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펑더화이 (문단 편집) === [[중일전쟁]] === 제2차 국공합작이 성사되자 [[1940년]] 화북 지역에서 [[연대(군대)|연대]] 100여 개를 동원한 백단대전을 지휘했다. 이 때 [[일본군]]에 어느 정도 피해를 입히기는 했으나 팔로군의 희생도 매우 컸다. 마오쩌둥은 이것을 자신에 대한 항명 행위로 받아들여 격노했고, 팔로군에게 일본군에 대해 철저히 수세로 일관하라고 지시했다.[* 팔로군의 세력이 국민당군에 미치지 못했기에 병력 손실을 입으면 국민당군에게 완전히 주도권을 넘겨줄까 우려한 것이다. 마오쩌둥이 항일전보다 국민당군을 상대로 한 세력 확장에 더욱 신경을 쓰고 있었다는 증거다. 하지만 이런 평가는 국민당군과 팔로군의 차이를 모르고 하는 소리이다. 중국군 '''주력'''인 국민당군은 일본군과 전면전을 벌여서 패배를 하더라도 세력이 유지될 수 있었으나 팔로군은 그대로 전멸이다. 전면전이 아닌 삼광작전 때도 거의 전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었다. 또한 만주의 공산군은 40년대 초반 주력 다 중국 본토로 빠진 관동군도 아닌 만주군에 전면전을 하지 않고 게릴라전을 벌였는데도 전멸당한다. 세력확장이 아닌 생존의 문제였던 것이다. 해방구가 주로 일본의 점령지인 화북지역에 설치된 것까지 고려하면 생존>항일>세력확장이란 평가가 옳다. 진짜 세력확장이 우선시되었다면 일본군보다 약한 국민당군의 지역인 사천 등에 해방구가 화북보다 더 많이 세워졌을 것이다. 생존도 쉽고 세력확장도 쉬우니까. 그리고 해방구는 단순히 공산당의 세력확장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다. 게릴라전의 근거지가 되었기 때문이다. 즉 일본군이 농촌동원을 제대로 하지 못하게 방해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 이는 궤변이다. 국민당이 일본과의 전면전에서 패배하더라도 세력 유지를 할 수 있다는 말은 중일전쟁의 성격을 지극히 오해한 결과이다. 1937년부터 1941년까지 중국은 일본을 상대로 홀로 악전고투했고 그 결과 전 연안지역이 일본에게 점령되기까지 한다. 일본 군부의 목적이 중국 정복이었음은 의심할 바 없는데, 이들의 목표를 최소한 중원을 점령하는 것으로 잡아도 장강 이남으로 밀려난 장제스 국민당 정권이 멀쩡히 권력을 유지할 가능성은 낮다. 즉, 중일전쟁은 국민당 입장에서도 생사가 걸린 혈투였다는 것. 공산당의 해방구가 사천같은 남쪽에 설치되지 않은 이유는 단순하다. 그럴 경우 장제스의 국민당군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일본이 아닌 공산당을 우선 쓰러뜨렸을 것이기 때문. 5차례나 토벌작전을 개시해 겨우겨우 연안까지 몰아낸 공산당이 하라는 국공합작은 안하고 슬금슬금 다시 남쪽으로 세력확장을 한다면 이는 명백히 국공합작 위반이기에 국민당에게 처맞아도 할 말 없다. 그리고 공산당 입장에서도 소련의 무기와 자금 지원을 손쉽게 받기 위해서는 남중국이 아닌 화북에 근거지를 두는 쪽이 압도적으로 유리했다. 또한 생존이라는 단어는 굉장히 모호한데, 우선 당의 생존을 논한다면 중일전쟁과 공산당의 생존은 딱히 관련이 없다. 중국공산당은 중일전쟁 이전에도 수없이 괴멸과 부활을 반복해왔기 때문. 공산당의 강점인 조직력과 무한한 지원을 아끼지 않는 소련이 떡하니 버티고 있는 한, 공산당은 생존 운운할 만한 약한 조직이 아니다. 모택동 본인의 생존이라면 관련이 있어도... 모택동이 영악하게 국민당과 일본 사이에서 세력확장을 꾀한 것은 명백한 사실이고, 이는 중국을 통일한 역대 군주들이 가졌던 덕목이기도 하다. 이런 모택동의 전략은 주효했으며, 중국의 지배자가 되려는 야심을 품은 입장에서 사실상 유일한 선택지이기도 했다.]한편 일본군은 백단대전을 계기로, 그간에는 적대 세력으로 쳐주지도 않고 기껏해야 비적 취급하여 방치해두다시피 하던[* 앞 주석에서 말했듯이 팔로군은 너무 약했다. 또한 팔로군은 중국 농촌이 피폐해져감에 따라 농촌 빈민들이 도주하고 결성한 여러 도적집단, 그리고 종교집단과 결합했다. 만주에서는 일본 제국, 즉 만주국이 종교집단을 이용했기에 도적집단과만 결합했는데 이러한 일본의 경험이 '공비'라는 말을 낳았고 이에 따라 '비적' 취급을 했다.] 중국 공산당을 섬멸하고자 [[신멸작전]]을 실시, 화북 지역의 중국 공산당 해방구들을 초토화시켰다. 중국 공산당은 이 때의 큰 타격에도 불구하고, 일본군의 [[대륙타통작전]]으로 화북 지역의 치안 유지 병력이 대거 차출되면서 이전의 세력을 회복할 수 있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