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페트라 (문단 편집) ==== 항아리 무덤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urn_tomb_47282.jpg|width=100%]]}}}||{{{#!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urn_tomb_inside.webp|width=100%]]}}}|| |||| 항아리 무덤의 외양과 내부 묘실 |||| 페디먼트 위에 장식된 항아리 장식에서 이름을 따 왔다. 서기 70년 경 쯤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아마 [[말리코스 2세]]의 무덤일 가능성이 크다. 447년 동로마 제국 시절부터는 정교회 성당으로 개조되어 쓰이기도 했다. 4세기 초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가 기독교도를 박해할 때 페트라의 기독교도들이 로마 신들을 섬기기를 거부해 순교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는 걸 보아 아마 이전부터 페트라가 기독교 신앙의 중심지였을 가능성이 크다. 서기 343년에는 페트라에 독자적인 주교구가 설치되어 주교 공의회에 참석했다는 기록도 있을 정도로 페트라는 이 일대의 기독교 중심지였다. 447년에 한 주교가 항아리 무덤 바닥을 평평하게 고른 다음 제단을 세우고 성당으로 개조해 써먹었다. 무덤 내부에는 3개의 거대한 후진이 벽감처럼 파여 있는데 이건 원래부터 있던 게 아니라 성당으로 개조할 때 기독교도들이 새로 판 것이다. 내부의 거대한 대형 홀의 면적은 18.5m X 17m다. 그 엄청난 규모를 생각해 보면 여기는 확실히 왕의 무덤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신기한 점은 [[춘분]], [[하지]], [[추분]], [[동지]]의 일몰 때 석양빛이 정확하게 무덤 내벽 정중앙까지 들어와 내부를 비춘다는 점이다. 무덤 앞쪽에는 양쪽에 열주들이 늘어선 깊은 안뜰이 있다. 안뜰 양쪽에는 안쪽으로 파인 채 기둥으로 장식된 입구들이 있어서 그 안으로 따로 들어갈 수도 있다. 열주가 조각된 측벽 위에는 5개의 벽감들이 파여 있는데 아마 신하나 귀족들의 시체를 매장하기 위한 것으로 추정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