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편자 (문단 편집) === 일본의 말 [[짚신]] === [[파일:말 짚신.jpg|width=50%]] >••• 말은 각주에서 준비하여 대기시킨 것으로,발굽에는 징을 박지 않고 짚신을 신겼으며, 입에는 재갈을 물렸다, 좌우로 말을 몰 때에는 살이 찌고 날래어 모두가 좋은 종자였으나, 걸음을 길들이지 않았기 때문에 말 위가 불편하다고 하였다. 남쪽 왜인들은 이미 배 만드는 데에는 정밀하지만, 말을 길들이는 데까지는 익숙하지 못한 것은 당연하다. >----- > 해사일기, [[조엄(조선)|조엄]] 특이하게도 [[일본]]에서는 옛날부터 편자가 아닌 [[짚]]으로 만든 일종의 [[짚신]] 같은 [[말(동물)|말]][[굽]] 보호 장비를 사용했다. 일본 [[전국시대(일본)|전국시대]]에 편자가 [[규슈]]의 일부 지역에서 사용되었다는 기록이 있으나 널리 쓰이지는 않았다. 또한 [[에도시대]]에 [[도쿠가와 요시무네]]는 아라비아 종의 말을 수입해 품종 개량을 시도하고 1733년에는 승마 교련 사관과 말에 편자를 장착시켜주는 [[장제사]]가 일본에 이미 있었지만, 더 이상 전장에 뛰어 다니지 않았기 때문인지 편자는 여전히 보급되지 않았다. 아무래도 품질 좋은 철이 귀했던 일본이다보니 말한테까지 철을 사용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던 듯하다. 결국 일본에서 편자가 본격적으로 쓰이게 된 것은 [[메이지 유신]] 이후부터였다. 메이지 유신 이후 편자 기술은 서양 각국에서 일본으로 도입되었는데, 특히 [[일본 육군]]은 1873년(메이지 6년)에 프랑스에서 장제 강사를 초청하였으며, 훗날 1890년(메이지 23년)에 독일인 강사를 초빙하여 이들이 하여금 일본 본토에 편자 기술을 도입하고 정착하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이렇게 [[메이지 시대]] 이후 편자는 일본 전국에 퍼졌지만, 농산촌 지역에까지 보급됨은 [[다이쇼 시대]] 이후부터였다. 이후 1890년(메이지 23년)에는 [[수의사]] 면허 규칙이 제정되어 수의사는 국가 자격증이 되었는데 그 뒤 편자 기술자의 양성은 수의사 학교와 농학교 부속의 편자 전과로 진행되었으며 과정은 1년 과정으로 졸업 이후 곧바로 졸업증서를 수여했다. 이처럼 편자 기술은 [[군대]]에서 빠뜨릴 수 없는 것이었지만, [[청일전쟁]]과 [[러일전쟁]] 당시 일본 육군은 여전히도 편자 기술자의 부족에 시달렸다. [[중일전쟁]]에서 [[태평양 전쟁]]에 걸쳐 일본 육군은 수의사를 중시했는데, 당시의 동사무소의 병사(兵事)계는 편자 기술을 가진 민간인을 사전에 등록 동원시에는 우선적으로 소집영장을 보내 편자 기술자를 확보하고자 노력했다. 당시 [[수의사관]]은 [[일본군]]에서 우대되었으므로 준사관인 특무상사 대우를 받는 '수의사장'까지 진급할 수 있었다. 또한 수의사장은 [[수의과대학]]에서 단기간만 배우고 곧바로 수의사가 되는 단기과정 또한 있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