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펠라기우스 (문단 편집) === 죄에 대한 이해 === 완전한 인간 본성을 강력히 피력했던 펠라기우스에게 있어, 죄란 하느님을 거슬러서 고의적으로 저지르는 행위였다. [[성선설|인류는 죄 없이 태어났고, 본성상 죄된 성향이란 찾을 수 없다]][* [[요한복음]] 3장에 비추어 보면 [[세례]]를 받지 않으면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 되어있다. 펠라기우스가 '갓 태어난 아기가 세례를 받고 구속을 받을 필요가 없다'고 말한 것은 아니다. 다만, 갓 태어난 아기가 세례를 받지 못하고 죽었다고 해서 과연 하느님이 자비를 보이지 않고 고통에 떨어지게 할 것이냐고 생각했을 때 그렇지 않기에 유아세례의 필요성을 부인한 것이다.] 인간의 능력은 전혀 훼손되거나 손상되거나 하지 않으며, 인간은 언제든지 하느님의 계명을 수행할 수 있다. 육체의 약함은 변명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교회에 참석할 수 있는 사람도 이렇게 도덕적으로 완전한 사람만 가능했다. 이러한 그의 낙관적인 인간관은 아우구스티누스식 원죄론을 철저하게 부정하였다. 아우구스티누스가 [[아담]] 안에서의 죄인을 얘기할 때 펠라기우스는 아담의 죄는 아담 당시로 끝나며 후의 인류에게는 관계가 없었다. 젊은 시절 [[흑역사]]를 많이 보낸 [[아우구스티누스]]는, 죄로 말미암아 타락한 인간의 본성과 지성을 역설하였다. 또한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죄된 성향을 갖고 태어나기에 죄를 지을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고백록>이나 다른 반反펠라기우스 책에서 갓태어난 아기도 죄를 갖고 태어남을 증명하고자 했다. 태어나자마자 우는 것을 그는 강력한 증거로 제시하였다. 따라서 죄를 씻겨주는 세례를 유아도 받는 것은 필수였다. 죄는 유전되는 것이며 죄의 세력은 인간을 포로로 잡고 있어 인간은 거기서 빠져나올 수 없다. 하느님의 은총만이 인간을 죄에서 자유롭게 해주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의사]]로, 교회를 [[병원]], 인간을 치료가 필요한 환자로 자주 묘사한다. 이러한 그의 입장은 도나투스파와의 논쟁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그때 그는 가라지의 비유를 들어 평신도나 사제 역시 죄인이며 [[보편교회|교회]]란 의인들의 공동체가 아닌 죄인과 의인의 혼합된 공동체라 주장하였다. [* 현대까지 영향력있는 근세기 [[개신교]] 신학자들 중 [[존 웨슬리]]와 [[야코부스 아르미니우스]]가 펠라기우스주의를 계승했다는 주장이 있어왔다. 주로 아우구스티누스의 신학을 잇는 칼뱅주의자들에게 공격의 대상이 되어왔는데, 웨슬리와 그의 사상을 따르는 감리교, 성결교, 구세군 등의 신학자들은 웨슬리의 신학은 이단자인 펠라기우스주의와는 거리가 멀다고 주장한다. 우선 펠라기우스 사상의 근본 토대가 되는 원죄론 및 인간본성에 대한 이해가 웨슬리의 그것과는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웨슬리는 인간 본성의 전적 타락을 인정하기 때문에, 오직 은혜와 오직 믿음에 의한 구원을 부인하지 않는다. 존 웨슬리의 신학은 [[성공회]] 고교회파([[종교개혁]] 이래 전통적인 개신교 교의에 충실했던 저교회파에 대비하여 [[성공회]] 내에서 [[보편교회]]의 정체성과 가치를 강조하던 부류)에 기반한 복음주의로 칭의와 구원에 있어서는 오히려 고대 보편교회의 교부들의 입장과 더 가깝다. 그가 펠라기우스주의를 계승했다는 인식이 퍼진 것은 칼뱅주의자들과 신학적으로 대척점에 서서 이들과 첨예하게 대립했기 때문이다. 자세한 것은 감리회 25개조 종교강령을 참조하라 [[https://kmc.or.kr/about-kmc/faith-of-kmc]]]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