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페다이 (문단 편집) == 페다이의 결성 == 가자 지구 전체가 폭발했고 보복을 요구하는 시위대가 군부대를 포위했다. 이집트 군대는 시위를 진압하던 중 몇 사람의 시위자를 죽였는데 분노한 시위대가 군인들을 끌어내서 린치를 가했고 이집트의 여론도 굉장히 나빠져서 나세르의 지위가 흔들릴 지경이 되었다. 당시 나세르는 소련제 무기를 사들여 이집트 군대를 현대화하고 있었는데 이는 이스라엘의 불안을 산 것은 물론 아랍 전체의 구도를 흔들고 있었다. 나세르는 이스라엘을 너무 자극하지 않는 선에서 아랍 민중의 분노를 가라앉히기 위해 보복을 할 필요가 있었고 이 작전의 책임자로 이집트 정보부의 가자 지구 책임자 무스타파 하페즈가 다시 나섰다. 하페즈는 이 작전을 지휘할 군인으로 감옥에 갇혀 있던 사내를 지목했고 그는 1955년 3월 13일 밤 10시에 석방되어 미리 대기하고 있던 부대와 함께 보복 작전을 감행했다.[* 그 보복 작전의 내역에 대해서 남자는 "아주 성공적이었다. 죽은 사람은 한명도 없었다."라고 자화자찬했고 그 내용을 묻자 "난 작전을 자세하게 말해줄 수 있지만 그럴 필요는 없다."라면서 답변을 거부했다."] 그 후 몇 달동안 이집트는 팔레스타인 게릴라, 즉 페다이의 핵심 조직원들을 모았는데 이들 대다수가 살인자, 월경자, 좀도둑 등 범죄자들이었고 고생 끝에 명령이라곤 안듣는 그들을 군인들로 만들었으나 조직원들이 하나같이 이스라엘을 증오하고 있었고 지휘관들 역시 그들에 물들어 광기에 휩싸였다. 1955년 8월부터 페다이는 작전에 나섰다. 이 작전은 당연하지만 화력에서 이스라엘에게 상대가 될리가 없어 상당한 출혈을 요구하는 것이었고 피해는 오히려 페다이들이 더 크곤 했다. 오죽했으면 페다이의 지휘관은 "우리 100명이 죽고 유대인 둘이 죽으면 우린 만족했다."라고 했을 정도였다. 그들은 이스라엘 수비대를 습격해서 군인들을 죽이고 이스라엘 군대의 무기를 노획하곤 했는데 당연하지만 이스라엘은 자신들이 입은 피해를 곧이곧대로 보도하진 않았고 이집트 군부는 남자가 보고한 전과가 거짓말이라고 의심했다. 이에 남자는 부대원들을 이끌고 유대인 정착촌을 건설하는 노동자 캠프를 습격해서 노동자들을 모두 죽이고 '''그들의 귀를 잘라 왔는데''' 이집트 정부는 매우 흡족해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