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패왕별희 (문단 편집) == 기타 == * 감독 천카이거는 중학생 때 문화대혁명을 겪었고, 직접 홍위병으로 참가했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자신의 아버지를 부정하는 행동을 벌였는데, 이러한 모습들을 영화 속 문화대혁명 시기 예술과 가족의 관계성이 탄압받는 모습으로 그려내었다. * 마지막 장면에서 뎨이가 샤오러우의 검으로 자살하는 것에 대한 복선 및 그 검과 뎨이의 기이한 인연이 영화 초반부 및 중반부에 등장한다. 그 검은 원래 어린 뎨이를 [[강간]]했던 장 내시의 것으로, 당시 어린 샤오러우가 검을 보고 "패왕의 검은 이런 휼륭한 검이었을 것이다. 이것만 있으면 나는 패왕이고 넌 왕비가 될 수 있을 텐데"라고 감탄하며 갖고 싶어했다. 그러데 장 내시가 몰락한 후 원대인의 소유가 되었다. 세월이 흘러 샤오러우의 결혼식 날 밤에 절망한 뎨이가 원대인 집에서 술에 취해 원대인과 패왕별희를 연기하다가, 원대인의 허리춤에서 이 검을 뽑아 정말로 자살할 것 같은 위태로운 모습을 보인다. 그러자 원 대인이 몹시 놀라며 "조심하시오, 그건 진짜 칼이오!"라면서 만류하고, 이날 밤 실연과 배신감으로 절망한 뎨이는 원대인에게 몸을 허락하고 그 대가로 검을 받는다. 그리고 샤오러우의 결혼식 잔치에 뒤늦게 가서는 그 검을 결혼 선물이라며 주고 이별을 선언한다. * 중국 상영판에서는 뎨이가 자살하지 않고, 샤오러우와 공연을 이어나가는 장면이 페이드 아웃되는 것으로 마무리 된다. * 샤오러우가 점점 힘과 권위를 잃어가는 모습은 [[벽돌]]을 머리로 깨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어린 시절부터 곤란한 상황이 닥칠 때마다, 자기는 천하의 영웅 패왕이라며 벽돌을 자신의 머리에 내리쳐 깨뜨리는 걸로 힘과 사내다움을 과시하며 위기를 넘겼다.(사부에게 경극 배우로서의 권위를 떨어뜨리는 짓이라며 혼이 난다.) 성인이 돼서도 홍등가에서 시비가 붙었을 때도 도자기 주전자를 깨면서 박치기 실력을 보여준다. 그런데 문화대혁명 와중에 홍위병들이 벽돌을 머리로 깨보라고 강요했을 때는, 나이가 들어 힘이 약해지기도 했고 공포에 질려 옛날의 패기를 잃었기 때문에 벽돌을 못 깨고 머리만 다쳐 피를 흘리는 지경이 된다. * 경극 패왕별희의 내용을 반영한 영화답게 사회의 변화에 따라 [[사면초가]]와 같이 뎨이와 샤오러우가 몰리는 장면이 많이 나온다. 샤오러우를 잡아가 협박하는 일본군, 경극을 방해하며 소리를 지르는 국부군, 관객석에서 크게 노래하는 홍군, 문화대혁명 때의 홍위병 등등. 또한 홍위병이 든 깃발의 색깔과, [[고제(전한)|유방]]의 나라인 한나라를 상징하는 색깔은 둘 다 '''붉은색'''이다. * 배우 [[장국영]]은 중성적인 뎨이의 모습과 경극 패왕별희 속 여인인 '우희'의 모습, 그리고 동성애 성향을 완벽히 소화해냈다. 그가 훗날 (비공식적으로) 양성애자임이 세상에 알려졌던 것을 생각해보면, 흥미로운 부분. * 장국영이 캐스팅되었을 때 천카이거는 홍콩 배우가 뎨이 역할을 잘 할 수 있을지 걱정했다고 한다. 이때 장국영은 자신이 뎨이에 적격이라며 캐릭터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고, 엄청난 열연을 펼쳤다. 뎨이가 원세경에게서 검을 받아 인력거를 타고 가는 장면에서 장국영의 연기를 보고 제작진들이 모두 소름이 돋았다고 한다.[* 번진 입가가 피를 흘리는 것 같이 보였다고 한다.] * 칸 영화제에서 이 영화가 상영되었을 때 해외 언론들도 장국영의 연기에 감탄했지만, 이미 아시아에서 대스타였던 장국영에 대해 '신인인데도 연기력이 너무 훌륭하다'며 이런 배우를 어디서 발굴했냐고 묻는 촌극이 벌어지기도 했다.[* 지금만큼 아시아 영화가 서구권에 알려지지 않았던 시절이기는 했지만, 자기들이 인터뷰하는 대상에 대한 사전 조사를 전혀 안 해서 나온 무례한 질문이기도 했다. 패왕별희의 성공으로 장국영은 서구권 영화에 출연해달라는 제의를 여러 번 받았지만, 칸 영화제에서 황당한 질문을 받았던 경험 때문에 '내가 서구 영화계로 진출한다면 신인 단계로 돌아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판단을 내리고 거절했다고 한다.] * 장국영의 아역으로 나오는 두 명의 소년배우들은 외모가 출중했다. 첫 번째로 등장하는 아이[* 마밍웨이(馬明威)]는 장국영의 어린 시절이라 해도 믿길 정도로 이목구비가 뚜렷하며, 두 번째로 등장하는 아역은 실제 여자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미모가 돋보이는데, 특히 눈에서는 눈물, 입가에서는 피를 흘리며 경극 투자자를 뚫어져라 노려보는 장면이 유명하다.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stat.ameba.jp/o0500027913023763874.jpg|width=100%]] [[파일:external/img.chinatimes.com/20160802002337.jpg|width=100%]]}}}|| || 패왕별희 촬영 당시 [[장국영]]과 함께 || 이 아역은 인즈(尹治, 한국어 독음: 윤치, 1976년생)이라는 배우이며, 훈남배우로 성장하여 2000년대는 중국의 TV극에 가끔씩 얼굴을 내밀었지만, 2010년대는 활동이 없다. 패왕별희로 이름을 알리긴 했지만, 지나치게 그 그림자에 가리는 것을 원치 않는 듯 패왕별희 출연에 대한 취재는 절대 사절한다. 물론 패왕별희를 기리는 기념 다큐에는 기꺼이 출연해 인터뷰도 한다. [[https://youtu.be/-5rWquCOYMg?t=28|인터뷰 영상]]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imgsa.baidu.com/a08b87d6277f9e2f8d35a5711f30e924b899f343.jpg|width=100%]]}}}|| || 성인이 된 인즈가 영화 <매란방>[* 이 역시 경극에 관한 영화로, 아이러니하게도 심지어 매란방은 여자 역 남자배우로 유명한 사람이었다. 청뎨이의 모델이 매란방이라는 설도 있다. 매란방은 마오쩌둥이 개인적으로 팬이었던 데다가(마오쩌둥은 북경대 사서 시절부터 경극 팬이었으며, 1949년 북경에 입성하고 나서도 매란방의 공연을 보러 왔다고 한다.), 다행히(?) 문화대혁명 전에 사망해서 청뎨이와 같은 굴욕은 겪지 않았다.]에 [[장쯔이]], [[여명(홍콩)]]과 함께 출연했을 때 || * 이 영화가 제작되었던 1993년은 아직도 중국이 경직되었을 때라서, 이 영화의 중국 내 상영은 엄격히 제한을 받았다. 중국 당국이 문제삼은 표면적인 이유는 [[동성애]]와 [[자살]] 미화. 그러나 실제로는 [[문화대혁명]]의 아픈 기억을 되살리면서 공산당에 대한 비판적 시각[* 이 작품에서는 공산당을 포함한 모든 권력을 억압적으로 묘사하며, 이들을 비판적으로 그리고 있다. 그러니까 [[중화민국 북양정부]], [[일본 제국]], [[중국국민당]]이 통치하는 [[중화민국 국민정부]] 또한 주인공들을 비극적인 상황으로 몰아간다.]이 간접적으로 드러나 있기 때문이라는 게 정설이다.[* [[문화대혁명]]은 현재 중국공산당이 공식적으로 [[마오쩌둥]]의 과오라고 인정하는 몇 안 되는 [[흑역사]]이기 때문에, 공산당이 아니라 문혁 자체를 비난하는 것은 별로 문제삼지 않는다. 그 이후로도 문혁을 비판하는 영화는 여럿 나왔다. 특히 문화대혁명의 피해자들 중 한 명인 시진핑이 집권하면서부터는 중국 내에서 문화대혁명에 대한 비판이 보다 더 자유로워진 편이다.] 하지만 현재는 제작된지 오래되기도 했고, 국제 영화계에서 상을 휩쓸는 등 수작으로 평가받는 작품이기도 하며, 그동안 [[배달의 기수]]식의 관제-선전 영화만을 만들어 와서 수준이 저평가되었던 중국영화의 실력을 보여준 작품으로 칭송되어, 아무 제한없이 TV에서 틀어주고 있었다. 또 중국 영화 평점 사이트에서도 최고점을 받는 걸작으로 등극해 있으며, 중국 대중의 평가도 상당히 좋은 편이다. 감독 천카이거 역시 중국의 거장 대접을 받으며 각종 시상식이나 방송에서 심사위원으로도 활동한다. 중국의 역사영화에서도 민국이 대륙에 있던 시절의 [[청천백일만지홍기]]는 당연히 나온다. * 2020년 패왕별희 디 오리지널이라는 이름으로 5월 1일 한국에서 재개봉되었다. 원래 [[장국영]] 사망 17주기 기념으로 4월 1일 개봉하려고 했으나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사태 때문에 한 달 미뤄진 것이다. 한국 재개봉판은 중국에서 개봉하지 않은 감독판을 개봉한다고 한다. 감독판은 중국판보다 15분정도 길다. 감독판에 늘어난 장면은 상영에서 지나치게 늘어졌다고 판단되거나 혹은 동성애와 같이 중국에서 금기시되는 장면 등이라고 한다. 이런 장면들은 뎨이와 샤오러우의 어린 시절 일부, 장내관의 뎨이의 강간장면, 위안스칭과 뎨이의 동성애 장면(베드신), 뎨이의 아편흡입, 홍위병의 인민재판 일부 등이라고 한다. 중언부언하던 과거 비디오판 자막에 비해서 자막의 질이 크게 올라갔지만 다만 이 재개봉판도 자막은 영어판에서 중역한 듯하다. 1994년판 자막에서 지적되었던 오기("두지", "시투", "데이", "샬로" 등) 등은 수정되지 않았는데, 이미 익숙해진 인명이기도 하고 그냥 한국 관객이 더 읽기 쉬운 인명으로 유지해버린 듯. 그리고 주인공들은 중국식 독음으로 읽으면서 원세경은 또 원세경이라고 한국식으로 읽는 등 좀 왔다갔다하는 독음도 흠. 사실 이 영화의 많은 경극 가사들은 보통 번역자로는 힘들고, 중국 문학 전공자가 아니면 제대로 손대기가 어렵기도 하다. 어설픈 중한번역을 하느니 차라리 중국인이 번역한 영어 자막을 한국어로 중역하는 것이 뜻은 더 통할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 원래 뎨이의 배역으로 후보에 오른 사람은 [[마지막 황제]]에서 [[선통제|푸이]]역을 맡은 [[존 론]]이었다. 존 론도 미국으로 가기 전에 홍콩에서 경극 학교를 다녔고, 그 시점에서 서방 영화계에서는 마지막 황제덕에 장국영보다는 존 론이 더 유명했기 때문에 배역을 맡아도 그다지 무리는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천카이거 감독은 아무래도 장국영이 뎨이와 더 맞다고 판단, 원작을 쓴 이벽화와 접촉해서 장국영을 움직였다고 한다. 장국영은 [[매염방]]과 함께 1987년 이벽화가 원작인 인지구(咽脂口)라는 영화에 출연했고, 이벽화와 안면이 있었다고 한다. 이 인지구에서 장국영은 잠시 경극 배우로 등장한다. 한편 존 론도 비슷한 시기에 제작된 [[M.Butterfly]]에서 여장 경극 배우를 연기했고, 이 영화는 패왕별희보다도 직접적으로 동성애의 주제를 다루고 있다. * 장국영은 홍콩 토박이라서 [[광동어]]가 모어로 사용하는 사람이며 [[표준중국어]](보통화)를 못했으나[* 물론 장국영은 패왕별희에 출연하기 전에도 [[영웅본색]] 1의 주제가 [[當年情|당년정]]과 [[영웅본색 2]]의 주제가 [[奔向未來日子|분향미래일자]]를 표준중국어 버전으로 따로 부른 적이 있었지만 애초에 자신의 모어가 아닌 언어로 노래를 부르는 것과 연기를 하는 것은 각각 별개의 영역이다.], 이 영화를 찍으면서 보통화를 열심히 익혀서 보통화로 인터뷰를 할 수 있을 정도는 되었다고 한다.[* 유창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30대에 들어 배웠으니 당연한 거지만...] 실제로 경극(京劇)은 문자 그대로 베이징의 지역의 전통 가무극이기 때문인 것도 있고, [[경극]] 항목에서도 볼 수 있듯이 모든 대사와 가사가 보통화 밑 [[백화문]]으로 되어 있다. 또한 경극 무용도 짧은 시간에 전문가들이 인정할 정도로 완벽히 습득했다고 한다. 스탭진은 아이돌 가수 출신인 장국영이 영 못미더워서 대역을 할 수 있는 경극 배우 두 명을 대기시켰으나, 이들이 필요 없을 정도로 장국영은 뎨이 역을 완벽히 소화해냈다. * 참고로 패왕별희라는 단어를 번역하기 어려웠던 탓인지, 이 영화의 영문판과 프랑스판 제목은 각각 'Farewell my concubine" "Adieu ma concubine"(첩이여 안녕~)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건 패왕별희란 말의 원뜻이 "항우가 애인과 이별한다"는 뜻이므로 직역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우희는 항우의 첩이라기보다도 애인에 더 가깝다.(정식으로 혼인을 하지 않았지만 사서에 나타나는 항우의 연인은 우희 뿐이다.) 또한 동명의 '''원작 경극의 공식 영어 제목 역시''' "Farewell My Concubine"이다. * 주인공들의 옷[* 주인공들은 [[한푸]]에서 정장을 거쳐 [[인민복]](...)으로, 여주인공인 쥐셴은 [[치파오]]에서 [[치파오#s-2|민국학생장]]을 거쳐 서양식 카라티를 입는다.]차림과 마차와 인력거에서 승용차로 바뀌는 거리 풍경의 모습에서 시간이 흐르는 모습을 보여준다. * 정성일 평론가 오디오파일[[https://ia800207.us.archive.org/16/items/jei_archive/19940109.mp3|#]] * 주인공 뎨이(蝶衣)가 아편에 빠져 허우적댈 때, 카메라는 어항 너머로 뎨이의 얼굴을 비추고 있다. 어항은 주인공의 삶을 은유하는 걸로 보인다. 또한 네이버 중국어 사전에 따르면, 접의(蝶衣, diéyī)는 나비의 날개를 가리키는 문어체라고 한다. 원 대인이 보낸 패물이 괜히 나비 모양이 아닌 셈이다. * 경극 배우로 훈련받는 아이들이 [[역발산기개세|力拔山兮氣蓋世]]를 외치며 해하가(垓下歌)를 부르는 장면이 있다. * 중국 제5세대 감독인 천카이거 감독이 40대 초반에 연출한 정점 같은 작품이며, 천카이거는 이 작품 이후로는 그다지 인상적인 작품을 내놓지 못했다. 오히려 패왕별희 이전의 저비용 초기작들(예를 들어 황토지, 변주변창(한국 개봉명-현위의 인생))이 더 명작이 많다. 패왕별희 이후 대가의 반열에 올랐고, 이 때문에 대자본을 쓸 수 있게 되어 여러 외국배우([[장동건]])을 기용해서 만든 [[무극]](2006)이 있기는 하지만 욕만 먹고 그다지 흥행에 성공적이지 않았다. 역시 5세대의 다른 대표 감독인 [[장이머우]]와 마찬가지로 블록버스터 영화 연출에는 별로 재능이 없는 듯하다. [[여명(홍콩)|여명]]을 기용해 만든 경극영화인 매란방(2008)도 그냥 범작이며, 한국에서는 개봉조차 하지 않았다. * 천카이거 감독은 미국에 유학한 적이 있고, 미국 대학에서 강사도 한 경력이 있어 영어가 유창하다. 패왕별희가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던 당시 [[칸 영화제]]나 기타 해외 영화제 인터뷰를 보면 통역 없이 능숙하게 영어로 응답한다.[* 중국 국적을 유지하고 있지만 실제 거주지는 미국이며 미국 영주권자라고 한다. 최근 [[중국]]에서 배우로 활동하고 있는 아들 [[진비우]]는 아예 [[미국]] 국적자이기도 하다. 다만 작품활동은 중국에서만 한다. 2020년 중국 정부의 선전영화인 [[나와 나의 조국]]을 감독한 것으로 봐서는 중국 정부와 사이가 나쁜 것은 아닌 듯.] [youtube(TZKDUhCmIQk)] 1993년 미국의 유명 기자 비비 위건트와의 영어 인터뷰. * 2020년 5월 1일 한국에서 재개봉하였다. 장국영의 기일인 4월 1일 개봉 예정이었으나 코로나19 여파로 5월 1일로 밀렸다. 재개봉 영화로서는 이례적으로 누적 관객 수 10만 명을 돌파하였다. * [youtube(GGDSfsmlBK4)] 이 영화의 모티브가 된 원작 경극은 유튜브에서 볼 수 있다. 비록 한글 자막은 지원되지 않지만 영화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면 한 번쯤은 보는 게 좋을지도. * 지앙 원리(蒋雯丽, 1969)가 정접의의 어머니를 맡았다. 단역이었지만 미모가 눈에 띄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