 경우, 나중에 전장에서 이름을 떨치게 해준 무예와 전술은 평강공주가 체득하게 해준 것이 된다.[* 제대로 먹지 못하여 헐값에 구입한 말을 우수한 준마로 키워내 온달이 타고 활약할 수 있게 해준 안목을 보면 말과 친숙한 고구려 왕족은 여자도 말의 능력치를 파악하는 교육을 어릴 때부터 받았을 가능성은 있다. 다만 이것도 단지 전술된 설화의 내용이라는 것을 알아야한다. 어쩌면 아는 사람을 통하던지 해서 다른 방법으로 터득해나간 것일 수도 있다.] 만약 그렇다면 여성인지라 권력 핵심에 가기 어려운 평강공주가 자신과 뜻을 같이 할 남편감으로 뒷배경이 없는 온달을 고른 것일 가능성도 있다. 이는 앞서 말한 온달과 왕권과의 관계와도 연관이 있게 된다. 대중역사가이자 소설가 [[박영규(1966)|박영규]]는 영양왕-평강공주 남매의 생모가 죽은 후 [[평원왕]]이 맞아들인 계비가 의붓자식들과 사이가 안 좋고, 이 과정에서 계비가 평원왕의 귀를 막아 평원왕과 평강공주 부녀가 갈등하자 평강공주가 부왕과 계모를 엿먹이려는 심산으로 하급 귀족의 후손 온달과 결혼하겠다고 시위를 한 것이 설화로 전해져 온 것이라는 추측을 내놓기도 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