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페르가몬 (문단 편집) === [[페르가몬 왕국]] === [[파일:터키 페르가몬 1.jpg|width=880]] 페르가몬 왕국 시대에 지어진 그리스식 극장 [[디아도코이]] 당시 환관 출신이자, 처음에는 [[안티고노스 1세]]의 부하였던 [[필레타이로스]]가 안티고노스를 배신하여 리시마코스 밑으로 들어갔다. 안티고노스가 패사한 뒤, 필레타이로스는 [[리시마코스]]의 신임을 사 방어가 용이한 이 도시에서 그의 보물을 지키도록 명을 받아 자리를 잡았다. 하지만 곧 정쟁에 휘말리는 바람에 리시마코스도 배신하였으며, 리시마코스가 [[셀레우코스 1세]]에게 패하고 죽자 일시적으로 셀레우코스의 영향권 밑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셀레우코스도 곧 비명횡사하고 혼란스러워지자 그때부터 사실상의 독립국가로 떨어져 나왔다. 이것이 페르가몬의 아탈로스 왕조이다.[* 필레타이로스의 아버지 이름이 아탈로스였다.] 필레타이로스는 40년 가까이 안정적으로 재위하며 페르가몬을 요새화하였으나, [[고자]]라는 문제점이 있었기에 그의 동생인 에우메네스의 아들(즉 조카) [[에우메네스 1세]]가 왕위를 물려받게 된다.[* 이름 때문에 [[알렉산드로스 3세]]의 부하였던 카르디아의 [[에우메네스]]와의 연관성이 의심된 바 있으나 증거는 없다. 아무래도 카르디아의 에우메네스가 궁정일지라는 기록을 남겼고 페르가몬 왕국이 도서관 장서로 유명하다 보니 의심할 만도 하다.] 에우메네스 1세는 다른 세력들과 연합한 뒤 셀레우코스 왕조 시리아의 안티오코스 1세를 격파하여 페르가몬의 완전한 독립을 이룬다. 그런데 그 역시 직계 후손을 남기지 못하여 다음 왕위는 5촌 조카인 [[아탈로스 1세]]가 물려받는다. 아탈로스 1세는 새로운 위협인 켈트족의 침략을 물리쳐서 구원자(소테르,σωτήρ)라는 칭호와 함께 정식으로 왕을 칭하게 된다. 엄밀히 말해 왕국으로서의 페르가몬은 아탈로스 1세 때부터 시작한다. 아탈로스 1세는 켈트족을 물리쳤을 뿐 아니라 계속해서 [[셀레우코스 왕조]] 및 마케도니아에 맞서 전쟁을 치뤘고 결과적으로 큰 재미는 보지 못했지만 국체를 보존하는 데 성공했다. 참고로 아탈로스 1세는 40년 넘게 오랫동안 왕위를 지켰는데, 그 동안 지중해 서쪽에서는 [[로마 공화국|로마]]와 [[카르타고]]가 열심히 싸우고 있었다. [[제2차 포에니 전쟁]]은 전체 기간이 아탈로스 1세의 치세 기간에 포함된다. 전쟁 이후 로마는 그리스 쪽으로 눈길을 돌리게 되고, 때마침 [[마케도니아 왕국|마케도니아]]에서는 [[필리포스 5세]]가 팽창욕을 보이며 주변의 [[어그로]]를 끌고 있었기에 자연스레 아탈로스 1세는 로마와 동맹관계를 맺게 된다. 이것은 적절한 선택이었고 이후 페르가몬은 마케도니아와 셀레우코스 왕조가 로마에 털리는 동안 로마의 동맹국으로 이득을 얻으며 독립을 유지하게 된다. 아탈로스 1세의 아들로 왕위에 오른 [[에우메네스 2세]]는 [[마그네시아 전투]]에서 로마군의 승리에 일조하였다. 페르가몬은 인구가 20만을 넘는 도시로 성장할 정도로 번영을 누렸다. 그가 남긴 가장 유명한 업적은 페르가몬 도서관을 지은 것이었다. 플루타르코스에 의하면 한때 페르가몬 도서관의 장서 수는 20만을 넘었다고 하며 이는 [[알렉산드리아(이집트)|알렉산드리아]] 도서관 다음 가는 규모였다고 한다. 하지만 이 도서관의 최후는 불분명한데, 일설에는 안토니우스가 [[클레오파트라]]를 위해 싹 비워서 알렉산드리아로 옮겼다 [[카더라]](...). 아무튼 남아있는 장서나 기록이 전해지지 않는다. 에우메네스 2세의 뒤를 이은 왕은 그의 동생인 [[아탈로스 2세]]였다. 그의 별칭은 필라델포스, 즉 우애왕이었는데 이는 그가 에우메네스 2세 대신 나라를 지킨 적도 있고 에우메네스 2세가 죽자 형사취수로 그의 왕비와 결혼한 것도 있다. 그는 80세가 넘도록 장수한 편인데 여전히 로마와의 동맹을 잘 유지하였고 아예 로마에 자주 방문했을 정도였다. 그는 [[필라델피아]]라는 도시를 건설했는데 이 도시 역시 로마 제정시대까지 잘 남아서 신약 성경에 페르가몬과 함께 살짝 등장한다. 아탈로스 2세가 죽자 에우메네스 2세의 아들이 [[아탈로스 3세]]로 즉위하였다. 그는 왕 자리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고 취미생활에 몰두하였다. 후계자도 없었던 그는 죽으면서 분쟁을 우려한 끝에 아예 로마에 나라를 넘기기로 결정하였다. 물론 모두가 그의 생각에 동의한 것은 아니었기에 [[아리스토니코스]]가 에우메네스 2세의 사생아를 자처하며 반란을 일으켰지만 바로 로마에 진압당하고 페르가몬 왕국은 로마와 [[폰토스]]와 [[카파도키아]] 등에 의해 분할되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