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팔로군 (문단 편집) == 대중 매체 == >내가 [[톈진 시|천진]]을 떠나 태행산 국군에 입대했었다는 것에서 시작하여, 민간인들이 국군에 파는 양곡들을 태행산에 있던 팔로군들이 어떻게 방해했다는 거며, 어떻게 약탈해 간다는 사실, '멸식대(滅食隊)를 조직하여 민가를 돌아다니며 양식을 보는대로 다 착취해 버리는 것을 이들의 주목적으로 일삼는다는 것이며, 소위 구국금(救國金), 또는 장병 위로금, 등등의 명칭을 내세워서는 어려운 농민들에게 기금하여 줄 것을 강요 했다는 것, 그러다가 눈에 거슬리면 공연히 어진 백성들에게 [[친일파]]라는 죄명을 씌워서 죽인다는 사실, 종래에는 일본 놈들 군복을 입고 일본군으로 가장하여 우리 국군을 습격 했다는 사실, 이면으론 엉뚱한 흉계를 꾸미면서도 태연스럽게 '웃음 외교'를 한다는 사실, 우리 국군은 일선에서 일본군과 홍협군을 대항하여 열심히 싸우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놈들은 뒤에서 우리 국군의 병력을 소멸시키는 데에만 주력했다는 사실!, 나는 태행산에서 겪었던 모든 일들을 샅샅이 말했다. 나중에는 자신도 모르게 극도로 흥분되어 눈물까지 흘리면서, 내 자신이 팔로군에게 총을 맞고 산에서 굴러 떨어지다가 구사일생으로 어떤 친구의 보호를 받아 황하를 건너오게 되었다는 사실과 팔로군이 쏜 총알이 아직도 내 오른쪽 어깨에 박혀 있다는 등 사실을 전부 말했다. > >"오늘 저는 이론을 따지려고 이 곳에 나온 것이 아닙니다." > >나는 우람한 목소리로 말했다. > >"방금 회장이 평소에 이론을 전문적으로 연구한 학우의 말을 한 푼의 가치도 없다는 듯이 비방해 버렸지만, 그 학우의 말은 백퍼센트 정확한 것입니다. 내가 지금까지 말한 것은 이론이 아니고, 어디까지나 피비린내나는 산역사의 것입니다. 정부 당국에서는 단결을 도모하기 위해서, 또 민간에게 더 이상 자극을 주지 않기 위해서, 팔로군에게 이렇다할 말 한 마디도 없었지만, 우리 국군에겐 억울한 줄 알면서도 우리들의 총지휘관을 파면시켰었던 사실도 있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은 사실들이 하북 대평원에서도 생겨, 열렬한 반일 전우들이 억울하게 희생당했던 사실이 내 머리 속에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되고 있습니다. 친애하는 학우 여러분! 여러분께서 들어 두어야 되실 또 하나의 놀라운 사실이 있습니다. [[1938년|민국 이십칠년]] 말부터 팔로군들은 신하에서 하북 백성과 군인들의 마음을 감언이설로 설복시킨 다음 [[1939년|이십팔년]] 초에는 [[류보청]], 하룡, 여정조 들과 합세하여, 왕만의 대군을 거느리고 복마장에서 당건사를 포위하여 하북의 민간인과 군인 사존 중학교 학생들을 기습했던 것입니다. 이 때 그들에게 맞아죽은 학생들의 수만 무려 오백여명에 달했으며, 포로로 잡힌 사람들이 삼백여명에 이르렀던 것입니다. 그 때 잡혔었던 포로들은 전부 [[삼민주의]] 청년단원들이었기 때문에 무참하게 참살당했던 것입니다. 팔로군들은 이 기습작전의 성공을 계기로 하여 평한로 사방에 있는 하북 지방의 군민들을 추격하는 한편, 형대, 사하, 자무에서도 반일 국군을 습격케 했으며, 그 후 무안에서는 제일 전투 지역 이십일 분대인 이광의 부대를 해산시켜 버렸던 것입니다. 연이여 융평, 요산, 속진 등지에서 반일 보안단을 전부 해산시켜 버렸으며, 후에 석가장 부근에서는 우리 국군을 인솔하여 [[산해관]] 동북 방면으로 유격전을 하러 가는 이들을 기습하여 지휘관인 조동을 죽였던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잘 아시고 계실줄 믿습니다만 이 조동이야 말로 우리가 늘 존경해 오며, 유격대의 어머니라고 부르던 조씨 노인의 아들이었던 것입니다. 공산당들은 이 두 모자가 반일분자가 아니라는 억측 밑에서 참살을 했던 것입니다. 여기 모이신 여러분들은 어느 한 분도 이런 허무맹랑한 거짓말을 믿으실 분이 안 계시리라고 확신하는 바입니다. 이 모든 생생한 사실들은 공산당의 신사군들이 하북 지방에서 얼마나 비행을 저질렀나를 충분히 설명해 주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일선에서 우리 국군들을 참패시켜 놓고, 지방 백성들의 민심을 어지럽게 하는 반면, 반일 전쟁을 거절하며 [[강소성]] 정부를 소멸시키는 등, 이 모든 비행이 전부 이들 팔로군들의 스스로 저지른 반역적 행동이었던 것입니다. > >나는 일단 말을 멈췄다. 단 밑에서 우뢰같은 박수 소리가 장내를 뒤흔들며 울려왔기 때문이다. 나는 일부 학생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는걸 느끼며 말을 계속했다. > >"조금 전에 몇몇 학우들께서 현실에 대한 불만을 토로했습니다. 옳은 말씀입니다. 청년들로서 현실에 불만을 품는다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전들 이 현실에 만족을 느끼고 있는줄 아십니까?제가 태행산에서 전투에 참가하고 있을때 겪은 그 모든 고난과 위험을 후방에서 세상 모르고 향리에만 도취되어 살아가는 일부 특권층에 비교해 본다면 과연 일선은 출생입사며, 후방은 취생몽사라 안 할 수 없습니다. 이를 볼 때 우리의 가슴은 갈기갈기 찢어져 나가는듯 아픕니다. 다행히도 우리 주변엔 아직 취생몽사 속에서 사는 사람의 수가 역시 적으며, 대다수의 우리 백성들은 갖은 고생 속에서 용감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취생몽사의 인간과 별 차이 없는 또 하나의 기막힌 현실들이 여기에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 것은 바로 우리들 눈앞에 공공연히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순결한 학생들이 어느 야심가의 선동과 유혹에 사로잡혀 덩달아 교련 장교를 배척하며, 교내 군사 훈련을 거부하고, 심지어는 전수업까지 휴학을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존경하는 학우 여러분! 여러분은 아직까지 저 함락 구역에서 망국노들이 걷고 있는 그들의 생활을 맛보지 못했을줄 압니다. 비록 맛은 못봤다 하지만, 여러분은 망국노의 수치와 고통이 어떤 것이라는 것쯤은 충분히 상상해볼 수 있을줄 압니다. 오늘날 우리들이 조국의 품안에서 군사 예비 교육을 받고 있다는 이 것은, 다름아닌 우리 청년들 하나 하나가 후세에 올 우리들의 자손에게 영원히 망국노로 안 만드는 신성한 책임을 지워줄 수 있게 해주는 것입니다. 이렇게 중대한 사명에도 불구하고, 군사 훈련을 무용지물로 생각하며, 심지어 파괴까지 하려는 자가 여기에 있다는 것을 생각할때, 그것이 취생몽사와 다를게 어디 있느냐고 묻고 싶습니다. 이것이야 말로 더 무서운 취생몽사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이번 정부에서 그들을 해산시킨 것도 양민을 괴롭히기만 일삼아 오던 이들의 비행을 처음엔 참아오다가 드디어 더 이상 참을수가 없어 이러한 결정을 내려 단행하기에 이르렀던 것입니다. 그런데 일부에서는 정부에 책임 추궁을 하고 있습니다. 정부에 책임추궁할 것이 있다면 그건 왜 진작 이런 조치를 취하지 못했는가를 추궁할 것 밖에 없습니다. 만약 정부에서 이를 좀 더 일찍 결정하고 실천했다면, 그동안 억울하게 희생당한 반일 국군과 우리들의 선량한 동포의 피해가 적었을 것이며, 희생도 덜 당했을 것입니다. 정부를 추궁하고, 지금 와서는 다시 신사군을 회복하자는 맹랑한 조건을 내세우며 나라를 어지럽게 하고, 민간인을 해치며 항전을 파괴키시던 반란군들의 난동이 다시금 이 나라에 나타나고 있으니 우리는 진심으로 이것을 바라고 있는 것입니까? 정부에서 신사군을 해산 처분한 것도 단순히 군의 기강을 위반한 군인에 한해서였지, 그들이 공산당 부대라고 무조건 처리한 것은 아닙니다. [[한푸쥐]], [[스여우싼]], 이복은 전부 국민당원이었지만, 그들이 반일 명령을 집행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군법재판에 의해 총살당한 사실도 있습니다. 정부 당국에서 군대의 군기를 일관적으로 통치하기 위하여 단행한 이 처사를 옳다고 보십니까? 그르다고 보십니까? 저는 이걸 여러분들에게 묻고자 하는 것입니다. 한복지, 석삼우, 이복이가 억울하게 죽었다고 정부를 추궁할 사람이 계십니까? 신사군들의 반란 행위는 이들 한,석,이, 세 사람의 반란 행위보다 몇천배 몇만배 더 엄청나게 큰 사건입니다. 우리들이 이것을 모르고, 이러한 반란군들을 지지한다면 자각을 못하고 있는 일부 학생들의 취생몽사와 무엇이 다르다 하겠습니까? 이것 역시, 더 무서운 취생몽사인 것입니다. 저도 반일 군인이었습니다만은 여지껏 아무런 정당에도 가입해 본적이 없습니다. 저는 삼년동안이나 정치과에서 정치학을 공부했지만, 고금을 통해 어떤 국가든지 일개 민주주의 국가의 국민으로서 국가 이념에 위배되는 개인의 무력과 사상의 존재를 허락, 또는 옹호할 수 있다는 것은 책에서나 교수님들의 강의에서도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무력으로 마음대로 어느 지역을 점령 하여선 제 멋대로 특수한 정부를 세워서, 중앙 정부로부터 인정을 받으려고 하는 것은 천고의 기문이라 안할 수 없습니다. 오늘 날 우리는 정부를 비판하는 기사를 신문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또 국회가 있어 정부 시책의 잘잘못을 지적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는 정부를 비평하고 추궁할 대로 했습니다. 이것보다 더한 혹평을 가하고 한층 더 추궁해도 저는 찬성합니다. 왜? 그것은 민주국가의 국민으로서 마땅히 가져야 하는 의무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건 민주 국가의 집정자로선 의당 받아야할 편책이기도 합니다. 만약 집권당의 집정이 좋지 못하면 헌법에 의해 정식으로 공포한 다음 우리는 우리의 양심과 의지에 비추어 우리가 원하는 정당에 투표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정도의 방법을 쓰지 않고, 오직 기만과 유혹과 공포 등 이러한 수단으로 국민을 협박, 공갈해 가며 심지어 살해해 가면서 나라를 소란시키는 것은 저로선 결사 반대하는 것입니다. 민주주의를 희망하고 믿으며 자기 국가와 국민을 사랑하는 자라면 누구나 다 아는 이를 결사 반대할 것입니다." > >이윽고 나는 결론을 맺었다. 우뢰같은 박수 소리가 고막을 울려왔다. 나는 벌겋게 흥분된 입술로, 이 우뢰같은 박수 소리에 콧등이 시큰하며 감격하고 있었다. 아직 박수 소리가 장내를 뒤흔들고 있는데, 꼬마와 정미장이 웃으면서 단 위로 뛰어 올라오고 있었다. 그들의 감격적인 얼굴이 마음에 아무런 간적도 없이 점점 가까워지자, 나는 내가 연사였다는 것 조차 망각해 버렸다. 나는 그들에 부축되어 단 위를 서서히 내려갔다. > >''[[https://zh.wikipedia.org/wiki/%E7%8E%8B%E8%97%8D|왕람(王藍)]]의 [[https://zh.wikipedia.org/wiki/%E8%97%8D%E8%88%87%E9%BB%91|<람여흑(藍與黑)>]] 中'' [[중일전쟁]]과 [[국공내전]] 시기를 배경으로 하여 왕람(王藍)이 1958년에 출판한 소설 <람여흑(藍與黑)>에 작중 중일전쟁 당시 팔로군과 신사군의 만행이 생생하게 표현되어 있다. 소설의 주인공 장성아(張醒亞)도 팔로군의 습격으로 총을 맞고 하마터면 죽을뻔 했었다. 위에 인용된 장면은 군에서 제대한 후 국립대학 정치학과에 입학한 주인공이, 국민당 정부의 신사군 해체에 불만을 품고 동맹 휴학을 추진하는 공산당원 학생들에 맞서서 반공 연설을 하는 장면이다. 참고로 왕람은 직접 [[중일전쟁]]에 참전하였던 사람이고, 그의 친구도 그와 함께 참전했었는데, 그의 친구는 전쟁 도중 전사했다고 한다. 전쟁 이후 왕람은 자신이 겪은 전쟁을 소재로 여러 편의 소설을 썼는데, <람여흑>은 그의 소설들 중에서도 가장 훌륭한 걸작이다. 대만에서는 왕람의 람여흑, 반인목(潘人木)의 련의표매(蓮漪表妹), 기강(紀剛)의 곤곤료하(滾滾遼河), 서종패(徐鍾珮)의 여음(餘音) 195-60년대 출판되었고, 중일전쟁 시기를 배경으로 한 이 네 작품들을 [[https://zh.wikipedia.org/wiki/%E5%9B%9B%E5%A4%A7%E6%8A%97%E6%88%B0%E5%B0%8F%E8%AA%AA|사대항일소설]]로 꼽는다, 여러 차례 드라마화, 영화화 되기도 하였다. 국내에서도 [[1967년]] 삼일각에서 상과 하, 두 권으로 번역 출판 되었었다. 번역의 퀄러티는 대체적으로 우수한 편이지만, [[세로쓰기|세로본]]이라 가독성이 떨어진다는게 옥의 티. 그리고 출판 년도가 오래된 만큼 절판이 되었고, [[헌책방]]에서 구하기도 쉽지 않다. 영화화도 되었는데 오래된 영화라 찾기는 좀 힘들지만 잘 찾아보면 어딘가에선 보인다.[* 사실 [[대만]]과 [[홍콩]]에서 여러번 영화 내지는 드라마화되었는데 가장 잘 알려진 건 [[1965년]] [[홍콩]] 쇼브라더스사에서 제작한 영화다. 이 당시 가장 잘나갔지만 개봉한 시점에서 자살로 생을 마감한 여배우 임대(林黛)가 여주인공 당기 역을, 홍콩배우 [[관지림]]의 아버지로 더 유명한 배우 관산(關山)이 남주인공 장성아 역을 맡았다.] 위에 인용된 내용에서도 보듯이 [[중일전쟁]]과 [[국공내전]]의 정세에 대해 매우 상세히 몰입감 있게 자세히 잘 설명 되었기 때문에, 이 시기 중국에 대한 아무런 사전 배경지식이 없이도 충분히 몰입하면서 읽을 수 있다. 또한 이 시대 여러 계층의 [[중국인]]들의 생활상에 대해서도 고증이 잘 된 편이다.[* 간단한 줄거리는, 고아 출신의 장성아가 자기와 비슷한 처지의 여자인 당기, 최상류층의 딸인 정미장 사이에서 삼각관계를 가지면서 항일전쟁과 이후 국공내전에 참가한다. 당기는 전쟁 중 우여곡절 끝에 술집에서 노래 부르는 창녀가 되고, 장성아는 정미장과 약혼하나 국공내전 중에 [[대만]]으로 피난가다가 탑승하던 비행기가 추락하는 바람에 부상을 입어 정미장은 장성아를 버리고 [[홍콩]]으로 떠난다. 설상가상으로 비행기 추락으로 인해 다리에 입은 부상이 악화되면서 결국 장성아는 다리 한쪽을 절단하는 수술을 받게 된다. 군병원에서 살면서 국민당 잔당들을 따라 태국에 들어간 당기와 연락을 시도하지만 답장은 없고, 장성아는 회한만 남은 인생을 회고한다. 그나마 다행히 막판에 동향인으로부터 당기의 근황이 담긴 편지를 받게 되지만 당기는 [[태국]]으로 건너가 국민당 잔병들의 치료에 힘쓰는데 보태기로 결심하고, 장성아는 이 당기의 편지를 보면서 한 쪽 다리만을 의지한 채 반공 강연을 이어나가는 등 혼자 [[대만]]에서 남은 인생을 계속 살아나간다는 결말을 맞는다. 처음 발표되었을때는 약간 희망적인 메시지가 있었으나, 수정된 판에는 그런 건 없다. 시대가 시대인만큼 해피엔딩 같은 건 있을 수 없는 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