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이동문서 삭제토론 페니실린 (문단 편집) == 기타 == * 플레밍과 처칠에 관련해서 1943년 폐렴에 걸린 처칠을 페니실린으로 살린 이야기에 대해, 어렸을 때도 처칠이 물에 빠졌을 때 플레밍이 구해준 적이 있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다. 무엇보다, 처칠은 1874년생이고 플레밍은 1881년생으로 7년 차이로. 처칠이 19세에 육사에 입학했으므로 이런 일화가 생기려면 적어도 처칠이 17~18세에 일어난 일일 텐데, 이때 플레밍의 나이는 10~11세. 해외토픽감이다. (MBC [[서프라이즈]]에서는 이를 [[망했어요|사실로 받아들이고 책에 실었지만...]] )이런 사실 때문인지 플레밍의 아버지가 물에 빠진 처칠을 구했고, 감동한 처칠이 그의 아들 플레밍이 의과 대학에 진학할 수 있도록 후원하여 플레밍이 페니실린을 발견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플레밍의 아버지는 플레밍이 고작 일곱 살 때 세상을 떠난 터라 은혜를 잊지 않았던 처칠이 나중에 은혜를 갚은 거라 해도 사실과 맞지 않는다. 플레밍은 런던에서 해상 회사에서 일하다가 친척의 유산을 물려받은 덕에 의학 공부를 시작할 수 있었다.[* 참고로 당시 의대(정확히 말하면 병원 연구소)에 합격한 이유가 총을 잘 쏴서다. 플레밍이 다니던 의학 연구소에서는 사격팀이 있었는데 총을 잘 쏘는 그를 놓치기 싫었던 것이다.] 무엇보다 처칠의 목숨을 구한 것은 페니실린이 아니라 [[설파제]]였는데, 독일 과학자 [[게르하르트 도마크|게르하르트 도마크(Gerhard J. P. Domagk)]]가 발견한 프론토질로부터 나온 설파제로 목숨을 구했다고 알려지는 것보다 영국인이 발견한 약으로 총리의 목숨을 구한 것으로 알려지는 것이 국민의 사기에 좋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언론에는 플레밍이 처칠의 목숨을 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밖에도 플레밍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가 많은데, 그는 [[리소자임]]이 어디에 포함되어 있는지 알기 위해 세균배양접시에 침과 눈물 등 온갖 체액을 뿌렸는데, 이 체액들을 구하기 위해 사람들(심지어 어린아이에게도)에게 레몬즙을 투척하기도 했다. 후에 리소자임이 달걀이나 물고기 알 등 알 종류에 많다는 걸 알자 직접 낚시(그의 취미 중 하나)를 해서 실험용 동물을 구해오기도 했다. * 쥐 태아에게 사지 기형을 유발시킨다. * [[스펀지(KBS)|KBS 모 프로]]에서는 '''콧물([[코딱지]])'''에서 발견했다는 이상한 발언을 했다. 아마 콧물에서 발견한 [[라이소자임|리소자임(라이소자임)]]과 착각한 듯.[* 사실 콧물 속에는 다양한 세균들이 생존을 위해 [[타감작용]]으로 발생시키는 항생 물질들이 들어있다. '''루그더닌'''이라는 물질도 또한 알려져 있다.[[http://m.ibric.org/trend/news/subread.php?id=274508&Board=news|#]] ] 90년대 중반까지 플레밍 위인전이나 어린이용 과학잡지 등에 플레밍이 콧물에서 페니실린을 발견했다는 글이 실리곤 했는데, 이 때문에 이를 사실로 생각하는 중년층도 상당수 있다. * [[일하는 세포 BLACK]]에서 이 페니실린을 투여해서 임질을 치료하는 장면이 나온다. 참고로 생긴 것이 마치 인공위성의 레이저 캐논같이 생겼다. ~~고전 항생제인데 이렇게 테크니컬하게 생긴 게 맞냐는 지적이 있다~~ * 최초 발견자라는 트로피를 제외한다면 페니실린 발전사에 대해 플레밍의 기여도는 거의 없다시피하다는 것이 의학사 연구자들의 견해이며, 실제로는 하워드 플로리와 에른스트 체인이 최대 공로자라고 하는 것이 정설이다. 패혈증에 대한 페니실린의 효과를 규명한 논문을 쓴 것도 이들이며, 플레밍은 페니실린 추출의 어려움에 부딪혀서 지지부진한 이후로는 이 연구에 관심을 끊기도 했다. 페니실린의 효과가 널리 알려지자 그 유명세가 플레밍으로 향하긴 했지만 최초 발견자 이상의 의미는 없다는 것이다. 또한 그나마 세명이 함께 노벨상을 받아 이름을 남긴 반면에, 페니실린 연구의 중요한 계기를 마련한 르네 듀보스[* 그라미시딘 연구.]와 페니실린의 대량생산을 가능케 한 허친슨 루소의 이름은 잊혀지다시피 했다. 이 때문에 플레밍의 사례는 종종 각종 협업으로 진행되는 현대 과학을 인지하지 못하고 아직도 영웅서사를 원하는 대중의 관성을 꼬집는 사례로 거론되기도 한다. * 다만, 이러한 지적은 과학적 업적, 공헌과 산업적 업적, 공헌을 혼동한 착각이다. 듀보스의 그라미시딘 연구는 이후 세계 최초로 상업화에 성공한 항생제로서 그 자체로서 의미있는 연구인 것은 맞지만 플레밍의 첫 발견 후 11년이나 뒤의 일이다. 허친슨 루소가 [[화이자]]의 의뢰로 페니실린의 대량생산 공정을 가능케 한 것 또한 정확하지만, 이는 공학적이자 산업적으로 더 의미있는 업적이지 과학적 업적과는 구분될 수 밖에 없다. 예를 들어 뉴턴역학의 존재와 가능성을 이용해서 뉴턴 본인이 상상도 하지 못한 다양한 공학의 산물과 산업 제품들이 생산되고 있지만, 그 누구도 이 때문에 [[아이작 뉴턴|뉴턴]]이 "뉴턴 역학"이라는 과학적 업적을 얻을 자격이 없다고 논하지는 않는다. * 플레밍의 발견이 우연적인 것이란 것과 페니실린의 실질적 개발에 플로리와 체인의 공헌이 더 컸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지만, 듀보스의 그라미시딘 연구나 루소의 생산공정 개발이 이들의 업적과 동일하다거나 우선시 되어야 한다는 주장은 단순한 역사 수정주의적 관점의 산물에 불과하다. 우연이든 아니든 "항생제"라는 존재를 역사 처음으로 발견하고 인류에 알린 플레밍의 업적은 그 자체만으로도 과학적, 의학적으로 중요한 업적이며 실제 이를 인류가 사용 가능토록 한 플로리와 체인의 업적도 마찬가지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