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판비량론 (문단 편집) == 내용 == 671년(문무왕 11)에 신라의 고승 원효가 행명사(行名寺)에서 [[중국]] [[당나라]] [[삼장법사]] 현장(玄奘)의 논증 방식인 유식(唯識) 비량(比量)을 비판적으로 판론한 불서이다. 현재는 일본판만 남아 있는데 일본판에는 '내가사인'(內家私印)이라는 도장이 찍혀 최초 소장한 사람이 [[나라 시대]] [[쇼무 덴노|쇼무천황]](聖武天皇)의 부인 고묘 황후(光明皇后, 701~760)임을 알 수 있다. 고묘 황후는 고대 일본을 대표하는 보물창고인 쇼소인(正倉院, [[정창원]])을 처음 만든 사람이다. 원효가 저술한 이 불경은 8세기 이전에 일본으로 유입되었다고 추정되는데, 1967년 일본의 서예 학자 간다 기이치로(神田喜一郎)가 개인적으로 소장한 것을 출판하여 일반에 알려진 후 일본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이후 2002년 각필 연구의 권위자인 고바야시 요시노리 교수가 이 필사본에서 신라 구결의 각필[* [[상아]], [[대나무]] 등을 이용해 만든 필기구로 한자의 발음법 등을 표기한 것] 흔적을 발견해 과거 신라에서 필사한 것임이 밝혀졌다. 이후 2016년에 오치아이 히로시(落合博志) 일본 국문학연구자료관 교수가 교토 긴자의 고미술상에서 원효의 판비량론 1부를 더 발견하였다. 교토에서 발견된 이 책은 오타니대학본과 구분하여 바이케이본(梅溪本)이라 부르는데, 2018년 12월 연구 결과 기존 오타니대학본보다 17~18곳에 새로운 각필(角筆)을 더 기입했고, 양적으로도 8점을 더 추가했다는 사실을 확인하였다. [[https://news.naver.com/main/ranking/read.nhn?mid=etc&sid1=111&rankingType=popular_day&oid=023&aid=0003414151&date=20181205&type=1&rankingSeq=2&rankingSectionId=103|원효 '판비량론' 조각에서… 신라의 글자 또 찾았다]] || [youtube(NAmSeCq-v-E)] || 판비량론이 연구되면서 [[NHK]] 등 일본의 주요 언론들과 한일 양국의 학자들이 발칵 뒤집혔는데, 각필(角筆) 연구의 권위자인 [[고바야시 요시노리]](小林芳規) 히로시마대 교수가 "'판비량론'에 나오는 신라 각필이, 일본 [[가타카나]] 문자의 기원으로 보인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고바야시 교수는 현행 가타카나의 'マ(마)'나 'リ(리)'와 비슷한 글자가 '판비량론'의 각필자에서 보인다고 했고, 한국의 학자들이 1500년 전 한국어 조사인 '以(이)'의 옛 글자 '㠯'('~로'란 뜻)와 '白'(사뢰다) 등 새로운 각필자를 추가로 찾아냈다. 600년대 한국의 불교 문화와 언어학, 그리고 [[신라 대방광불화엄경]]과 함께 신라시대 각필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