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파칭코 (문단 편집) == 역사 == 최초의 파칭코는 1920년대 [[핀볼]]에서 파생되었다고 전해진다. 쇠구슬을 쏘아올려 어떤 구멍에다 집어넣으면 그 가게 주인이 경품[* [[통조림]], [[과자]] 등의 상품]을 주는 방식이었다고 한다. '파칭코'란 명칭도 이 쇠구슬을 빠르게 쏘아올리는 모습에서 새총이 연상된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그 외에 게임기가 쇠구슬을 '파칭'(피슝) 쏘아서 '코로코로(데굴데굴)' 굴러가는 소리에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다. 초기에는 '코린트 게임'(コリントゲーム)이라 불렸으며 조그마한 과자 상품을 노리기 위해 아이들이 재미삼아 하는 정도였으나[* [[문방구 게임기]] 문서에 언급되는 세기말 전후 한국의 문방구 등지에 있던 메달 게임기, 가위바위보 게임기와 비슷한 무게감이라고 생각하면 얼추 비슷할 것이다.] [* 대만 야시장이나 유원지 등에 가보면 현재에도 이와 비슷한 핀볼형 경품 게임이 산재해 있다.], 나중에 시대가 변하면서 지금같은 도박 이미지가 되었다. 야스다 가즈히코의 표현에 따르면 '아이들 놀이'(원시 파칭코) → 1센[* [[일본 엔|일본제국 엔~극초창기 현대 일본 엔]]의 보조단위.(1953년 폐지) 한자표기는 돈 할때 錢이 맞다. 일본제국 시대에는 지금으로 치면 10~100엔정도 가치?]짜리 도박(발전기?) → 어른들의 놀이(전후 정립된 이미지) 라고 한다.[* 출전 : [[https://www.youtube.com/watch?v=23nTS7tMGRo&list=PLdMD9euwgq3Rjnm6ynGTRNkacIZf-mI5C&index=1|パチンコはいつどうして生まれたのか?黎明期(パチンコの歴史①)(悠遊道)(ゆっくり解説)]]] 지금과 같은 도박형 파칭코의 원형은 1950년대에 생겨난 것으로 추정된다. 이 때부터 어떤 구멍에다가 구슬을 집어넣으면 20개의 구슬이 나오는, 문구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메달 따는 기계' 스타일의 기계가 만들어지게 되었다고 한다. 이 당시 기계가 어떻게 생겼는지 보고 싶으면 [[최배달]]을 다룬 한국 영화 [[바람의 파이터]]를 보면 된다. [[정태우]]가 연기한 감초 배역이 이 기계 하나 구해서 돈버는 장면이 나온다. 아니면 오사카 [[동물원앞역]] 앞 [[통천각|신세카이]] 주변의 낡은 게임센터를 찾아보자. 그 곳에 원조급 파칭코 기계가 40대 정도 모여 있다. 파칭코업의 성장은 일본의 전후사정과 관련이 있다. 전후 일본에서는 군수물자용으로 대량생산되었던 볼베어링(각종 기갑장비 부품, 폭탄 파편 등의 용도)이 엄청나게 남아서 처치가 곤란해졌는데 이 시기 볼베어링을 급료 대신 지불하는 상황이 이어지자 볼베어링을 이용한 놀이가 유행하기 시작했고 그 과정에서 볼베어링을 파칭코 구슬로 사용하는 일이 많이 생겼다고 한다. '''그리고 전후에 마사무라 타케이치(正村竹一)라는 인물이 '마사무라 게이지'라는 기기를 개발했는데, 이는 원시 파칭코와 현대적 파칭코의 분기를 가르는, 당시로서는 혁명적인 기계였다.''' 아무튼 이때문에 마사무라 다케이치는 '(전후) 일본 파칭코의 아버지'로 추대받고 있다. 파칭코업계의 암흑기는 크게 두 번 찾아왔는데 첫 번째는 1954년 연발식 파칭코 기계가 정부에 의해 금지되었을 때 찾아왔다. 이 당시 일본 전국에 약 5만개나 있었던 파칭코 가게는 단 몇 년 사이에 9000개까지 줄어들었다. 특히 이 시기에 일본인업자들이 파칭코업에서 손을 많이 뗐는데 당시 차별로 제대로된 일거리를 가지기 힘들었던 [[재일한국인]]들은 어쩔 수 없이 계속 파칭코업에 종사했고 이후 파칭코업이 다시 살아나면서 상당히 높은 시장점유율을 확보할 수 있게되었다. 두번째 암흑기는 1970년대에 잠깐 찾아왔는데 그 원인은 바로 전설적인 [[슈팅 게임]]인 '''[[스페이스 인베이더]]'''의 등장이었다. ~~도박을 잠시 소강시키는 일반 게임의 위엄~~ 다만 오히려 이는 어디까지나 반짝이었고 사실 마루한 같은 재일한인이 세운 파칭코기업은 70년대부터 80년대까지 급격히 성장했다. 70년대 일본은 엄청난 경제성장 중이었고, 스페이스 인베이더의 붐은 파칭코업을 잠깐 주춤하게 만드는 정도였다. 본격적으로 파칭코가 도박이 되기 시작한 때는 1980년대로, [[슬롯머신]] 스타일의 추첨 릴을 도입하면서다. 그리고 이는 80년대 중반에 [[산쿄]]에서 '피버'라고 하는 기종의 파칭코를 만들어 내면서, '리치'라는 것이 등장해 도박사의 기대감을 더욱 부풀게 만들었고, 1990년부터 업계 측이 '클럽 카드'라는 선불 카드를 만들어 현금 위주의 지불방식을 타파하여 캐시 충전식으로 세금 삥땅을 막고자 했지만, 오히려 충전금이 소진될 때까지 해서 중독도를 늘리는 등의 부정적인 면도 있다. 90년대 후반에 궁극의 카드리딩 기기가 나오면서 도박성이 완성된다. 이게 왜 위험하냐면, 이전의 기기는 돈을 직접 500엔, 1,000엔씩 집어넣으면서 게임을 하게 되지만, CR은 카드를 충전해서 쓰게 되므로 한 번 충전하면 돈 나가는 게 직접 확인하지 않으면 잘 보이지 않는다. 뭐 도박 중독자가 돈 나가는거 무서워서 도박 안 하지는 않지만. 21세기에 들어와서 정부 규제가 상당히 심해지고 있는 추세이다. 당첨확률은 높이고 그만큼 나오는 구슬, 메달의 양은 줄이는 등 이제는 '도박'이 아닌 가볍게 즐기는(?) '놀이'로 만들기 위한 별의별 규제를 다 걸고 있다. 그래봐야 [[대안화폐|경품 현물교환 꼼수]] 등의 문제로 돈넣고 돈먹기라는 개념은 바뀌지 않고 있지만 옛날같은 한방을 노리는 확률을 줄여나가고 있다. 그리고 일본 정부가 [[카지노|더 큰 것]]을 세우려 한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일본어가 된다면 하술할 문단에도 언급한 파칭코 전문가 야스다 카즈히코(安田一彦)가 정리한 [[https://www.youtube.com/playlist?list=PLdMD9euwgq3Rjnm6ynGTRNkacIZf-mI5C|パチンコの歴史]](유튜브 플레이리스트)를 참조해도 좋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