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페다이 (문단 편집) === 몰락의 징조, 무스타파 하페즈의 죽음 === 사실 이집트는 페다이들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페다이들은 이집트가 어디까지나 자신들의 보복을 위해 이용하고 있는 것 뿐이지 절대 이집트에 충성하는 부대가 아니라는것을 잘 알고 있었다. 특히 페다이가 필요 이상의 공격을 하여 이집트 입장에선 이스라엘과의 마찰만 불러일으키는 골칫덩이들이었다. 이스라엘은 페다이의 계속된 게릴라전에 화가 나 페다이를 잡기 위해 전차, 장갑차까지 동원해서 맹렬하게 나섰다. 페다이는 대전차 무기를 지원해달라고 했지만 이집트 정부는 생까버렸고 페다이들은 이스라엘의 기갑부대에게는 속수무책으로 당해야 했다. 이집트에서 유일하게 페다이들에 우호적인 사람은 그들의 책임자인 무스타파 하페즈 뿐이었는데 자신의 부하들이 공격받는 것을 보고 열받은 그 역시 몇번이나 상부에 지원을 요청했으나 나세르는 그 요청을 모조리 무시했고 그는 이집트 정부와 자신의 부하들 사이에 끼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스라엘에게 그런 사정 따위는 알바가 아니었고 이스라엘은 1956년 7월 11일 소포폭탄을 보내 그를 날려버렸다. 페다이들은 그를 카이로로 이송하여 장례식을 치뤘는데 자신의 부하들을 아꼈던 하페즈라서 자례식장은 통곡하는 페다이들로 인해 울음바다가 되었다고 한다. 사내는 하페즈의 어머니보다 더 울어서 하페즈의 어머니가 그를 진정시키려 했었다고...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